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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31. 2020

노란 얘기

송홧가루, 민들레, 씀바귀

송홧가루

겨울엔 몽골에서 날아오는 노란 모래(黃砂)가 하늘을 노랗게 하더니, 봄엔 소나무 숲에서 버섯구름처럼 피어오른 송홧가루가 누리를 누릿하게 한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살짝만 스쳐도 요란스레 일어나는 송화는 참새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틀다가 아무 곳이나 내려앉는다. 차 위는 물론이고 차 안에도 떡하니 내려앉고, 아파트 창틈으로도 비집고 들어와 집안에 뽀얗게 쌓이고, 나뭇잎과 풀잎 위에도 물이끼처럼 지저분하게 달라붙는다.


자기들은 성스런 결혼을 위한 여행이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 요란을 떨어야 하나? 그 심보는 대체 뭐람!

하긴 화려한 꽃들은 중매쟁이인 벌과 나비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인간들의 눈길을 잡아끄는데, 소나무는 송홧가루라도 날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혼을 모르고 지나칠 거다. 소나무는 마치 ‘나 결혼해요’라고 손 흔들며 꽃가루를 뿌리는 것 같다.


송화가 날리는 오월이면 잠시 소나무의 결혼을 생각하곤 한다. 현대 사람들은 쉽게 만나 쉽게 관계를 가진다. 마치 화려한 속씨식물의 장미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겉씨식물인 소나무꽃(꽃이라고 부르기엔 화려한 꽃잎도 없고 달콤한 향기도 없지만)은 어렵게 만나 긴 시간이 지나서야 관계를 가진다.


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송홧가루를 만들어 바람에 실어 보내면 대부분은 엉뚱한 곳에 떨어지지만, 그중에 아주 일부는 우연히 암술에 내려앉는다. 그러나 둘이 만나자마자 바로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올봄에 만난 소나무 부부는 일 년 하고도 반년이 지난 다음 해 가을에야 열매를 맺는다. 소나무 신혼부부는 사계절을 함께 보낸다. 사계절이란 단순히 일 년이라는 세월뿐만 아니라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긴 세월의 인내와, 다양한 환경의 변화를 함께 극복하는 관계다.


책상 위에 뿌옇게 쌓인 송홧가루를 보고 김 경사가 물었다.

“비싼 돈을 주고 북한에서 송홧가루를 사 온다는데, 이거 몸에 좋은 거죠?”


틀린 말은 아니므로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막연한 질문은 막연한 대답을 이끈다. 난 확실한 답을 주고 싶어 입을 뗐다.


“입으로 먹은 송홧가루 배로 들어가 몸에 참 좋지요. 하지만 코로 마신 송홧가루는 가슴으로 들어가서 몸에 해로워요.”


음식으로서의 송홧가루는 보약식품이지만 허파로 들어가는 송화는 몸에 해로운 먼지일 뿐이다. 이산화탄소가 폐에는 해롭지만 위에서는 속 시원한 기분을 내듯. 내 대답에 어리둥절해하는 김 경사의 모습이 우습다.

송홧가루




민들레

지난달. 지천에 들풀들이 흙을 뚫고 삐쳐 나오더니 금세 세상을 푸르게 물들였다. 이어서 노랑, 자주, 빨강의 꽃들이 듬성듬성 피기 시작했다. 개불알꽃, 양지꽃, 현호색, 제비꽃, 그리고 이름 모르는 수많은 들꽃들. 이들의 어울림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그러나 들풀은 잡초이기도 하다. 그들이 들에만 핀다면 나도 굳이 건들고 싶지 않지만 그들 중에는 인도의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나라면 그곳에서 살라고 해도 싫다고 할 텐데 몇몇 들풀은 모질게도 그 좁은 틈새에서 용케 뿌리를 내리고 꽃도 핀다.


주로 민들레가 많았다. 민들레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뿌리를 동강내어 흙에 묻어도 각각 싹을 틔우는 억척스러운 민들레. 이 민들레를 처치하기 위해 우리의 용감한 경찰의장대 영철이와 재형이가 수동분무기에 제초제를 담아 출동했다. 


나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노란 민들레꽃이 참 예쁘다. 하지만 그들이 인도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난 제거해야만 했다. 이미 꽃이 핀 것도 있었고 막 꽃봉오리를 맺은 것도 있었다. 이왕이면 꽃이 피기 전에 없애야 한다. 꽃이 피고 저서 씨가 맺히면 그 갓털 씨앗이 퍼져서 엄청나게 번식을 할 테니 말이다. 


근사미(제초제)의 위력은 대단했다. 약 맞은 민들레는 선명한 꽃이 빛을 잃고, 싱싱한 잎은 오그라들었다. 너희들 다 죽었어! 나는 쾌재를 울리며 의기양양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삼 일 후, 난 약발을 확인하려 후문으로 갔다. 멀찌감치 볼 때 노란 민들레꽃은 보이지 않았다. 약발이 제대로 들었다고 여기며 가까이 다가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세상, 인도 위에 하얀 구름이 잔뜩 깔렸다. 민들레가 씨를 날릴 자세를 하고 날 기다리는 거다. 난 제초제로 민들레를 제압했다고 여겼는데 오히려 내가 된통 당한 꼴이다. 


분명 민들레는 죽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모든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데 집중했고, 삼 일 전에 꽃망울이었던 것들도 모두 씨를 맺고 죽은 거다. 갓털을 단 씨앗은 바람을 타고 두루 퍼질 기세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거다. 

제 몸을 던져 자식을 살리는 민들레 앞에서 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민들레는 죽어서 씨를 남기는 건가? 바람이 불자 하얀 갓털에 몸을 맡긴 민들레 씨앗이 가뿐하게 날아올라 사방으로 퍼졌다.

민들레


씀바귀

회의 시간에 시설계장이 말했다. 

“본관 앞 잔디밭에 꽃 핀 토끼풀이 많던데 씨가 퍼지기 전에 빨리 없애야 되겠지?”


내가 알기로는 본관 앞 잔디밭에는 토끼풀이 없는데 계장은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난 말했다. 

“계장님, 혹시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계장은 아니라는 거다. 자신의 두 눈으로 토끼풀을 똑똑히 봤다는 거다.

“노란 토끼풀이 활짝 피었던데?” 


잉? 토끼풀은 노란 꽃이 아니라 흰 꽃인데!

회의가 끝나자 난 본관 앞 잔디밭으로 갔다. 거기엔 씀바귀가 있었다. 마침 계장이 오셨길래 그 풀은 토끼풀이 아니고 씀바귀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계장은 토끼풀이라고 우겼다. 토끼가 씀바귀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토끼풀은 클로버고 씀바귀는 씀바귀다.


“계장님, 이것은 토끼풀이 아니고 씀바귀인데요?”

“아냐, 우리 동네에서는 이것을 토끼풀이라고 불러!”

헉! 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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