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5가지
난 청국장을 좋아한다. 고얀 발 냄새나는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는 딱히 모르겠다. 자기 방귀가 아무리 독해도 맡을 만하듯 청국장 냄새는 내 몸내인 듯 거슬림이 없다. 미꾸라지가 흙탕물 꺼려하지 않듯 나도 청국장을 마다하지 않는다.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 때 청국장 내 풍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구린 냄새를 달콤한 향기인 양 기꺼이 흠흠 대며 식탁 앞에 앉아 보글대는 뚝배기와 마주함은 적잖은 흐뭇함이다. 누런 콩 짜개와 깍둑썰기 두부, 송송 썰은 파 동강. 맛보기 첫술에 종일 눌린 피로는 해토머리 눈석임처럼 스르르 풀어지리라. 하지만 그것은 아른한 봄날의 백일몽, 아내는 청국장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아내에게 나 좋다고 청국장찌개를 해달랄 순 없지. 난 매너 있는 신사이기에, 내가 좋아한다고 상대도 좋아하라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집 밖 식당에서 같이 청국장을 먹으려 했었다. 근데 아내는 진짜 청국장을 안 좋아한다.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청국장찌개 먹는 것을 머뭇했다. 난 매너 있는 신사이므로 이마저도 포기했다. 혼자 식당에서 청국장찌개를 먹는 것도 쑥스럽고, 그러니 청국장을 거의 못 먹는다. 가끔 나처럼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긴 했다. 아내 아닌 딴 여자랑 청국장찌개를 먹는다. 청국장을 먹을 때는 잠시 한눈판다. 집에서 청국장찌개를 못 먹으니 아 슬프다.
팥칼국수 하는 집이 드물다. 시내 번화가에서 서서 둘러보면 바지락칼국수, 콩국수, 잔치국수, 가락국수, 스파게티, 라면집 등등 국숫집이 많기도 하다. 근데 팥칼국숫집은 보이지가 않는다. 시내 번화가를 걷다가 뭔가 먹으려고 이 골목 저 골목 뒤졌을 때 찾는 게 없다면, 그건 내 세상에는 없는 거다. 팥칼국숫집은 없다.
즐비한 식당 틈에 웬만한 메뉴는 다 있다. 열에 하나가 아니라 백에 하나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팥칼국숫집이 그렇다. 둘러보면 백여 개의 요식업소가 눈에 띈다. 그중 스물은 커피숍, 열은 패스트푸드점, 열은 분식집, 열은 고깃집인데 팥칼국숫집은 없다.
팥 음식은 손도 많이 가고 쉽게 변해서 식당에선 선뜻 내놓기가 무리인 음식이다. 찾는 이가 많다면야 해 볼 만도 할 텐데 찾는 이가 거의 없다. 나처럼 팥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어릴 적에는 칼국수를 밥보다도 더 자주 먹었다. 쌀은 구하기가 어려웠으나 밀가루는 정부에서 배급을 받았고, 팥은 농사를 지었기에 집에 있었다. 우리 남도지방 시골에선 팥으로 칼국수를 즐겨 해 먹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부지방 도시에선 가락국수, 만두는 즐겨 먹지만 팥칼국수는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니 팥칼국수 식당이 없을 수밖에. 아, 슬프다.
맛있는 돼지고기 삼겹살, 달궈진 불판에서 비명을 지른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그게 고기를 먹는 사람의 귀에는 환호성으로 들린다. 삼겹살을 굽다 보면 탄산음료 거품 터지듯 투두둑 소리가 들린다. 콜라겐 풍부한 돼지껍질 터지는 소리다. 고기가 급하게 익는 소리다. 맛있는 소리다. 그게 손에 튀면 화들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까짓 거 모기 한방 물린 듯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부지런히 고기를 뒤집는다.
식탐꾼은 미처 덜 익은 고기도 날름날름 집어먹는다. 다 익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확실히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러면서 돼지고기는 완전히 익혀서 먹어야 한다고 과학적인 설명도 곁들인다. 자기는 덜 익은 거 먹으면서 말이다. 남 못 먹게 침 바르는 심보랄까?
내 식탐도 만만찮기에 그에 뒤질세라 잘 집어먹는다. 한데 찜찜하다. 그 맛있는 삼겹살이 입에서는 당기는데 머리에서는 저어한다. 삼겹살의 비계가 거슬린다. 그 지방이 내 몸에 쌓인다는 생각에 슬쩍슬쩍 머뭇거린다. 고지혈증 사람에게 지방이 나쁘다는 것을, 모른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먹으려니 꺼림칙할 수밖에. 그렇잖아도 느끼한 고기가 더 느끼하게 여겨진다.
고기를 잘 익힌 후 비계 부분을 떼고 먹었다. 근데 이건 아니다. 떼낸 게 거의 반이다. 참새고기도 아니고 뭔가! 삼겹살은 살 사이의 지방 맛이다. 이 맛을 버릴 수 없으니 삼겹살은 고대로 구워 먹어야 한다. 먹을 땐 맛있는데 먹고 나서 신경 쓰이니 맘 편히 먹을 수가 없다. 아, 슬프다.
종잇장처럼 얇게 스민 복어회. 두툼하게 썬 광어회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 느낌은 쫀득하다. 그 맛은 음....... 모르겠다. 14년 전 일이다.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좋았다고 추측되는데 진짜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워낙 비싸서 맛있었다고 내 입맛이 주눅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복어회를 얻어먹은 후 한 번도 못 먹어봤다. 사 주는 사람도 없었고 사 먹지도 못했다. 내 돈 내고 사 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너무 비싸다. 아마 비쌀 것이다. 난 가격을 모른다. 그 후론 복어집에 가보지도 안 했다. 비싸서 엄두를 못 냈다.
살다 보면 주변엔 죽을 일이 많다. 차에 치일 수도, 물에 빠질 수도, 병에 걸릴 수도 있다. 못에 찔려 파상풍에 걸릴 수도, 누군가의 재채기에 폐렴이 걸릴 수도, 인절미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 죽을 수도 있다. 음식도 조심해야 한다.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릴 수도 있으며, 복어 먹다가 복어독에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을 피하면 그만큼 죽을 일은 줄어들 것이다. 난 복어 독에 죽을 일은 없으니 살 확률이 0.001% 정도 늘었다. 못 먹어서 죽을 일 줄었으니 좋아해야 할까? 이 억지도 슬프다.
페루에 작은형이 산다. 페루에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지구 반대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그렇게 먼 곳이니 쉽게 갈 순 없다.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면 가는 데만 45시간이 걸린다. 시간 내기도 쉽지 않다. 적어도 보름 이상의 휴가를 내야만 다녀올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휴가 내긴 무리다.
난 해외여행을 가면 현지 음식을 일부러 찾는다. 베트남의 쌀국수는 물론 태국의 똠양꿍도 좋아한다. 페루에 가면 그곳의 음식을 먹고 싶다. 음식도 새로운 경험이다. 그중에 '꾸이'라는 음식이 있다. 일종의 쥐 요리다. 내장을 뺀 기니피그를 씻어서 소금, 마늘 따위의 양념에 재워 구운 페루의 전통음식이다.
형수는 페루사람이다. 형수가 해주는 꾸이를 먹어보고 싶다. 한번 먹고서 또 찾아서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만이라도 먹어보고 싶다. 근데 페루는 너무 멀고 오래 걸려 갈 수가 없다. 갈 기약도 막연하다. 언제 가서 꾸이를 먹어볼까나.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