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글쓰기의 이해_ “내가 말하지 않아왔던 것들”
7월 4일, 페미니즘 글쓰기 강좌 [부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뒤 글쓰기] 첫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말하기보다는 듣는 존재로, 주장하기 전에 자신을 검열하는 존재로 커왔던 여성들을 위해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열 번의 강의와 열 번의 글쓰기를 통해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다 편해졌으면 합니다.
첫 강의를 열어주신 분은 홍승은 작가님입니다.
춘천의 빨간 입간판으로 알려져 있는, 인문학 카페 36.5를 운영하셨기도 하고요. 꾸준히 ‘나는 왜 쓰는가’를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승은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면서 그렇다면 나는 왜 쓸까, 무엇을 쓸까, 나의 글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같은 질문들을 품으셨으면 합니다.
지난 4일, 첫 강의가 시작되었는데요. 각자의 글쓰기 또한 다시 시작될 것 같습니다.
승은 작가님을 모시고 “입체적인 존재를 위한 글쓰기” 강연을 청해 들었습니다.
본 포스트는 강연 내용을 기획팀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1]
안녕하세요. 홍승은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 한 편집자님을 만났어요. ‘88만 원 세대’ 담론이 담지 못하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싶다고 해서 필진들을 찾아봤다고 하셨어요. 2-30대의 남성 필진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여성 필진을 찾기 어려웠다고 해요. 자기의 삶, 자기의 언어를 찾고 싶은 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그렇게 여성 필진을 찾기 어려운지 궁금했어요.
페미니즘 글쓰기에 대해 답을 딱 내리는 자리라기보다는 이 자리를 통해 페미니즘과 글쓰기의 조합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라는 걸 찾아가는 시간이길 바라요.
제가 작년 여름에 한 서점에서 북 토크를 했는데 중년의 여성분이 앞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분이 했던 말이 기억나요. "제가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말들이 살면서 너무 많이 쌓여 있었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하여 자신의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말을 찾았을 때 서러움이 몰려왔다"고 하면서 우시는데 저도 눈물이 났어요. 글쓰기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분노 억울함 서러움 같은 것들. 담아놨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글쓰기를 했으면 해요.
[2]
저는 세상이 보는 나와 주관적인 나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했는데 대학원에 입학면접을 볼 때 처음보는 교수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고등학교 왜 자퇴했냐, 사고치다 짤렸구나? 말씀하시더라구요. 저는 춘천에 살았는데 수도권 사람에게 춘천의 이미지는 감자나 닭갈비죠(웃음). 이런 식으로 저의 무수한 서사들은 다 없어진 채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보 몇 가지로 간단하게 통용되는 게 저에게는 부대끼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서브텍스트 읽기라는 책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결정적인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침묵에서 나온다. 내가 여태까지 하지 않아왔던 말은 무엇이고 그건 내가 선택해서 하지 않은 말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어떤 사람들은 입이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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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쓸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말씀이 아닌 이야기로 쓰자
태초에 말씀이 있고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근엄한 이야기가 있다고 배워왔잖아요?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쓰자고 말하고 싶어요.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은 위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인권은 소중하다'라는 명제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동성애 인권이라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죠? 너무 추상적인 언어는 배제의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 위치성과 맥락성을 살릴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해요. 글 속의 메시지가 좀 더 날카롭게,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어요. 해러웨이가 페미니즘의 지식 이야기를 하면서 '페미니즘의 지식은 상황적이다'라는 말을 했었죠. 그런 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누구나 동의할만한 말 대신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내 몸을 사랑하지 못했던 이야기.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써보려는 이야기가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의 생활은 비참했다'라고 적는 것보다 '밥을 따뜻하게 두려고 아랫목 이불 아래에 두면 쥐들이 와서 플라스틱 뚜껑과 같이 갉아 먹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구체적이죠. 이렇게 읽는 사람이 이야기에 좀 더 이입하고 자기의 세계를 벗어나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그런 장치들이 필요해요. 저는 주로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칼럼을 쓰기도 하는데, 이때 중요한 건 읽는 사람이 내 세계로 들어와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페미니즘 글쓰기는 해석 투쟁이다." 누가 했는지 모르는 말씀이지만 정상적이라고 하는 언어들에 질문을 던지고, 기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해석'인데요.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단순히 경험을 쓰는 게 아니라 경험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다 보면 마무리가 힘들어서 내 경험을 잘 적어놓고 갑자기 교훈적 주제로 끝내잖아요. 페미니즘 글쓰기에서 지향해야 하는 건 교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질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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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글에 대한 고정된 기준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언어에도 젠더가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와 그녀 같은 인칭대명사를 쓸 때 좀 다르게 부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전 많이 하고 있고요. 질병 혐오의 언어들, 은유 같은 것도(고아처럼 쓸쓸했다 등) 지금 당장 고통을 받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은유는 좀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멈칫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해요. 누군가의 고통을 교훈 삼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글을 쓰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쓸 때, 내가 당사자는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말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강사님들이 수업 내용과 관련된 과제를 내주실 예정입니다.
1강 홍승은 작가님께서 내주신 과제는 "나는 왜 쓰고 싶을까?"와 "내가 말하지 않아왔던 것들"입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께서도 나는 왜 쓰고 싶은지, 지금까지 내가 말하지 않아왔던 것들이 무엇인지 써보실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혜영 프로그래머와 <2강 영화 비평_ 영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비평하는 방법> 강좌를 함께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