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뜨기 Aug 14. 2020

아이 눈엔 내가 없고, 내 눈엔 아이 있다.

장애

1. 아이 눈엔 내가 없고내 눈엔 아이 있다.


“용희야!”

엄마의 손에 잡혀 쭈뼛쭈뼛 들어서는 아이를 보자 반가이 불렀다. 용희는 날 힐끗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언뜻 보면 두리번거리다가 잠깐 내 눈과 마주친 것처럼 보이지만 용희는 분명히 날 쳐다봤다.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지만 난 바짝 달라붙은 끈끈이처럼 아이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의 눈 속엔 내가 없고, 내 눈 속엔 아이가 있다.


뭇사람이 붐비는 복지관 현관에서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커피자판기에 눈길을 꽂았다. 난장판처럼 북적대지만 용희에게는 커피자판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치닫는 아이와 동시에, 나도 잽싸게 아이에게도 다가가서 두 팔을 벌리고 아이 뒤에 섰다. 보이기에는 다른 사람을 아이에게 못 오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못 가게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용희는 자판기의 지폐투입구에 천 원짜리를 집어넣고는 반환 레버를 당긴다. 자판기는 지르릉, 소리를 내며 천 원을 토해낸다. 아이는 다시 천 원을 집어넣는다. 대여섯 살 먹은 아이라면 서너 번하고 싫증 낼 그 행동을 열한 살배기 용희는 말릴 때까지, 아니 말려도 막무가내로 자판기에 매달린다.


“용희야. 이제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껴안듯이 용희의 두 손목을 가볍게 쥐며, 그러나 언제든지 꽉 쥘 준비를 하며 자판기로부터 떼 놓으려 했다. 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내 손엔 힘이 들어갔다. 주변의 사람들을 조심하며, 발버둥질하며 소리 지르는 아이를 겨우 구석의 의자로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는 통제하기가 쉽다. 권투선수가 사각 링의 구석으로 상대를 몰아넣듯 난 손을 벌리며 버티고 앉았다. 


얼굴이 벌게진 채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용희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난 무관심한 듯, 그냥 물끄러미 아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가 제풀에 꺾이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괜히 달랜다며 어루만지거나 안아주다가는 긁히거나 물릴 수 있다. 


달포 전에 발버둥 치는 아이를 달래느라 안았다가 어깻죽지 물렸는데 아직도 흔적이 가시지 않았다.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가듯 수그러진 아이는 벙실벙실 웃으며 날 본다. 얼마나 해맑은지 모른다. 방금 냇가에서 나온 선머슴처럼 깨끔했다.


“용희야, 들어가서 예배드려야지.”

무릎을 구부리고 아이를 가볍게 안아줬다. 아이도 팔을 내 목에 두른다. 가볍게 토닥거리고 일어섰다. 손을 잡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연신 방긋거리며 고분고분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를 반기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예배실은 도떼기시장처럼 술렁거렸다. 마구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두르는 아이, 손뼉을 치며 제자리 뛰기를 하는 아이,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제 손등을 무는 아이, 바닥에 누워 뒹구는 아이 등등.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선생의 인도를 받은 아이들이 차츰차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 아이의 두 손을 포개 모으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우리 용희가 오늘도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왔어요. 예배 잘 드리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어요. 아멘!”


손은 내 손에 감싸 안겨 옴짝달싹 못하지만 고개는 연신 두리번거렸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일한 소리는 아멘뿐인데, 하지 않는다.

“용희야, 아멘 해야지. 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어요. 아멘!”


잠시 미적거리더니 꼬막이 조가비를 벌리듯 아이는 입을 열었다. 

“아메에!”


고개를 획 돌려 날 빤히 쳐다보더니 갸우뚱하며 히죽거린다. 눈시울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고 눈동자는 유리구슬처럼 번들거린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참 맑은 눈이다.



2. 만남그리고 사귐


그 해 9월, 처음으로 정신지체장애인 부서인 사랑부에 갔다. 친구가 사랑부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사랑부가 어떤지는 대충 알기에 적잖은 망설임이 있었다. 가끔 TV나 책에서 ‘자폐증’에 대해 듣긴 했지만, 전혀 상대해보지 않은 자폐아를 돌본다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처음엔 아이를 직접 맡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이것저것 치다꺼리를 할 요량으로 갔었다. 그러나 사랑부에 오면 교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선생이 한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교사가 필요했고, 더구나 대부분이 여자 선생인 관계로 남자 선생은 더 필요했다. 비록 아동반이지만 덩치가 큰 아이들은 여자 선생이 맡기에는 좀 무리인 감이 있다. 달포 가량 사랑부 예배에 참관을 한 후에 마음이 정해지면 교사 지원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사랑부에 참석한 지 세 번째 주에 한 아이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한동안 뜸하다가 오랜만에 나온 아이인데, 담당선생이 없으니 우선 그날만 돌보라는 것이다. 열 살가량의 사내아이인데 곱살하고 귀여웠다. 안녕 인사하며 옆에 앉아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학생처럼 혼자서 웅얼거렸다. 옆에 있는 선생에게 아이의 이름을 물으니 ‘유용희’라고 했다. 난 슬며시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용희야 하고 불렀다.


용희는 고개를 돌리고 갸우뚱거리며 얼굴을 맞대는가 싶더니 이내 딴청을 부렸다. 아이는 나와 얼굴을 맞댔으나 눈길은 곁눈질을 하였다. 내 눈동자엔 아이의 모양이 비쳤으나 아이의 눈동자엔 내 모양이 자리하지 못했다.

아이는 먼산바라기로 있다가 때론 속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보기도 하고 이따금 간지럼을 타듯 까르륵 웃기도 하고 가끔은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난 곁에서 아이를 고즈넉이 지켜봤다. 겉보기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다. 뇌성마비나 소아마비의 경우에는 장애가 빤히 드러나지만, 자폐아인 용희는 너무나 귀엽고 잘생긴 내 조카 또래의 장난꾸러기, 고집쟁이, 조무래기인 한 아이일 뿐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지겨운지 몸을 배배 꼬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난 예배 중이므로 못 나가게 손을 붙잡았다. 이어서 터진 투정,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꽥꽥 질렀다. 난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감싸 안으니 더 발버둥을 치며 엉덩잇짓을 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부장 선생님이 와서 용희를 놀이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용희의 손등을 보았다. 굳은살이 박인 손등은 곰보빵처럼 부스럼이 덕지덕지 있는데,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이로 물어뜯어서 생긴 거라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용희를 부모에게 맡겼다. 아이를 보낸 후 시장 어귀처럼 북새통을 이루는 복지관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는데, 자꾸만 멍게처럼 거친 아이의 손등이 아른거렸다.


왜 아이는 자기를 자해(自害)를 했을까?

문득 내 손등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보았다. 살가죽이 집혔다. 그 아이의 손등은 발바닥보다 더 굳어져 있어 집히지가 않았다. 


나는 모른다. 아이가 왜 우는지, 왜 웃는지. 

맘이 무거워지며 자신이 없어졌다. 이런 아이를 내가 어떻게 돌본단 말인가? 난 특수교육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자폐아를 돌 본 경험도 없다. 맘만 앞세워 덥석 아이를 맡았다가 오히려 아이의 상태를 더 나쁘게 할까 봐 염려됐다. 


달포 후, 부장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기술적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옆의 다른 선생들이 도울 것이고, 아이와 지내다 보면 아이를 돌보는 방법도 곧 터득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품는 것이다 라고. 난 교사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용희를 맡게 되었다.


생소함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중학생이 되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까만 교복을 입은 형들이 무서워 보였고 어른처럼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중학생이면 갓 코흘리개를 벗어난 아이이지만 초등학생의 눈에는 무척이나 커 보였다. 막상 중학생이 되어보니 그리 적응을 못할 것도 없는데 나는 왜 두려워했던가? 아마도 겪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낯섦이 주는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다. 군대에 대한 것도 그랬다. 막상 군에 가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군에 가기 전에는 과연 군대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었다.


나는 두려움을 가지고 용희를 돌보기 시작했다. 다 큰 어른이 어린 꼬마를 두려워한다니, 우습게 들릴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보통 아이가 아닌, 상대해보지 않았던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부담이었다. 그 부담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아이가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을 하면,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며, 나에게 폭력(?)을 쓰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등등의 생각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비록 겉으로 내가 아이의 선생이고 봉사하는 사람이고 돌보는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싸움터의 정탐꾼처럼 아이를 엿살피었다. 


아이가, 아니 아이의 태도가 내게는 너무도 생경스러웠다. 아이에게 어쭙잖게 아양 떨고 재롱부려도, 호되게 윽박지르고 으름장을 놓아도 아이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시큰둥했다. 안타깝다. 이런 내 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체머리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이따금은 문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는 어느 아이에게서나 볼 수 있는 천진이 배어있었다.


용희가 짜증 부릴 때면 안쓰럽다. 무조건 받아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아이의 눈짓, 소리, 몸짓을 빨리 익혀야 한다.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아이, 때론 화장실에 가려는 것이고, 때론 그냥 갑갑하여 그러는 것이다. 자꾸만 물을 가지고 노는 것은 예배를 드리기 싫어서이다. 용희는 소변을 누면 꼭 손을 씻는데, 비누를 묻히고 물로 씻고 다시 비누를 묻히고 물로 씻는 것을 수없이 반복한다. 화장지를 왕창 풀어 손을 닦기에 이젠 그만 하려나 했는데 다시 물에 손을 대곤 했다. 


언젠가는 용희가 소변을 본 후 뒤돌아서서 엉덩이를 까고 엉거주춤 소변기에 앉으려고 하기에 깜짝 놀라서 말리려고 달려드니 ‘뿡’ 하고 방귀를 뀌었다. 그러더니 날 보고 히죽 웃는다. 나도 그저 웃을 수박에.

용희의 웃는 얼굴은 천사의 모습이다. 그렇게 해맑다. 아이가 깔깔거리며 웃으면 나도 껄껄거리며 웃는다. 용희는 기분이 좋으면 내게 안기며 볼에 뽀뽀도 하며 좋아한다. 항상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 좋으련만 감정이 어떻게 변할 줄 모르니 주의를 놓을 수 없다. 어느 땐 지나가는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를 확 밀치기도 했다.


난 아이와 전쟁(?)을 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여기며 내 나름대로 아이를 대했다. 혼낼 때는 무섭게, 아이의 요구를 무턱대고 받아주면 안 된다. 아이의 고집 못지않게 내 고집도 세다. 용희가 주변의 시선이 자신과 내게 쏠리도록 끓어오르는 솥처럼 소란을 부리면, 난 그 시선을 흩뜨리기 찬물을 붓듯이 아이의 생떼를 가라앉힌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딸린 방에 들어가서 따로 아이를 다그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는데, 용희는 거의 매주 그곳에 들어갔다 나온다. 


아이가 예배시간을 버거워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용희는 종이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다른 아이나 예배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용희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것은 불만이 있기 때문이고, 밖으로 자꾸 나가려는 것은 갑갑하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단순하고 솔직했다. 눈치도 없다. 요령도 없다. 그저 제 감정에 무척 충실할 뿐이다. 그런 아이를 난 길들이려 했다. 그리고 드러난 효과를 보며 조금은 만족도 했다. 난 아이의 감정의 흐름을 찬찬히 살폈다. 아이는 겨우 엄마, 아빠, 아멘 정도의 말만 할 수 있는 아이지만 자신의 의사는 확실히 드러냈다. 비록 그것이 상대에게는 뚜렷하게 전달되지 않거나, 당황스럽게 해서 대부분 저지를 당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보니 전혀 눈치도, 요령도 없어 보이는 아이가 사실은 조금 눈치도 있고 요령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다른 아이처럼 똘똘한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의 눈치가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 내 뜻이 스며들 틈이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와 나 사이의 벽에는 틈이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처럼 널찍한 문이 있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꽉 막힌 담은 아니었다. 작은 틈. 처음엔 그 틈이 아예 없으리라고 여겼고, 그래서 망치로 벽을 부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그 비좁은 틈은 얼마나 널따란 문인지 모른다. 그 틈으로 서로 속삭이기도 하고 들여다보기도 하고 손을 비집어 넣을 수도 있다.



3. 가정방문


용희네 집에 가정방문을 했다. 용희는 제 집에 찾아온 나를, 반기는 듯 무관심한 듯 쳐다봤다. 용희 어머니랑 식탁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동생이랑 놀던 용희가 내 손을 이끌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못 이기는 척 용희를 따라갔다.


아이는 집 가까이에 있는 편의점을 가려는 것이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내가 편의점 앞에 이르러서야 아이에게 끌려가는 것을 그만두고 아이를 이끌었다. 그러자 아이는 편의점 앞 인도에서 주저앉아 생떼를 썼다. 말로 달래고 힘으로 해도 소용이 없어 난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난 경호원처럼 용희를 에두르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들어서자마자 과자를 집으려고 했다. 난 그런 아이의 충동을 막으려고 붙잡았으나 아이는 이미 과자를 집었다. 내가 아이를 당기자 아이는 진열대를 붙잡았다. 껌, 초콜릿 등이 진열된 진열장이 넘어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뿔싸! 

벌어진 사태를 황망히 바라보며 어찌할지 몰라하는 사이 아이는 다른 코너로 가서 몇 가지 제품을 품에 안았다. 카레, 참치, 과자 등등이다. 난 아이를 붙잡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지켜봤다. 아이는 익숙한 듯 상품을 가지고 계산대로 갔다. 편의점의 직원은 용희를 알아봤다. 잠시 후, 용희 엄마가 왔다.


용희 엄마는 아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아이 때문에 자꾸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남들에게 짐만 되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기는 제 자식이니까 당하는데 왜 주변의 사람까지 피해를 줘야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친척들도 만나기를 꺼려하고 나에게도 항상 미안해하는 맘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용희 어머니를 위로해야 하나! 힘들 땐 주변에 말이라도 하세요 하니 용희 엄마가 말하길, 말을 하면 풀리는 줄 알았는데 말을 하면 상대에게 고통을 넘기는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다는 거다. 화병이 생기겠구나. 


주중에 용희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 어느 땐 잘 지내고 어느 땐 유난히 짜증을 많이 부리기도 한단다. 아이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심하게 짜증을 부린 날이다. 아이가 오지 않으면 집으로 전화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떠오르기에 ‘꼭 나오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다. 그냥 이렇게 말한다.

“정 힘들면 나오지 마세요. 용희가 보고 싶네요. 다음 주엔 봤으면 좋겠어요.” 


자폐는 나아질 수 있을까? 난 잘 모른다. 전문가의 얘기론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아지더라도 만족할 수준이 못 된다고 한다. 결굴 평생의 굴레가 될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을 갖는다. 


어머니,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이런 말씀을 한다는 게 우습습니다. 부모가 아니고서야 그 고충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니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용희에게 어머니가 가장 필요합니다. 

어머니, 때론 포기하고 싶고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럴만한 용기와 힘이 있기에 신은 아이를 당신에게 맡기셨습니다. 저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하던 신이 당신을 택했던 것은 당신에게 그만한 사랑이 있음을 보셨기에 그러셨을 겁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머니는 할 수 있습니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단지 더딜 뿐입니다. 

더디므로 더 많은 참음이 필요합니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시나브로.



4. 아이에게


아이야, 네 속에 어떤 생각이 있지. 미처 그 생각을 헤아리지 못한 날 용서해라. 수많은 아이 중에 넌 나에게 중요한 아이가 되었다. 신이 특별히 맡긴 아이인데 난 제대로 감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너에게 많은 빚을 지었는데도 그 몫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고 있구나.


어쩜 내가 너의 상태일 수 있었는데, 네가 나를 대신하여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네 눈동자엔 내가 없구나. 바라기는, 언젠가 네 눈동자에 내가 들어 찰, 아니 나뿐만 아니라 세상이 들어 찰, 아이의 작고 까만 창에 크고 푸른 지구가 들여 차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스스로 창을 닫고 살지 말고, 스스로 창을 열고 나오는 날이 있기를 꿈꾼다.


네가 보는, 네게 보이는 것들이 빠르게 스치는 철로 가까운 곳의 장면이 아니라 멀리 있는 산의 풍경처럼 오래 남아있길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