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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잠꼬대

가족세우기를 통한 내면 아이 만나기

by 나의신디

그녀는 남편이 폭력적이라고 했다

남편 때문에 가정에 평화를 잃었다고 원망했다.

남편 때문에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남매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서로 미워하며 싸운다고 슬퍼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참 얌전한 매무새와 순박한 얼굴을 한 60대 여성이다.

독한 소리 한마디 할 줄 모르고 여리디 여려서 매번 손해만 보고 살 것 같은 착하디 착한 인상이다.

지난달 세션에 처음 참여한 그녀는 자신이 잠꼬대가 심하다며, 한방에서 같이 다 자야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목소리마저 참 얌전하신 분이다.

내면의 이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은 그까짓 잠꼬대가 뭐 그리 대수냐며

세션을 하러 먼 길 찾아오신 것에 용기를 북돋워 주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지난달에는 그녀 옆에서 잠을 자던 내가 의심을 받았다.

한 선생님이 확신에 차서, 비명을 지른 사람이 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똑똑히 들었다며 내 목소리라고 우겼다. 나라고 잠꼬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녀 스스로 잠꼬대가 심하다고 고백한 상황에 나도 들었던 그녀의 비명소리를 내가 지른 소리였다고 우기니 별도리가 없다. 내가 그랬나 보다고 동의할 수밖에. 아마도 그 비명의 주인공이 나였다고 우기는 선생님에게는 또 다른 이슈가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이번 달, 그녀의 잠꼬대는 극한을 치달았다.

아들이 누군가로부터 돌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렸다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엄마와 한마디도 소통을 하려 하지 않는다며 다소 심각한 주제를 가져오셔서 그런지 밤새도록 고통스러운 꿈에 시달리시는 듯했다.

우리는 그녀의 잠꼬대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그 진실을 밤새도록 목격했다.


그녀의 잠꼬대는 평소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디에 그런 악에 받친 화가 숨겨져 있었는지 놀랄 정도로 분노가 고스란히 터져 나왔다.


자정을 넘기고서야 겨우 잠들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져드는 나 조차도 깜짝 놀라 잠을 깰 정도로 칼처럼 날카로운 외침들이었다. 그녀는 이불을 주섬주섬 들어올려 어깨를 덮더니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잠꼬대가 심하시다더니 진짜 심하긴 심하시구나 하고 돌아누워 다시 잠이 들었지만, 그녀의 비명소리를 시간 간격을 두고 밤새도록 이어졌다.


새벽 2시에 잠에서 깨서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신 분에 따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학교 선생님이 아이를 혼내는 장면을 고스란히 연출하다가 다시 누워 잠이 드셨다고 한다. 혹시 몽유병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새벽 3시에는 경찰에게 저 학생을 잡아가라며 신고하는 장면을 리얼하게 연출하셨다.


새벽 4시쯤, 나도 결국은 잠에서 완전히 깨어 일어나 일어나 앉았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마치 전쟁터에 나간 장군 같았다. 누군가를 호령하고, 이끌면서 진격하는 장군처럼 죽여! 죽여!를 외치며 선명한 잠꼬대를 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돌아누워 잠 들었다.


무의식을 알 수 있는 것이 꿈, 실수, 농담, 가족 세우기라고 하셨던 조남희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더불어 남편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했던 그녀의 말도 떠올랐다. 그녀의 꿈은 그녀의 내면풍경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중이다. 누가 폭력적인지 누가 싸움을 걸고 있는지. 누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는지, 누가 선생님처럼 훈계하는 에너지로 상대를 기죽여 저항하게 만드는지.


어제 오후 세션에서 그녀의 대역은 허공을 노려보며 주먹을 휘두르고 칼을 뽑아 사람을 찌르며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에서 남편을 향해 비난과 화를 내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삶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준 폭력에 못지않는 내면의 폭력, 무의식의 폭력이다.


다시 잠들기는 힘들겠다는 판단으로 베란다 문을 열고 밖에 나와 핸드폰을 켜고 새벽의 알아차림들을 핸드폰에 옮겨 적다보니 안에서 두런두런 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분들도 모두 잠에서 깨어 게슴츠레한 얼굴로 잠자리를 정리하고 계셨다. 아직도 이른 새벽인데 다들 더 이상 잠들 수 없는 상황인 듯했다.


그녀는 아무 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잘 주무셨느냐고 인사를 건네며 배시시 웃었다. 밤새 무슨 꿈을 꾸셨느냐고 물으니 학교에 불을 지르려는 젊은이를 혼내는 선생님 꿈을 꾸셨다고 한다. 어느 때는 자신이 선생님이 되어 혼을 내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그 학생이 되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잠꼬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님을 주지시키며 무의식을 탐구 입장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잠꼬대와 꿈이 그녀의 중요한 이슈인듯 하다는 나의 알아차림을 전달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미안해서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잠꼬대 때문에 사람들과 멀어진 이야기를 하며 민망해하면서도 꿈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이번 성지순례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 좋은지 어떤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성지순례를 주관하는 신도회 회장님의 이중적인 면을 장황하게 고발해 가면서, 자신이 성지순례에 가는 것이 좋은지 어떤지를 내게 물었다. 대화 내용이 기대했던 방향으로 가지 않고 엉뚱하게 흐르는 것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일까지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어서 긴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선생님, 꿈은 우리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가장 좋은 선물이에요. 오늘 세션에서는 그 꿈을 먼저 세워보시는 것이 좋겠어요. 성지순례 이슈는 나중에 조남희 교수님과 전화 상담을 해보셔요"


일요일 아침 세션이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뭔가가 달라진 것을 감지하신 조남희 교수님께서 내게 먼저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 입꼬리가 완전히 쳐져 있어요. 선생님한테 이런 에너지는 처음 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순간 입꼬리 뿐만 아니라 온 몸이 쳐져 있음이 느껴졌다. 밤새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전달하고 교수님께 특별한 부탁을 드렸다. 중요하고 긴급한 이슈가 있을 때는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고 먼저 세우기도 하셨으니, 그녀의 잠꼬대를 가장 먼저 긴급하게 세워주시면 좋겠다고.


그녀의 잠꼬대는 그녀의 이슈이기도 했지만, 함께 잠을 설친 우리들에게도 이슈였다. 간밤의 상황이 모두들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이라 말은 안해도 다들 뭔가가 불편하고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이슈가 있으려니 이해는 하더라도 몸이 피곤하고 지친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세션을 통해 공감하고 치유하면서 이 상황이 이해가 된다면 지난밤 잠을 설친 것쯤은 다 해소가 되고 피로도 회복 될 것이 분명했다.


조교수님은 기꺼이 그녀의 잠꼬대 세워보자고 그녀를 의뢰인석으로 초대했다. 의뢰인 자리에 앉은 그녀는 뜻밖의 소리를 했다. 꿈이나 잠꼬대보다 자신에게 긴급한 성지순례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두 가지가 느껴졌다. 첫 번째, 그녀는 밤새 있었던 상황에 대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사람들에 대해 미안함보다는 자신이 처한 갈등상황이 더 중요했다. 두 번째, 그녀는 꿈이나 잠꼬대를 통해 드러난 자신의 무의식을 직면할 용기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조교수님께서는 그녀의 요청을 부드럽게 미루시면서 성지순례도 잠꼬대도 아닌 그녀의 내면 세우기를 하겠다며 중간 지점을 제안하고 세션을 진행하셨다.


그녀의 내면은 손으로 입꼬리를 올려 가짜웃음을 만들어내며 얌전하게 서 있었다. 그녀에게 가짜 웃음을 웃게 하는 원인, 그 사람의 대역으로 내가 들어갔다. 그녀에게 가짜웃음을 웃게 하는 사람은 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운명이 그려주는 대로 술춤을 추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렇게 술을 마셨다고했다. 할아버지를 원망하던 아버지의 분노와 아버지를 원망하던 그녀의 분노가 뒤엉켜 그녀의 내면에 굳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대역은 아버지 대역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혼을 내고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밤새 칼 같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비난을 퍼부었듯이 그녀의 대역은 아버지 대역을 향해 분노의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어댔다. 밤새 학생들을 훈계하고 경찰에 신고했던 그녀의 잠꼬대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아버지를 훈계하고 고발하고 싶어 하던 그녀의 어린 내면아이였던 것이다.


얌전하던 그녀의 외모와 달리 그녀의 내면에는 커다란 분노가 살고 있다. 그 억눌린 분노가 꿈을 통해서라도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잠꼬대를 통해 살려달라고 외쳐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꿈과 잠꼬대가 이니었다면, 그녀는 그 분노 때문에 또 다른 역경에 처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도반들은 모두 함께 이런 알아차림을 공유하며 간밤에 있었던 그녀의 외침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같은 장면을 지켜보던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슬퍼서 보기가 힘들어요. 울 것 같아요.' 인도자가 울어도 된다며 울어야 산다고 직면하기를 권유했지만, 그녀는 끝내 포기했다.


그녀가 직면하기를 거절하니 가족 세우기 장은 석연치 않은 채로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와 만나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우리 손에 없는 일이다. 그녀가 아버지를 향하던 비난과 지적질을 멈추고 아버지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생명과 사랑을 제대로 느끼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 힘들 수도 있다. 물론 단박에 알아차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 또한 몇 십 년 동안 내면에 감춰왔던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녹아내리고, 그 자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데 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녀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녀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갑작스럽게 만나야하는 순간이 당황스러웠으리라.


그녀는 방 한편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잠시 쉬기로 하고, 우리는 우리의 세션을 진행했다. 이윽고 서울로 떠나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힘을 내서 일어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성지순례 이슈를 세우고 서둘러 집을 향해 출발했다.


누군가 질문을 했다. '저분이 다시 여기 올까?' 아마도 다시 꼭 오면 좋겠다는 바램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오셔서 마침내 술주정뱅이 아버지도 내 아버지고 내게 사랑과 생명을 주신 분임을 깨닫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녀가 내면의 분노를 감춘 채 가족 간의 불화를 방치하고, 불행을 적립해 나가며 산다고 해도 그것은 그녀의 운명이다. 잘살고 못살고로 판단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도울 수도 없다.


다만 그녀가 더 용기를 내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 분노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그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 내면의 깊숙한 곳에 숨겨둔 삶의 평안과 만나기를 기도한다. 그저 고개 하나 끄덕일 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의 기도일망정, 그녀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잊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내 삶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다른 이들의 숙면을 방해했다는 사실보다 성지순례가 더 중요하듯이.


그녀에게 감사할 일도 있다. 그녀가 내게 선물을 주었다. 어제 새벽에 그녀의 비명소리에 잠을 깬 순간 어떤 알아차림이 다가오며 글로 남겨야 한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오늘도 새벽 2시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세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후 4시에 곧장 잠들었다가 잠이 깨었는데, 깨자마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로 세션의 감동과 알아차림을 글로 적다보면 느낌과 감동이 희석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뭔가를 기록하고 싶어하는 오래된 로망이 이렇게 선물처럼 이루어졌다. 모든 것이 다 선물로 주어진다는 헬링거 선생님의 말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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