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뜨기 Aug 07. 2020

바보

평시 잊히는 모습 이래도 당신이 슬픔 중에 누군가를 부른다면 눈물의 한줄기로 편지에 쓰이는 한 이름이고 싶습니다. 행여 쓰인 사연으로 그대 가슴의 눈물이 다 태워져 내 그대 편지를 받을 때쯤 그대가 나의 이름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대도 언젠가 당신이 이처럼 부를 수 있는 생각나는 이름이고 싶습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이 피치 못함으로 다시금 찾아오리라는 나그네 말을 던지며 떠날 때에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그것을 소망함으로 기다리는 마음이고 믿음이고 싶습니다. 우연히 그대가 주변의 정물 속에 예스런 생각들이 되살아나 나를 찾을 때 거미줄이 쳐있는 빈 초가집의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다가오고 자연스레 잊히는 모습보다 이미 가진 만남을 돈독히 챙기고 새로 타인의 들어설 벤치 또한 부지런히 만들어 가렵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는 만들지 않으렵니다. 지금 앉아있는 그대의 자리가 비워질 때 또 누군가가 다가와 쉼을 청한다면 난 조용히 그 자리에 예전 누군가의 체취가 스며들어 있음을 숨기지 않고 알리며 제공해 드리리다.


혹 새로움만 찾는 습성으로 정작 기억해야 할 이름과 지나온 나를 잊지 않도록, 그대가 많은 사람을 데리고 나를 찾아오면 난 주저 없이 내 깊숙한 공간마저 제공하렵니다. 그땐 내 터 위에 소박한 것들도 없다 하지 아니하고 내어 드리리다.


분명 나 드릴 무엇인가를 찾아보며, 정녕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면 미소를 지워 드리리다. 화려하지 않은 단색의 선율에 내 노래라도 들려 드리리다. 나와 함께 거함으로 모두가 이미 알아버린 나를 가벼이 여기며 설령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아픔을 준대도 단 한 사람의 따스한 눈망울로 그 아픔, 아니 그 눈망울마저 없다 해도.


누군가가 이런 나를 가리켜 바보라 불러오면 그것을 기쁨으로 제 이름 삼고 싶습니다. 어딘가에 나만큼 나보다 더한 바보가 있다면 언젠가 만날 날을 고대하며 살렵니다. 내 집에서 못 만난다면 내 발걸음을 옮기는 것 마다치 않겠습니다. 이렇게 만난 바보들끼리 웃음도 울음도 아낌없이 나누이고 더 많은 바보를 찾기 위해 우리의 눈동자를 쉬지 않게 하렵니다.


지나치게 똑똑하고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세대에서 진정 우리의 바보다운 행동이 잠시 지나는 발걸음 멈출 수 있다면 기쁨으로 행하리다. 이러한 모든 고백 속에 내 따라오지 못하는 체질이라면 정녕 기대야 할 것에 기대고 물어야 할 것에 물어보며 약한 모습마저 마다치 않는 가장 큰 바보의 길을 제시해준 이에게 끊임없이 달려가렵니다. 설령 오늘 그 부름이 있다한 들, 그 부름이 내 생의 마지막이라 한들, 돌아보지 않고 지체치 않는 응답이고자 합니다.


-박우물-  



박우물은 제 바로 위 형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잠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