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뜨기 Jul 13. 2020

철없는 과일을 먹긴 하지만

수박

봄의 초리이자 여름의 어귀인 이즈막. 까까머리 모가 성깃성깃한 논배미에 어스름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면 제 세상 만난 악머구리가 볼때기를 부풀리며 밤새 개굴개굴. 아직은 오월이다. 아직은 봄이다. 


시내에 나가니 횡단보도 옆 파란 트럭에 계란 모양 수박이 얼기설기 쌓였다. 잘 익은 맛보기 수박이 광대처럼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이끈다. 아내는 조금 싸다는 이유로 꼭지 없는 수박을 골랐지만 난 좀 비싸더라도 꼭지 달린 수박을 택했다.


짙은 솔빛 바탕에 삐뚤빼뚤 무늬가 또렷한 수박에 부엌칼을 들이댔다. 손에 힘을 주어 칼날의 절반을 수박 속에 찌른 후 반으로 갈랐다. 잘 익은 수박이라면 꽁꽁 언 저수지의 얼음장처럼 쩍쩍거리며 갈라질 텐데 이 수박은 질긴 고깃덩어리를 자르듯 힘겹게 갈라졌다.


얼핏 겉의 빛깔만 봐서는 잘 익어 보이지만 속을 보니 비곗살 같은 껍질은 너무 두껍고 속살엔 힘줄 같은 흰 띠가 있다. 이 부분은 씨앗이 생기는 곳인데, 지게미 같은 덜 여문 씨가 듬성듬성 달렸다. 제대로 자란 수박이라면 씨앗이 제 모양을 갖추었을 텐데 미처 익지 못한 것이다. 


수박 속은 하얀 눈가루에 체리즙으로 물들인 듯 밝은 빛깔로 먹음직스럽다. 하지만 새까맣고 통통한 씨앗보다는 덜 여문 흰 씨앗이 대부분이다. 잘 익어 보이지만 억지로 익힌 감이 든다. 어쩜 물감 주사를 놓었거나 성장호르몬을 처리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봄에도 수박을 맛볼 수 있는 것에 마냥 신나고 즐거워한다. 과학의 발전이라며 자축한다.


그래, 처음엔 봄에 수박을 맛볼 수 있어서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제는 겨울 수박도 낯설지 않다. 시나브로 데워지는 비커 속 개구리처럼 철모르는 과일에 우리의 계절감도 덩달아 무뎌져만 간다.


지금은 사철 내내 나물이나 과일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밥상에 오른 냉잇국을 보며 봄을 느끼거나 수박을 먹으며 여름을 실감하긴 어정쩡하다. 철없이 나서는 과일이기에 어떤 과일을 제철과일이라고 부르기가 왠지 머쓱하다. 편리라는 이름으로 질서를 외면하는 우리는 과일이 철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먼산바라기다. 


인위적으로 빛과 온도를 조절하여 식물의 생장을 조절하는 것은 비단 그 식물 하나만의 부자연스러움은 아니다. 중국 북경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다음 달 미국의 뉴욕에는 폭풍이 일 수 있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처럼 내가 먹는 이 수박으로 인해 남극의 빙하가 녹는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도 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는 과학의 시대에 오월의 수박은 대수롭지 않은, 아니 이제는 당연시 여겨지는 현상이다. 수박은 참 맛있다. 철을 속은 줄 알면서도 그 달콤함에, 철모르는 수박을 우적우적 먹는다. 그 맛이 달곰씁쓸하다.

이전 12화 그가 먹는 것이 바로 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