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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Dec 13. 2020

해캄의 겨울나기

해캄의 겨울나기


겨울이 간다

그리고 봄이 온다

마음속 빈 곳은 휑한데

채우지 못함은 왜일까?


해캄은 자기 비우고 상대 채운다

그러고 함께 겨울 나고 봄 맞는다

그러나 난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

상대가 미덥지 못한 걸까, 내게 믿음성이 없는 걸까?

아마, 비움이 채움인 걸 깨닫지 못함 일게다


해캄의 죽살이는 함께살이

사람의 삶은 양다리

삶과 죽음의 틈새에서

움츠려 살기엔 허락된 생이 너무 짧아

스스럼없는 사귀며 더불어 살자

그게 사람답지 않은가!




1. 겨울

올 겨울은 매우 춥고, 바람은 맵고, 눈은 푸지고, 그리고 길기만 하구나.


2. 겨울나기

배롱나무는 두툼한 지푸라기 옷을 입었고, 땅두릅은 줄기를 팽개치고 뿌리만 흙속에 감췄다. 까치는 흰 깃털을 보푸라기처럼 부풀리고, 연인은 서로 팔짱을 꼈다.


3. 해캄의 겨울나기

도서관 뒤에는 아름드리 고욤나무 한 그루가 고즈넉이 서있고, 그 아래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땅에 묻힌 관을 타고 또르르 흐른다. 물은 옹달 돌절구에 떨어지고, 나울거리는 겉물은 돌절구 부리를 타고 넘어 이슬방울을 일으키며 도랑으로 흘러든다. 돌절구 가장자리에는 헝클어진 머리칼 같은 해캄이 떼로 떠있다. 그 해캄은 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 그 보듬음은 둘이 단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완전한 하나다.


4. 해캄의 살아가기와 사랑하기

해캄은 가지가 없는 긴 실 모양의 녹조류다. 세포는 실처럼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데, 세포막 바깥층은 펙틴질로 싸여 있어 미끈하다. 봄과 여름에는 주로 몸의 일부가 분리되어 새로운 개체가 생기는 무성생식(無性生殖)으로 번식하는데, 겨울에는 기다란 두 해캄이 나란히 붙어 접합관을 만들어 한쪽의 핵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여 둘이 하나가 되어 겨울을 난다. 합쳐진 세포인 접합자는 두꺼운 세포벽으로 둘러싸여 영양적 사상체가 죽은 겨울에도 살아남는데, 나란히 대하는 세포끼리 핵물질을 주고받으며 봄에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내는 유성생식(有性生殖)을 한다.

해캄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둘이 서로 껴안아 하나가 되어 추위를 이긴다. 또한 서로의 가장 소중한 부분인 핵을 합하여 하나가 된다. 이는 이담에 둘, 넷, 여덟이 되기 위한 사귐이기도 하다. 두 해캄이 서로 보듬어 하나가 되는 것은 살아가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방법이기도 하다. 삶은 곧 사랑이다. 삶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만 한다. 해캄은 그렇게 겨울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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