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이 당연한가?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을 먹었다. 여느 때와 달리 점심은 안 먹었다. 못 먹은 게 아니라 안 먹었다. 아침나절 주전부리하니 점심밥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저녁은 챙겨 먹었다. 이따금은 저녁을 건너뛰기도 한다. 참을만한 허기면 거른다. 이렇게 대중없이 끼니를 거르더라도 출출하면 어느 때고 밥을 먹을 수가 있다. 밥은 키 작은 감나무에 달린 홍시처럼 손 내밀면 쉬이 잡힌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것이다.
밥하기는 참 쉽다. 예전처럼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불땀 봐가면서 아궁이에 불 땔 필요 없이 지금은 전기밥솥에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마저도 귀찮다면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만 돌리면 된다. 즉석밥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신비스러운 요술이다.
어느 때나 어디서나 당연히 밥 먹을 수 있다.
발품 팔 것도 없다. 돌아서면 눈에 띄는 편의점에서 가장 적은 금액 지폐 한 장이면 밥 한 공기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 중에 있다. 매일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들의 젊은 시절엔 밥 먹는 게 당연하지 않았다. 지난 과거라고 둘러대기엔 너무 가까운, 어제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도 지구를 돌려보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는 배고픔이 일상인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100%다. 쌀 생산량은 차고 넘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인 FAO가 권고하는 우리나라의 적정 쌀 재고량은 80만 톤이다. 2010년 이후 우리는 계속 적정량 이상의 쌀을 품고 있다. 2017년엔 351천 톤으로 적정량보다 4배나 많은 쌀을 안고 있다. 그야말로 곳간이 차고 넘친 상황이다.
이 풍요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좋은 벼 품종을 연구 개발한 육종가와, 농약과 비료를 생산하여 공급한 기업체와, 농업정책의 방향을 잡고 생산기술을 교육한 농업기관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봄에 5kg의 볍씨를 뿌려서 여름내 가꿔 가을에 700kg의 나락을 수확한 농업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매일 밥상을 차리는 도시민에게 감사를 드린다. 물을 계속 퍼야 샘이 마르지 않듯 소비는 생산을 부추기는 물 푸기다.
소비자는 다른 한 편의 생산자다.
당연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당연함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밥을 먹고자 할 때, 어디서나 어느 때나 발품 팔 것 없이도 지폐 한 장으로 밥 한 공기 살 수 있다. 이것이 늘 당연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기에 지금의 밥 한 공기가 새삼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