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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HU Jul 20. 2018

2강 조혜영_영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비평하는 방법

2강 <영화 비평>



두 번째 강의는 서울국제영화제(http://www.siwff.or.kr/kor/default.asp) 프로그래머 조혜영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여성주의적 영화비평의 역사를 짚어주시면서 기존의 영화비평과 여성주의적 영화비평은 어떻게 다른지 말씀해주셨는데요.

여성주의적으로 영화를 비평하는 일은 커녕 여성주의적으로 읽어낼 영화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금, 페미니스트 관객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각자 모색해볼 수 있도록 이론을 살피면서 동시에 현실의 빈틈을 조명한 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본 포스트는 강연 내용을 기획팀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페미니즘적으로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가 사실 얼마나 단편적인지 알 수 있고 입체적인지 알 수 있어요. 서울국제 여성영화제 같은 경우에도 늘 그런 질문을 받아요. "여성영화제는 너무 한쪽만 가지고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떤 영화제도 영화의 전체를 트는 곳은 없거든요. 여성 영화제만 ‘협소하다’, ‘한쪽만 얘기한다’는 비판을 받아요. 저는 여성영화제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1]

안녕하세요. 조혜영입니다. 여성주의 관점으로 영화비평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있으실 것 같아요. 간단하게 말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 퀴어, 젠더, 이런 것들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고 글을 쓰는 것이죠.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여성주의 영화비평의 장이나 필자가 무리를 이루고 있지도 않고요. 또한 여성주의 영화 비평을 할 텍스트들도 잘 없어요. 기존의 영화비평의 언어들이 남성 중심,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채로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말해지지 않는 지각이나 인식들이 잔여물처럼 남아있게 됩니다. 언어를 다시 발명해 내야 하는 작업들이 필요하죠.


 페미니즘 영화 비평은 배제된, 비 가시화된 시청각 이미지에 대한 언어를 탐색하고 발견해가는 과정이에요. 여성주의적 이미지, 여성 영화 이미지라는 것이 기존의 언어로는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그 언어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언어들이 우리가 보고 있는, 그러니까 온 스크린이라고 하는 것이 스크린 오프, 스페이스 오프에 있다는 것을 주목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기본적인 개념들, 시간 공간에 대한 개념들부터 마련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 비평은 혼란스럽지만 재밌기도 한 작업입니다.




[2]

페미니즘 영화 비평의 역사


페미니즘 영화비평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1960-70년대였어요. 이때는 2세대 여성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을 때이고 그 영향으로 영화 이론과 비평에 혁명이 일어나며 영미권에서 영화학, 영화학과가 만들어져요. 그것과 여성운동의 영향이 맞물리면서 페미니스트 영화 비평이 탄생합니다.


몰리 하스켈의 <숭배에서 강간까지: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는 스크린 위에서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상되는 가를 다루고 있어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여성 혐오의 악순환의 고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숭배이든 강간이든 여성을 주체적으로 보지 않으면서 보호 또는 착취의 대상으로 보면서 숭배와 강간, 창녀와 성모 마리아 이분법에서 여성을 가둬두는 것에 몰리 하스켈이 비판을 하게 되고 책을 출판하게 돼요.


이와 비슷하게 클레어 존스톤, 로라 멀비라는 영화학자가 등장해요. 지금도 에든버러 영화제에, 최초의 여성영화제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해요. 4-50년대까지 활동했던 여성 감독들을 발굴해내고 여성 감독들의 작품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재현되고 남성 영화의 방향과 어떻게 다른지 연구했어요.

로라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서사영화>라는 엄청난 글을 써요. 페미니즘 영화 비평을 학술적으로 쓰고자 할 때 매번 인용되는 글인데, 누군가 번역을 해서 인터넷에 올려놨어요(웃음). 클레어 존스톤도 페미니즘 영화비평이라는 책을 냈고 씨네 페미니스트들이 번역을 했어요. 남성은 보는 주체, 여성은 보이는 객체로 만드는 영화의 시선, ‘응시’가 나와 있어요. 용어들만 빼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클레어 존스톤과 로라 멀비는 몰리 하스켈의 작업에 존경을 표했지만 비판을 하기도 했어요. 몰리 하스켈이 말하는 건 서사 안에서 여성의 캐릭터가 어떻게 재현되느냐 인데 이들이 말하는 건, 영화는 장치잖아요. 앵글이나  프레임 같은 기술. 이런 장치들이 기본적으로 구조적으로 어떤 만드는 과정 속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는 거예요. 클레어 존스톤과 로라 멀비는 형식적인 측면에 훨씬 포커스를 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로라 멀비 이후에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등장을 해요. 그녀의 작업을 인용하고 비판을 하기도 하죠. 로라 멀비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고 글을 보충하는 작업들을 하게 됩니다. 로라 멀비에 대한 비판은, 너무 성별 이분법적이라는 거예요.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놓는다”라고 하며 “남성이 그것의 주체로 군림한다”라고

했을 때,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죠. “어? 여성 관객은 객체가 되는 여성에게 이입을 하나 남성에게 이입을 하나” 이럴 때 로라 멀비는 여성 관객도 카메라의 시점을 통해 볼 수밖에 없어서 남성화되어 남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고 했어요. 남성 주인공의 시선을 내면화한다는 것. 관객이 전부다 이성애적이라고 상정한 것도 문제가 된 거예요. 레즈비언 관객들도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놓잖아요. 게이 남성들은? 이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던 거죠. 또 흑인 남성, 스크린에 존재하지도 않는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에 동일시하느냐. 더 문제는 흑인 여성들 흑인 여성은 아예 스크린에 재현되지도 않는데? 이런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는, 이런 것들이 국경을 넘어서, 그 수용이라는 것이 모두 다 동일하냐 하는 일들이 그 이후에 벌어집니다. 또 로라 멀비는 상업영화 다 해체해야 한다 하면서 아방가르드 영화를 강조했어요. 이 때문에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요. 그러면서 퀴어 이론, 문화연구 들과 교차되면서 페미니즘 영화 비평은 더 복잡해지고 분화되었어요.



[4]

한국의 페미니즘 영화 비평


수많은 한국의 영화 비평들과 블로깅들은 지금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 같아요? “서사 내에서의 여성 캐릭터가 맞춰지고 있는가”라는 몰리 하스켈의 이론에 포커스를 두고 있어요. 페미니즘 리부트 경향들이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운동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 달라지고 있다는 거죠. 몰리 하스켈이 이야기하던 것이 해결된 게 거의 없다는 게 문제예요. 여성 주인공인 영화가 한국에서 20%를 넘어가지 못하고 여성 감독의 영화는 10%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영화학교에서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여성이 50%를 넘음에도 불구하고. 제작 환경에서의 불균형은 스크린하고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여성 감독이라 해서 반드시 여성주의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감독일 때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남성보다 약 70% 정도 높다는 거예요. 내가 훨씬 더 공감해본, 경험해본 이야기를 쓰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 대중들의 인식은 저만큼이나 나아갔는데 영화계는 따라오고 있지 못하다는 거죠.

또 하나의 문제는 대중영화에서 합리적, 거대 서사라는 게 무너지면서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캐릭터가 서사 안에서 단독적으로 존재한다라기 보다는 마블 영화처럼 캐릭터를 레고 블록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면서 나타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둘러싼 문화 비평도 존재한다는 거죠.  





[5]

페미니즘 영화 비평의 방향 두 가지

기존의 영화들이 얼마나 가부장적이고 착취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지 비판하는 방식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새롭게 등장하는 기존에 없던 여성영화라는 게 어떻게 여성주의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것들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것. 이 두 가지가 균형을 맞춰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성 작업물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서사 영화라는 것도 나왔지만... 서사가 뭘까요? 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거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요? 이야기 속의 이벤트들을 어떻게 풀어갈까요? 맞아요, 인과관계 위에서 만들어지는 게 서사예요. 필연성, 개연성이 필요해요. 주류 영화들은 대부분 서사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써요. 물론 주류 영화와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영화는 서로 영향을 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라고 하는 것은 개연성이 있다, 필연적이다 라고 할 만한 게 있어요. 주인공뿐만 아니라 안티 히어로도 마찬가지예요. 여성을 착취하는 악역에게 서사를 많이 할애하죠. 이런 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럴듯함', '인과성'이라는 게 누가 그걸 인과적이라고 반복적으로 평가해 왔느냐는 거예요. 그 사건과 이 사건이 이렇게 연결됐을 때 자연스럽게 느끼는 건 진짜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누군가가 그렇다고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인과적이라고 느끼는 걸까요.


영화학교 학생들이 처한 어려움 중 하나는, 영화를 만들 때 여성 주인공 영화를 찍겠다 하고 가져가면 선생님들이 ‘안 팔린다’고 하는 거예요.
또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왜냐면 그 남자 교수는 그런 입장에 서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거죠.



영화 <미씽>에서 배우 엄지원 씨는 밤에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 찾으러 다니죠.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채로. 이에 대해서 남자 감독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거예요. 애를 잃어버린 엄마가 어떻게 저렇게 하고 다니냐 라고(웃음). 그런 것들을 어떻게 볼 것이냐.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인과적으로 보이지 않느냐 라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영화 속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왜 누구는 보이고 누구는 보이지 않느냐(스페이스 오프), 왜 어떤 것은 그럴듯한 말이고 어떤 것은 소음 처리되느냐, 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서사, 픽션의 인과성을 누가 만들어냈느냐 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를 생각해보면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영화도 있잖아요 심지어. 시간을 여행하는 건 늘 남자예요. 그 시간여행을 하고 막 지쳐서 나의 옛 모습, 순수했던 감정들을 되찾으려고 마음과 안정을 찾기 위해 내가 찾아갈 공간에 여자가 있는 거예요. 그 시간, 사건을 변화시키고 진행시키는 건 남성이 하고 여성은 문젯거리, 돌아갈 곳이 되는 거죠. 여성이라고 하는 문제는 언제나 미스테리고 그걸 해결하는 건 남자(스핑크스-여자). 이런 서사 진행이라고 하는 것은 캐릭터의 단면뿐 아니라 역사를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돼요.



[6]

그럼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해?라고 했을 때 당시의 페미니즘 영화 학자들은 작업들을 했는데, 하나는 영화사에서 잊혔던 여성 감독들을 발견해내는 작업. 여성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작업. 또 하나는 여성이 주인공인 대중 영화들을 다르게 읽어내는 방식. 로라 멀비는 앞서 말했듯 상업영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하고 불쾌의 미학을 주장하며 아방가르드를 주장해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주의 실천은 이미 가부장제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힘들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부정의 미학, 균열들을 내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 창조적으로 여성의 욕망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7]

테레사 드 로레티스는 서사의 목적 자체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계속 안고 간다고 말해요. 그래서 서사가 이런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을 문제제기를 해요. 위민스 시네마. 여성이 만든 영화, 여성에게 말을 거는 영화, 혹은 여성에 관한 영 전반. 위민스 시네마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경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해요. 이 여성영화라는 것이 무엇을 만들어내냐 했을 때 그것 자체가 여성주의 공동체라는 것.


테레사 드 로레티스는 여성들 사이의 차이들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해요. ‘말을 거는 영화’ 이것은 굉장히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집단적일 수도 있어요. 개인이 나와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경험들을 재현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집단적인 기의들이 있다는 거죠. 여성작가성이라고 했을 때 천재적인 개인이 모든 걸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그 뒤의 집단들이 여성들 사이의 차이들을 호명하는 거라는 거죠. 완전히 주류의 서사에 대항하기보다는, 왜냐면 여성들에게 도래할 유토피아적인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믿는 거예요. 판타지는 공상이나 소원성취와는 다르다는 거죠. 존재할 수 있지만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그 판타지를 위해서는 서사가 필요하다. 서사와 함께하거나 대항하며 작업하는 영화. 여성은 보는 주체가 되기도 하지만 객체가 되기도 하는, 한쪽에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유동적인 동일시를 하는 여성의 양가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테레사의 주장이에요. 이것은 장르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여성영웅서사 같은 경우에, 우리가 보통 남성중심적인 서사를 많이 봐왔는데,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면 성별 반전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럴 때 모든 구도가 바뀌게 돼요.


남성의 경우 경찰영웅이다 하면, 남성 경찰에게 관객들은 당연하게 동일시하고 안정감을 느껴요. 그런데 성별이 반전이 되면, 여성이 경찰이 되고 사건을 해결하고 구원자가 된다고 하면 1차적으로 뭔가 어색(웃음). 사람들은 사실성을 따지기 시작해요, 실제로는 여자 경찰이 통계적으로 적고 어쩌고..... 2차적으로는 서사를 상상할 때 복잡해지고 입체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여성은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그동안 피해자였기 때문에 이제 구원해야 하는 피해자를 통해 피해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착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ocn에서 나오는 경찰 드라마예요. 여자 경찰들이 납치된 경험이 있어서 경찰이 됐다는 둥... 그렇게 했을 때 동료 경찰남성이 그 여성 경찰보다 영웅성을 가져갈 수 있거든요. 현실에서 일어났던 강간사건 경우에, 이건 남성 감독들이 많이 만들잖아요. 어떻게 기존에 다루던 구원자와 피해자의 거리를 두는 방식이 아니라 동일시됐다 떨어지는 양가성을 만들어가야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테레사는 인과성이 해체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인과성을 가져오는 방식. 여기에는 섹슈얼한 문제도 들어갈 수밖에 없겠죠. 테레사는 페티시즘 같은 것도 남성만의 것으로 보지 않아요. 여성 역시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고민하는 거예요.




페미니스트 비평을 할 때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만이 이런 것들을 삭제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글쓰기를 할 때에도 너무 강박을 갖지 않고 치고 빠지며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는 여러분들이 여성주의 글쓰기라는 것을 할 때 기존의 여성 작가, 철학가 이론가들을 잘 인용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가끔 여성주의적 의식이 있는 분들 중에 나는 권위에 도전할 거야 하며 이전 작업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발견되기도 하는데요. 무조건 인용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일차적으로 이미 그 이야기한 사람이 있는가를 찾아보고 그 작업을 의미화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작업을 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조혜영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는


아녜스 바르다의 <세 개의 단추>라는 영화를 보고 A4 반매~1매 분량의 비평 작성하기입니다. 브랜드 미우미우 광고로도 쓰였던 영상입니다.

(영어자막밖에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v=7mkuSTzf_Pw




페미니즘 영화 비평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로라 멀비의 <페미니즘 영화이론>과 앨리슨 버틀러의 <여성영화>를 읽어보세요!






다음 강의는 3강 박민정 작가의 <소재 찾기: 써야겠다는 의지 찾기> 입니다. 다음 주에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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