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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Aug 01. 2020

단편소설 <풍뎅이>

통일

풍뎅이


땅거미가 내린다.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는 줄을 타고 눈물처럼 스르르 내려온다. 어스름 깔린 풀숲마다 고운 소리 삐죽삐죽 내비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전에 조율하듯 풀벌레들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더니 저마다의 소리를 풀어헤친다. 제멋대로인데도 귀에 거슬리지 않은 것을 보니 그들끼리의 어울림이 있나 보다. 누가 지휘자고 누가 연주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청중임이 확실하다. 눈물겹게 기꺼운 청중이다. 혼자 듣기에 너무 아깝고 버겁지만 이 숲에 인간이라곤 나밖에 없으니 홀로 감상을 할 수밖에.


어그러진 뼈들이 제 자리를 찾는 것 같고, 굳어진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리는 듯하다. 옹달샘에서 얼음장 같은 샘물을 한 움큼 떠 마신 양 머리는 맑은 유리처럼 말짱해졌다. 밝은 낮을 닫고 어두운 밤을 여는 어귀에서 나는 기지개를 켜고 새 세상의 빗장을 풀었다.


병풍처럼 지그재그로 난 비상계단을 따라 도서관 3층으로 올라간다. 한 발씩 내딛는 발길에 부러 힘을 줬다. 힘이 들기에 그러했다. 내 발은 종일 시달린다. 학교 골골샅샅이 다니며 나무를 다듬고 잡풀을 제거한다. 몸은 젖은 빨래처럼 후줄근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종아리에 힘주며 계단을 오른다. 도장 찍듯이 꾹꾹 밟으며 오른다. 그러면 오히려 힘이 생긴다. 비쩍 마른 수수 줄기를 꽉 비틀면 찔끔 즙이 스미듯 지친 다리 근육에 힘이 생긴다.


도서관 한 켠의 내 자리, 늘 그 자리다. 그 자리에 앉으면 피로가 풀린다. 눈 익은 책이 꽂혀있고, 손 익은 필기구가 자리한 내 자리. 칸막이가 되어있어 나만의 작은 공간이 마련된다. 아파트 화장실 안의 작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몸을 담그듯 난 엉덩이를 의자에 바투 붙이고 쉬는 것이다.


책상 앞 책꽂이에 꽂여 있는 책을 꺼냈다. 낮 내내 고스란히 서있었던 그도 나처럼 피곤하지 않았을까? 난 비스듬한 독서대에 그 책을 살포시 눕혔다. 그리고 펼쳤다. 두 팔 벌리고 벌러덩 누워 천정을 바라보듯 책은 제 앙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내 눈길은 책을 알뜰살뜰 더듬으며 가슴에 박힌 글자들을 쪼아 먹었다. 창고에 볏가마  쌓이듯 머릿속에 글자들이 차곡차곡 쟁여갔다. 정수리 위의 형광등은 하얀 불빛을 내리쏘고, 그 불빛은 하얀 종이를 비추고, 하얀 종이는 그 빛을 내 얼굴에 되비쳤다. 내 얼굴이 환해졌다.


여름의 막바지, 밤이면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밤하늘의 백조자리도 나그네새처럼 철 따라 떠날 채비를 하고, 새로운 별자리들이 그 자리를 자리하려 한다. 아직도 모기들은 극성이지만 오갈 든 풀잎처럼 기운 잃어 보인다. 불빛 따라 실내로 들어온 날벌레들이 형광등에 자꾸 부딪치며 징징거린다. 내일 아침이면 그네들은 죽어있을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도 모레면 죽을 판이다. 이 건물 안에서 맥없이 죽어야 하는 그들이 측은하다. 그들은 건물 안이 아니라 수풀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인공 불빛에 꾀여 문틈 사이로 겨우 들어왔지만 통발 안의 물고기처럼 다시는 나갈 수는 없는 날벌레의 운명. 형광등 주변만 맥없이 맴돌다 지쳐 죽을 가련한 삶이다. 달빛과 별빛 따라 날갯짓을 하며 짝을 만나고 후손을 남긴 후 죽어야 하는데, 마약에 중독된 듯 강한 인공 빛에 홀려 자꾸만 모여드는 어리석은 이들. 날벌레야, 너희들을 가로막는 건물의 방충망은 오히려 너희들을 살리는 보호막이란다! 장작개비가 불똥 튀기며 타닥거리듯 자꾸만 형광등에 부딪치며 다닥거리는 날벌레들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다시 책을 내려다본다.




펼친 책은 한국사다. 우리 민족은 인류학상 몽고 인종에 속하는 원시 퉁구스족의 한 갈래이며,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우리 민족의 주류는 북방계 청동기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무문토기인들이다. 처음, 그러니까 구석기시대에는 권력과 지배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였는데 청동으로 발달된 농기구를 제작하여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함으로써 빈부의 격차가 생겼으며, 청동무기로 정복전쟁을 하여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이 생겼다. 이로써 평등사회였던 씨족사회는 보다 큰 지역 단위의 군락사회로, 또다시 이웃의 여러 부족들을 복속하여 수천 호를 다스리는 정치적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여 군장사회가 되었다. 철기가 보급되어 보다 강력한 정치조직인 국가가 성립되었는데,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의 초기국가 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만이 고대국가로 발전을 하였다.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삼국은 서로 다투고 협력하며 발전하는 부분까지 지난번에 학습했었다.


역사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비록 책 속의 인물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그들의 삶의 통해 오늘 교훈을 얻게 된다. 역사는 거울 같아서 자꾸 닦으며 들여다보면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다. 역사의 거울을 통해 오늘을 비춰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 잉잉거린다. 아마 불빛에 이끌리어 왔나 보다. 창문은 다 방충망을 쳤는데 어디로 들어왔지? 전등 주위를 빙빙 돌더니 하필이면 내가 펼쳐놓은 책장에 내려앉아 지친 날개를 바가지 같은 껍데기에 접어 넣는다. 금방 다시 날아가겠지 하고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았다. 청동갑옷 같은 등이 뺀질뺀질하다. 어찌 보면 보석 같은 모습이다. 어기적거리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노라니 문득 ‘삶’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저 작은 곤충에게도 생명이 있겠지. 그 생명도 내 생명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이놈은 하얀 종이에 앉아 더듬이를 다듬고 발을 비비고 움씰움씰하더니 아예 다리를 까칠까칠한 종이에 단단히 고정하고 움직이려 하지를 않는다. 무슨 속셈인가? 아예 잠자리를 마련할 깜냥인가 보다. 예상 밖의 상황에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펼쳐진 책장의 내용만 계속 들여다본다. 굳이 책장을 넘겨서 지친 날개를 접고 막 잠을 자려는 그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사냥꾼도 새가 제 품으로 날아들면 보호해 준다는데 내 책장에서 지친 몸을 쉬려는 작은 생명을 차마 억지로 쫓아낼 수 없어 책장 넘기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한잠 자고 나면 떠나겠지.


펼쳐진 책장의 내용은 신라의 영걸 무열왕에 대한 것이다.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자리를 잡아 가장 빈약했던 신라가 나중에는 삼국을 아우르는 내용이다. 약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나라를 이용한 외교정책을 잘 한 덕이 크다. 싸움에 있어서 때론 주위의 힘을 이용하여 적을 무찌르는 것이 유용한 전술이다. '외교정책은 한시도 휴식이 있을 수 없다. 대당 외교가 바로 우리의 살 길이며 나라 발전의 지름길이다'라고 주장하던 무열왕은 죽어가면서도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라'라고 당부하여 결국 신라가 삼국을 아우를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반쪽 짜리 통일이라서 고구려의 그 넓은 영토를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외세를 의지한 탓에 한반도 내에서조차 주도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처음으로 한민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풍뎅이는 아예 깊은 잠이 들었나 보다. 도무지 일어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다리에 거칠게 돋은 가시들은 항구에 정박한 배가 닻 내린 듯 종이 표면을 단단히 부여잡고, 배 아래 집어넣은 오른쪽 뒷다리만 이따금 움찔거린다. 아마도 잠을 자며 무슨 꿈을 꾸는가 보다.


바람 쐴 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하늘 마당에 널브러진 별들을 눈으로 더듬으니 숫눈밟이를 할 때처럼 뿌득 뿌득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별들은 왜 저렇게 빛날까? 누가 저 많은 별들은 하늘에 박았을까? 누가 저 별들을 날마다 닦아주기에 저렇게도 반질거릴까? 이런저런 상상하며 별숲을 보노라니 어느덧 내가 우주 속을 나는 것만 같다. 견우와 직녀, 백조와 전갈 사이를 오가며 노니는 어린왕자가 된다.


어린왕자 같은 후배가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때론 주먹코를 훌쩍거리던 그는 지금 미국에 있다. <토지>라는 독서모임에서 만났는데, 고구마처럼 수더분한 민경의 얼굴엔 늘 웃음이 어려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너무 푸짐한 탓에 때론 잘 울곤 한다. 하지만 사내의 체면을 내세우려는지 남 앞에서는 눈물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민경의 일기장엔 자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책을 읽은 내용은 물론이고 순간의 감정들을 일기장이라는 그릇에 고이 담으려는 노력이 빤히 드러난다.


어느 날 민경이는 내게 자기 일기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형, 여기!"

장난기 섞인 표정이다. 때론 그는 말보다는 글을 통해 나와 얘기하는 걸 즐긴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말보다는 궁리하며 고른 단어들을 종이 위에 가지런히 놓은 글이 더 깊은 대화이기도 하다.

"응."

나는 찬찬히 그의 글을 훑었다. 벼훑이에서 낟알을 훑어내듯.



*** 이불을 개며 ***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이 있노라고,
그것도 무척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다 미칠 듯이 그리워하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위장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배포가 없고,
간이 나쁜 건지 담력이 콩알만 하다.
오늘도 나는 그런 나의 건강과 의지를 탓하며 간밤의 이부자리를 갠다.

햇볕 들지 않는 방에서도 알록달록한 이불을 개다가…
학교 다닐 때 좋아하던 '데칼코마니'라는 그림이 생각났다.
반으로 나뉜 한편 종이에 그리는 대로 다른 쪽에도 그려지고 묻어나는 데칼코마니.

몇 장 안 되는 이불을 이리저리 접다가,
철조망으로 접힌 알록달록 똑같은 들과 산.
저기 경계선까지 만큼의 똑같은 거리 뒤쪽에도 오늘 같은 감상적인 아침이 찾아올 테고,
이만한 방에 앉아 나처럼 이불을 개고 있을 네 생각이 났다.

너의 허름한 이불과 간밤의 불면과 풋풋한 젊음과 뜨거운 연애와 네 건강이 생각나고,
너의 절망, 너의 절망…
생각해내고는 나는 부끄러워 울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네게 나의 못남과 절망이 묻힐까 봐,
그 절망이란 것이 너무 부끄러운 것이라 운 것일까?
아니면, 먼 거리를 날아와 내 맘에 묻혀버린 너의 절망이 이리도 느껴져서 일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이 있노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것도 무척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다 미칠 듯이 보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절대로 절망하지 않도록 하시옵고….'라는 공중기도 속에 지나가는 평범한 말 한마디,
너와 내게 한 말 같아 울었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데칼코마니


민경이를 봤다. 그는 검문하는 경찰관에게서 자신의 신분증을 도로 건네받아 지갑에 넣듯이 일기장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지금처럼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이었다. 말없이 나뭇잎을 보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나 또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민경이는 반년 전부터 <토지>  모임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젯밤에 모처럼 전화했는데, 만나고 싶다고 하여 만난 것이다. 그는 하늘을 보고 그리고 나를 봤다. 나도 그를 보고 그리고 하늘을 봤다. 그의 모습은 이별을 앞둔 연인의 모습이랄까, 떠나야 하는데 자꾸 머뭇거렸다. 

달포 후,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공부를 하기 위해 간다고 말했다. 벌써 그러께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새 천년을 앞둔 1999년 가을의 일인 것이다.




심 목사는 대학 선배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의 교회로 와보니 심 목사는 이 교회에서 청년부를 맡고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조금은 특별했던 사람이라 관심도 있었고 잘 따랐던 선배다. 심 선배는 학교에 다니던 중에 휴학하여 성남의 모란시장 옆에 있는 양말공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기도 했으며,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해포 동안 살면서 낮엔 고기잡이배를 타고 밤에 야학을 하기도 했었다. 선배는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는 사이 목회자가 되어있었다.


심 목사를 중심으로 몇몇의 젊은이들이 모여 독서모임인 <토지>를 만들었다. <토지>에서 나눈 얘기는 일반 교회 안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통일이나, 농촌, 노동자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학국사'를 읽으며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한국사를 보기도 했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으며 하나님의 토지법을 배우기도 했다. 박노해의 '첫 마음'이라는 시를 즐겨 읊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나눈 얘기 중에는 '통일'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21세기를 앞둔 한국인들에게 통일이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했고, 기독 젊은이들로서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세대가 너무 외면하기에 우리라도 붙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통일이 되길 막연히 바랄 뿐 통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예수님은 우리나라가 통일되기 바라실까?"


심 목사는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우리는 열심히 답을 찾았다.


"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길 바라시겠죠."


충범이가 답했다. 심 목사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얘기를 풀었다.


"맞아.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도 우리처럼 나라가 갈라졌을 때가 있었지.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장자 르호보암의 정치적 안목 부족과 고질적인 지역감정 및 지형적 특수 사정에 의해서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단되었어. 에스겔 37장 15절에서 17절을 보면, 바벨론의 속국이 된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고 약속하는데, 회복될 이스라엘은 두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로 결합하시겠다고 하시지. 원래 하나였던 국가가 인간의 죄로 인해 둘로 나눠진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지. 우리도 원래 단일민족, 단일국가잖아.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내부적인 역량 부족과 자체 분열로 인해 갈라진 것처럼 우리도 해방공간에서 분단을 맞이하게 된 거지."


우리의 상황과 이스라엘의 상황을 견주어 설명하는 심 목사의 설명을 들으니 새로웠다.


"목사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한 나라도 합쳐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정말 원하실까요?"


대학을 갓 졸업한 막내둥이 철수가 물었다.


"하나가 둘로 나뉜 이스라엘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하나님은, 오늘날 50년이 넘게 둘로 나눠진 상태에서 서로 적대시하는 우리 민족을 보며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실까? 분명히 우리가 하나 되길 바라실 거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며 하나 되길 원하시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분열이나 나뉨보다는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서로의 입장이나 생각이 다른데 무조건 합해질 수는 없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때론 갸우뚱거리며 듣던 대창이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 그러나 적어도 의도적인 단절, 그러니까 제도적인 단절이나 상호교류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잇는 상태의 지속은 우리가 지향해서는 안 될 거야. 내가 말하는 연합이란, 무조건적인 하나 됨, 혹은 완성된 결정체인 하나는 아니야. 서로 뜻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뭉뚱그려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는 무엇을 위한 통일이냐 하는 문제와 어떻게 통일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잘 다루어야 해. 통일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활발한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 이지. 이 시대를 살면서 통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기독청년이 있다면, 그는 무지하거나 둔감하거나, 아님 세상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일 거야."


심 목사가 이렇게 얘기를 하자 민경이가 물었다.


"왜 통일을 해야 하죠? 꼭 해야만 하는 건가요?"


어찌 보면 엉뚱한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통일, 그러나 그 당연함 또한 막연할 수도 있다. 심 목사의 눈빛은 닭을 발견한 솔개처럼 번뜩였다.


"반드시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거야.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은 통일이 가능한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야. 그 첫째 이유는, 미·소로 중심으로 한 이념의 세대가 가고 탈냉전의 시대인 지금은 우리의 남북 분단을 유지할만한 이념을 상실한 상황이라는 거야. 물론 북한이 바로 자신들의 이념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이 우리 민족의 분단을 당연시할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에 북한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지. 이는 남북 당사자간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통일을 위한 합의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는 뜻이지. 둘째는, 주변국과의 통일을 위한 합의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는 거야. 한국의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 국제적인 분위기가 중요한데, 우리가 중국과 소련과 국교를 맺음으로써 통일을 방해하는 장애를 제거하였다는 점이야. 셋째는, '세계 민족주의의 제2차 자기 해방'으로서의 통일 가능성이 생겨난 거야. 1차 해방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서방 식민지들이 독립한 것을 말하고, 2차 해방은 냉전이 끝나면서 공산권에 묶였던 나라들이 자기 해방을 한 것인데, 월남과 독일, 구소련의 여러 공화국과 유고연방의 민족들을 볼 수 있지. 이러한 세계적 민족주의의 흐름은 한반도의 통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야."


이제는 통일 가능성의 시대가 되었다는 말에 우리는 깊이 공감을 하였다. 하지만 통일의 길은 막막하기만 해 보였다. 통일비용이라는 말로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북한의 주민들과 이 민족의 분단 현실을 두고 기도했다. 민석이는 통성으로 기도하며 울먹였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기울어진 책에 매달려 잠을 자던 풍뎅이는 책상 위에 벌렁 누워있다. 아마 잠결에 굴러 떨어졌나 본데 그대로 잠을 자고 있다. 살짝 밀어 옆으로 제쳐놓았다.


태종 무열왕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지금의 대통령이 떠오른다. 김춘추와 김대중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왕이 되는 과정이나 정책들이 말이다. 엄격한 골품제도의 신라에서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진골인 김춘추가 진골에서는 처음으로 왕이 되어 무열계의 왕위가 이어졌다. 김춘추는 외교정책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고구려에도 갔었고, 당에 가서는 국학에 가서 석존과 강론을 참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왕이 된 후에 집사부를 설치하여 관제를 정비하고 9서당 군단을 설치하여 국방안보와 국난극복에 노력했다. 그는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고, 신라는 그를 시작으로 하여 중대가 펼쳐졌다.


김대중은 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김춘추처럼 폭넓은 외교정책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꾀하는 대통령이다. IMF의 어려운 국난을 잘 극복했고,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하여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었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다.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 때 삼국의 통일이 이루어졌듯 다음대의 대통령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책임을 떠넘기는 위한 비겁함이다. 통일은 대통령이나 몇몇 잘 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상황과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잠깐 내 책임을 남에게 떠넘겼다. 나도 민경이처럼 조급해진 것인가?


99년 봄, 민경이가 <토지>에 나오지 않자 난 그를 찾아갔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통일을 소망하고 같이 연구하며 기도를 하였는데 돌연 그만둔 까닭이 궁금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그것은 공허해요."


불쑥 뱉은 그의 말에 난 의아했다.


"우리끼리 모여서 토론하고 기도해야 김정일이 꿈쩍이나 하겠어요. 아니, 이 나라의 정치인이나 경제인들, 아니 국민들이 정말 통일을 바라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전에 민경이는 우리가 통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심 목사에게 물었었다. 그때 심 목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맘으로 마음에 새긴 뜻을 품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자고 얘기했던 것 같다. 당장의 행동지침을 기대했던 민경이는 실망했던 것 같다. 그 후 뭔가를 갈급하던 민경이는 그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자 더 조급해하더니 제풀에 꺾이고 말았다. <토지>에서 더 이상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안 그는 그 후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박노해의 '첫마음'이란 시를 읊었다.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형, 나 성공할 거예요. 참혹하게 성공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민경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민경이는 가을에 미국으로 떠났고, 새 천년을 앞둔 그해 겨울에 나는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다. 과연 통일은 될까,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 남한 내의 통일에 대한 생각들이 통일될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통일비용이 엄청나며, 그 비용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거라는 여론이 삐죽삐죽 나오곤 했다.


99년 가을, 심 목사가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토지>라는 독서모임도 해체되었다. 마지막 모임에서 심 목사는 '북극성'에 대한 얘기를 했다.


"북극성은 그 자리가 변하지 않는 별이다. 그래서 방향의 기준이 되는데, 우리는 여행할 때 자꾸 자리가 변하는 별을 보기보다는 북극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북극성이 방향의 기준이듯 우리 삶에도 기준으로 삶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때때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기준이어야 한다. 우리가 각각 품어야 할 소중한 뜻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단단히 붙잡고 가자. 우리가 북극성을 바라보는 것은 그 별을 따기 위함이 아니라 그 별을 향해 가기 위해서다."


심 목사의 말은 밭에 뿌려지는 씨앗처럼 내 가슴에 심겼다. 나는 그날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극성

"우리가 꿈꾸는 통일도 어쩜 북극성인지 모른다. 우리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을 향한 그 첫마음은 꼭 간직하자고. 우리의 <토지>  모임은 끝났다. 그러나 그 정신을 가지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자."


삶의 자리, 우리에겐 각자의 삶의 자리가 있다. 비록 각자의 삶의 자리는 다를지라도 바라보는 곳이 한 곳이라면, 그래서 북극성을 향해 한발 두발 내딛는다면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2000년 새해가 되었을 때, 자주 들르던 홈페이지 게시판에 '즈문해에 부르고 싶은 노래'라는 글을 남겼었다. 이는 토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인 것이다.


즈문해에 부르고 싶은 노래


뒤뜰에 감나무 한 그루가 고즈넉이 자라고 있습니다. 앙상한 가지에 입술처럼 불그레한 감 한 개가 매달려 있습니다. 만지면 금방이라도 단물을 쏟아낼 것 같은 홍시를 그 집의 꼬마는 어떻게든 따먹으려 하지만 만만치 않습니다. 꼬마는 높은 가지의 끄트머리에 달린 홍시를 따기 위해 갖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하여 감을 딸 수 있는 요령이 점점 생기기도 하였지만, 반면에 그 마음에는 잦은 실패로 인한 주저와 포기하는 맘도 함께 생겼습니다. 담장 위에서 홍시를 향해 작은 손을 버리며 발돋움을 하는 아이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중얼거리며 바동거립니다.

난 그 꼬마가 정말 조금만 더 손을 내밀며 발돋움을 했으면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저 감은 떫을 감일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통일을 하면 '통일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하므로 통일을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곪은 상처를 몸에 지녀야 합니까? 오늘 당장 100의 비용이 아까워서 해마다 10의 비용을 치러야 합니까? 우리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처럼 우둔한 판단일랑 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비용' 운운하며 이대로가 더 좋다고 주절거리는 이들에게 솔깃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챙기기에만 급급해하는 수전노에 불과합니다.

불과 반세기 전에 우리는 해방을 맞았었습니다. 온 백성이 감격에 겨워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리를 메울 때에도 몇몇 사람은 일본의 패전을 슬퍼했습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민족의 해방보다도 자신의 기득권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죠. 지금 당장 잃을 기득권보다는 앞으로 내리 누릴 장래권이 더 중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우리들에게 감성적인 접근을 권하고 싶습니다. 너무 계산적으로만 통일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농업의 가치가 수치적인 가치 외에 보이지 않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듯이, 통일 역시 단순히 계산되는 수치상의 비교우위 너머의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헤어진 두 형제가 다시 만나는 것에 무슨 계산이 필요합니까! 지난번 전 국민을 울린 '이산가족 찾기'를 보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가족이 떨어져 있는 것만큼 더 큰 슬픔이 있습니까? 우리가 통일을 하는 것은 헤어진 식구를 다시 만나는 겁니다. 누가 뭐래도 북한의 동포는 우리의 동포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점점 당연하지 않은 쪽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통일은 꼭 이루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그 생각이 줄어듭니다. 아무리 경제외교, 스포츠 외교, 문화외교를 해야 뭐합니까. 우리의 생각이 통일을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꺼린다면 말입니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통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면 이상하게 여겼었죠. 왜 당연한 질문을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통계를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통일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년의 여론 조사에서 '꼭 통일을 해야 합니까?'에서 '꼭 해야 된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못했습니다. 통일의 당연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다가 급기야는 절반도 못 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올해는 더 낮아지고 내년에는 더 낮아질지도 모릅니다.

난 정치적인 것은 잘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통일비용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즈문해의 소망을 묻는다면 김구 선생의 '세 가지 소원'을 말할 것이며, 즈문해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말하라면 '우리의 소원을 통일'이란 노래를 다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형제는 꼭 만나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은 우리 세대에 꼭 이루어야 한다고 고함을 치고 싶습니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그런 막무가내가 어디 있냐고 탓할지라도 난 생떼를 쓰고 싶습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요. 지금 우리 앞에는 '기회의 신'(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은 앞머리엔 머리털이 덥수룩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다가올 때 머리카락을 움켜 줘야지 이미 지나친 후엔 붙잡을 수가 없다)이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뒷짐 지고 구경하기엔 우리의 의지는 너무 밋밋합니다.


풍뎅이는 쿨쿨 잘도 잔다. 언제 깨려나!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별을 보는데 별이 흐려진다. 눈을 깜박이니 별이 또렷해진다. 흐린 건 별이 아니라 내 눈이었다. 맑은 눈물도 시야를 가리는데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보낸 반세기 동안 우리의 마음에는 이념의 때가 덕지덕지 끼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념 말고도 자기의 것을 조금이라도 버리지 않으려는 이기심이라는 또 다른 때가 엉긴 것 같아.


삼국을 통일한 것은 김춘추만의 힘이 아니듯 남북한을 통일할 사람도 김대중만이 아니다. 그럼 누구인가? 심 목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는 통일의 가능성이 없던 시대를 지나 가능성의 시대가 되었다는 그 말. 깊은 숲 속에선 소쩍새가 울고, 그 소리는 더욱 숲 속으로 깊어진다. 새벽은 그만큼 다가오고, 그러면 풍뎅이도 다시 날갯짓을 하겠지.



20세기 말, 경찰대학에 근무할 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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