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세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발견하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세 사람은 마치 계엄과 윤석열 탄핵이라는 역사의 과정을 위해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성장하여 제 역할을 다하고, 누군가는 역행보살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살지만, 마치 우주의 계획표에 따라 서로 맞물려 어떤 일을 이루어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김장하. 진주의 한약사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몇 년 전, 그가 퇴임하던 날의 다큐를 보고 그를 처음 알았다.
골반이 굳어 걷는 것도 불편할 만큼 한 자리에 앉아 약을 짓던 그는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고,
학교를 설립하며 우리 사회에 큰 빛이 되어 주신 어른 이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나의 질문에 답을 주신 분이 김장하 선생이었다.
그의 퇴임식에서 한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김장하 선생에게 감사를 표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자신의 4년 대학 학비를 내어 준 김장하 선생의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다며 울었던 남자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사람이 문형배 헌법재판관이라는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오늘의 역사를 쓰기위해 김장하 선생은 몇십년 전부터 씨를 뿌려왔구나.
'제가 조금의 기여를 한 게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라며 그는 돌아서서 울었다.
헌법재판관 인사 청문회에서 했다는 말도 놀랍다.
"저는 결혼하며 평균의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신고한 재산은 6억, 그중에 2억은 아버지 재산이고, 제 재산은 총 4억이 좀 못되는데, 그것도 평균의 삶보다 많은 것 같아 반성하고 있습니다."
법관들의 평균 재산이 20억이라는데
27년 법관 생활을 했던 사람의 재산치곤 평균을 논할 처지도 아니건만 그는 평균치보다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반성한다. 은퇴 후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와, 이분은 어떤 마음으로 사시는 분이실까?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삐뚤어지지 않고 충만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통해 충만감을 배우우셨나 보다. 그러고 보면 뭔가 결핍감에 시달리고 더 이루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믿는 내면아이의 갈구 때문이리라.
윤석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문형배 재판관이 주도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이 결정된, 대한민국의 대통령.
그는 대학시절까지도 아버지에게 고무호스로 폭행을 당할 정도로 억압적인 가정 환경속에서 자란듯 하다.
평생 거짓과 협잡으로 검찰권력을 주무르며 허세를 떨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와이프에게 투사하며 대한민국을 얼어붙게 했다.
지금도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을 술에 의지해 회피하고 있을,
어찌보면 상처받은 한 존재이기도 하다.
받지 못한 사랑의 허기짐이 느껴진다.
그도 큰 일을 했다.
윤석열로 인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달았고,
청년들은 광장에 모여 정치적 각성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등불을 들어 올렸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윤석열의 계엄과 그 이후 광장에 모인 청년들의 등불을 보며,
윤석열도 이 사회를 위해 애써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 세 사람의 삶이 하나로 연결된 것을 발견하며
전율이 일었다.
김장하는 문형배를 키웠고, 문형배는 윤석열을 탄핵했고,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정신차리게 했다.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각자 자신의 일을 했지만,
마치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일을 한 느낌이 든다.
그 세 사람이 대한민국의 성장과 변화의 길에 서로 연결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며.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