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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Oct 17. 2020

잠풍(2)_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보고싶다고 말하면

단편소설 <잠자는 풍뎅이>

친 책은 한국사다. 우리 민족은 인류학상 몽고 인종에 속하는 원시 퉁구스족의 한 갈래이며,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우리 민족의 주류는 북방계 청동기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무문토기인들이다. 처음, 그러니까 구석기시대에는 권력과 지배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였는데 청동으로 발달된 농기구를 제작하여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함으로써 빈부의 격차가 생겼으며, 청동무기로 정복전쟁을 하여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이 생겼다. 이로써 평등사회였던 씨족사회는 보다 큰 지역 단위의 군락사회로, 또다시 이웃의 여러 부족들을 복속하여 수천 호를 다스리는 정치적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여 군장사회가 되었다. 철기가 보급되어 보다 강력한 정치조직인 국가가 성립되었는데,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의 초기국가 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만이 고대국가로 발전을 하였다.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삼국은 서로 다투고 협력하며 발전하는 부분까지 지난번에 학습했었다.


역사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비록 책 속의 인물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그들의 삶의 통해 오늘 교훈을 얻게 된다. 역사는 거울 같아서 자꾸 닦으며 들여다보면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다. 역사의 거울을 통해 오늘을 비춰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 잉잉거린다. 아마 불빛에 이끌리어 왔나 보다. 창문은 다 방충망을 쳤는데 어디로 들어왔지? 전등 주위를 빙빙 돌더니 하필이면 내가 펼쳐놓은 책장에 내려앉아 지친 날개를 바가지 같은 껍데기에 접어 넣는다. 금방 다시 날아가겠지 하고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았다. 청동갑옷 같은 등이 뺀질뺀질하다. 어찌 보면 보석 같은 모습이다. 어기적거리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노라니 문득 ‘삶’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저 작은 곤충에게도 생명이 있겠지. 그 생명도 내 생명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이놈은 하얀 종이에 앉아 더듬이를 다듬고 발을 비비고 움씰움씰하더니 아예 다리를 까칠까칠한 종이에 단단히 고정하고 움직이려 하지를 않는다. 무슨 속셈인가? 아예 잠자리를 마련할 깜냥인가 보다. 예상 밖의 상황에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펼쳐진 책장의 내용만 계속 들여다본다. 굳이 책장을 넘겨서 지친 날개를 접고 막 잠을 자려는 그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사냥꾼도 새가 제 품으로 날아들면 보호해 준다는데 내 책장에서 지친 몸을 쉬려는 작은 생명을 차마 억지로 쫓아낼 수 없어 책장 넘기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한잠 자고 나면 떠나겠지.


펼쳐진 책장의 내용은 신라의 영걸 무열왕에 대한 것이다.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자리를 잡아 가장 빈약했던 신라가 나중에는 삼국을 아우르는 내용이다. 약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나라를 이용한 외교정책을 잘 한 덕이 크다. 싸움에 있어서 때론 주위의 힘을 이용하여 적을 무찌르는 것이 유용한 전술이다. '외교정책은 한시도 휴식이 있을 수 없다. 대당 외교가 바로 우리의 살 길이며 나라 발전의 지름길이다'라고 주장하던 무열왕은 죽어가면서도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라'라고 당부하여 결국 신라가 삼국을 아우를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반쪽 짜리 통일이라서 고구려의 그 넓은 영토를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외세를 의지한 탓에 한반도 내에서조차 주도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처음으로 한민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풍뎅이는 아예 깊은 잠이 들었나 보다. 도무지 일어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다리에 거칠게 돋은 가시들은 항구에 정박한 배가 닻 내린 듯 종이 표면을 단단히 부여잡고, 배 아래 집어넣은 오른쪽 뒷다리만 이따금 움찔거린다. 아마도 잠을 자며 무슨 꿈을 꾸는가 보다.


바람 쐴 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하늘 마당에 널브러진 별들을 눈으로 더듬으니 숫눈밟이를 할 때처럼 뿌득 뿌득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별들은 왜 저렇게 빛날까? 누가 저 많은 별들은 하늘에 박았을까? 누가 저 별들을 날마다 닦아주기에 저렇게도 반질거릴까? 이런저런 상상하며 별숲을 보노라니 어느덧 내가 우주 속을 나는 것만 같다. 견우와 직녀, 백조와 전갈 사이를 오가며 노니는 어린왕자가 된다.


어린왕자 같은 후배가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때론 주먹코를 훌쩍거리던 그는 지금 미국에 있다. <토지>라는 독서모임에서 만났는데, 고구마처럼 수더분한 민경의 얼굴엔 늘 웃음이 어려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너무 푸짐한 탓에 때론 잘 울곤 한다. 하지만 사내의 체면을 내세우려는지 남 앞에서는 눈물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민경의 일기장엔 자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책을 읽은 내용은 물론이고 순간의 감정들을 일기장이라는 그릇에 고이 담으려는 노력이 빤히 드러난다.


어느 날 민경이는 내게 자기 일기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형, 여기!"

장난기 섞인 표정이다. 때론 그는 말보다는 글을 통해 나와 얘기하는 걸 즐긴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말보다는 궁리하며 고른 단어들을 종이 위에 가지런히 놓은 글이 더 깊은 대화이기도 하다.

"응."

나는 찬찬히 그의 글을 훑었다. 벼훑이에서 낟알을 훑어내듯.



*** 이불을 개며 ***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이 있노라고,
그것도 무척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다 미칠 듯이 그리워하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위장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배포가 없고,
간이 나쁜 건지 담력이 콩알만 하다.
오늘도 나는 그런 나의 건강과 의지를 탓하며 간밤의 이부자리를 갠다.

햇볕 들지 않는 방에서도 알록달록한 이불을 개다가…
학교 다닐 때 좋아하던 '데칼코마니'라는 그림이 생각났다.
반으로 나뉜 한편 종이에 그리는 대로 다른 쪽에도 그려지고 묻어나는 데칼코마니.

몇 장 안 되는 이불을 이리저리 접다가,
철조망으로 접힌 알록달록 똑같은 들과 산.
저기 경계선까지 만큼의 똑같은 거리 뒤쪽에도 오늘 같은 감상적인 아침이 찾아올 테고,
이만한 방에 앉아 나처럼 이불을 개고 있을 네 생각이 났다.

너의 허름한 이불과 간밤의 불면과 풋풋한 젊음과 뜨거운 연애와 네 건강이 생각나고,
너의 절망, 너의 절망…
생각해내고는 나는 부끄러워 울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네게 나의 못남과 절망이 묻힐까 봐,
그 절망이란 것이 너무 부끄러운 것이라 운 것일까?
아니면, 먼 거리를 날아와 내 맘에 묻혀버린 너의 절망이 이리도 느껴져서 일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이 있노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것도 무척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다 미칠 듯이 보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절대로 절망하지 않도록 하시옵고….'라는 공중기도 속에 지나가는 평범한 말 한마디,
너와 내게 한 말 같아 울었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데칼코마니


민경이를 봤다. 그는 검문하는 경찰관에게서 자신의 신분증을 도로 건네받아 지갑에 넣듯이 일기장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지금처럼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이었다. 말없이 나뭇잎을 보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나 또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민경이는 반년 전부터 <토지>  모임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젯밤에 모처럼 전화했는데, 만나고 싶다고 하여 만난 것이다. 그는 하늘을 보고 그리고 나를 봤다. 나도 그를 보고 그리고 하늘을 봤다. 그의 모습은 이별을 앞둔 연인의 모습이랄까, 떠나야 하는데 자꾸 머뭇거렸다. 

달포 후,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공부를 하기 위해 간다고 말했다. 벌써 그러께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새 천년을 앞둔 1999년 가을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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