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가는 길에 아는 언니를 만났다.
60대 중반의 식당 사장님인데 며칠 전 목욕탕에서 만났을 때 양상추가 많이 들어왔다며 좀 가져가라고 했던게 생각나서 차를 멈췄다.
"어디가?"
"운동하러 가요"
"어디로?"
"산** 체육관으로요"
"왜 산**로 가? 운*** 체육관이 얼마나 좋은데!"
"아, 처음에 여기서 운동을 배워서 그냥 다녀요"
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다.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차라리 ***로 가! 거기도 좋대!"
언니는 제3의 체육관을 추천한다.
최근 면소재지마다 헬스장이 생기고 있다. 다 거기서 거기고 고만고만한데다 코치는 따로 없고
자기가 알아서 운동을 해야하는 시스템이다. 한달 비용도 2만원에서 3만원 정도여서 부담없이 결석해도 마음 편한 곳들이다. 그러니 어디서 운동을 하든 크게 상관이 없는 처지인 것은 언니도 알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어느 곳이 딱히 가깝거나 먼 것도 아니어서 어디가 좋다 나쁘다 판단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저 언니는 왜 자꾸 나더러 다른 체육관을 다니라고 권하는 것일까?
"언니는 그 체육관 가봤어요?"
"난 운동 안해!"
"......"
며칠 전,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90세 생신을 맞아 '130세까지 살고 싶다' 고 하신 말씀이 제목으로 뽑힌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130세까지 살아서라도 티벳을 지키고 싶어하시는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기사도 읽기 전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망이라는 둥, 불교공부 헛했다는 둥, 천편일률적으로 비난의 댓글들이 우루루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너의 생각으로 너의 판단으로 너의 그릇만한 말을 뱉어낸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말에 상처받을 필요도, 그 말 때문에 미워하거나 아파할 이유도 없다. 다 그 사람의 그릇 사이즈가 표현될 뿐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말 하나 뿐이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