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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 섬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

토끼섬

by 시골뜨기

바다 한가운데 사막 섬이 있다. 그 섬엔 풀도 자라지 않고 초식동물도 없고 육식동물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섬을 '토끼섬'이라고 부른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아기였을 적에 그 섬에는 싱그러운 풀이 무성했고, 480마리의 토끼가 살았고, 아홉 마리의 여우도 살았다. 사방에 풀이 푸지므로 토끼들은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시름이 있었는데, 그것은 언덕 너머의 바위굴에 사는 여우였다. 여우는 매일 예닐곱 마리의 토끼들을 잡아먹었다. 토끼는 모일 때마다 여우가 이 섬에서 사라지길 애면글면 기원했다.


그들의 바람이 통한 걸까!


어느 날 한 척의 배가 섬으로 다가와서는 여우를 모조리 잡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여우 가죽을 애물단지 다루듯 소중하게 여기며 매우 흡족해하였다. 그 광경을 굴참나무 뒤에서 훔쳐보던 토끼들은 매우 기뻐서 호들갑을 떨었다. 드디어 토끼 세상이 왔다. 이제 이 섬은 토끼만의 세상이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토끼는 달마다 새끼를 낳았다. 두 달이 지나니 978마리가 되었다. 그러나 섬에는 풀이 많아 먹이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넉 달 후에 1,635마리가 되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토끼들이 먹을 만한 풀밭은 있었다. 여섯 달 후엔 1,853마리가 되었다.

사이가 좋던 토끼들이 먹이를 가지고 다투기 시작했다. 토끼는 자꾸자꾸 늘어나는데 풀밭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여덟 달 후 토끼는 953마리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초원은 그 전의 반의 반도 되지 않아 풀은 극히 모자랐다. 토끼는 아득바득 뿌리까지 갈아먹었고, 심지어는 나무도 갈아먹었다.

해포 후, 토끼는 239마리만 남았다. 그러나 섬에는 풀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토끼는 풀뿌리조차 모조리 뽑아먹고 나무줄기도 다 갈아먹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다. 이러구러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섬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 사막 섬이 있다.

그 섬엔 풀도 자라지 않고 초식동물도 없고 육식동물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섬을 '토끼섬'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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