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소재 찾기>
세 번째 강의에는 소설가 박민정 작가님이 오셨습니다. 작가님에게 찾아온 '페미니스트 모먼트'와 문청의 모먼트가 어떻게 만나서 파열했고 도약을 이뤄냈는지 말씀해주셨어요.
박민정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과제를 수행하면서, 수강생들은 각자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해석하고 다시 위치시키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 본 포스트는 강연 내용을 기획팀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1] 문예창작과_민정
저는 04년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어요. 요즘엔 십대 페미니스트들도 많고 뿌듯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저로선 스무 살 이전에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저희 학과는 주로 남자 선배들이 과의 중심을 잡고 있는 분위기였고 소설 비평, 합평, 독해 수업이라든지,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여성혐오적인 수업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모먼트가 오기 전이었으니까요. 당시 습작생들이 써오던 작품이 여자의 몸을 관음적으로 관찰한다거나 자신의 좌절을 여성을 폭행하면서 표출하거나 이런 작품을 봐도 '좀 쎄하다 그런데 잘 쓰긴 잘 썼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작품을 쓸 때 자신이 읽어 온 작품들을 모방하며 쓰잖아요. 제가 읽어왔던 작품들이 여성혐오적인 작품들이 좀 많았기 때문에 남성적 화자를 내세워서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썼었는데 고2~ 대학교 때까지 썼던 글들은 남성의 시선을 닮으려 했던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서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던 언니가 있어요. 그 언니가 여성주의 교지를 저에게 보내주기 시작했어요.
<페미니즘의 도전>, <성의 정치> 같은 책들을 저한테 전해주는 거예요. 그때 저는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책들을 보게 된 거죠. 그때 <페미니스트 모먼트> 책의 카피처럼 되돌아 갈 길은 없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 찾아온 ‘현타’라는 것이, 저는 문학밖에 모르는 바보였는데(웃음), 문학 밖에 모르는 바보로 살다가 그런 책들을 접하게 되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딸로서 여학생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고 끊임없이 자기 의심을 해야 했던, 사촌들이나 친구들이나 남자 선생님들이 외모 평가를 했던 이런 기억들이 밀려오면서 내가 아무에게나 노출이 되어 있었구나 라는 게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왔던 거죠.
그러면서 합평 시간에 내 작품을, 친구들의 작품을 두고 “너 왜 여자처럼 썼냐”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든가, 수업 시간에 현대시 방법론 시간에 생태시, 해체시 이런 식으로 분류하면서 여성시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있었는데 그냥 생물학적 여성이 쓴 시가 여성시로 분류되는 거였어요.
그때 학교도 다니기 싫고 소설도 쓰기 싫은 거예요. 글쓰기라는 것이, 저는 요즘에 현실을 살해하는 것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남성의 시각으로 써야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느낀 이후에는 제가 좋아하던 작품들이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2] 소설을 쓰는 의지와 여성주의적 자각이 만났을 때
문청으로서의 모먼트와 페미니스트 모먼트가 일치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스물다섯 살에 소설가로 데뷔하고 5년 후에 첫 책을 냈는데 그 기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남자 선배들에게 '왜 이렇게 여자같이 쓰냐' 같은 말을 많이 들었고 당시엔 스물다섯 살짜리 여자 작가가 별로 없었어요. 아는 여성 작가도 별로 없고 제 또래도 없고 가르치는 제스처에 많이 시달렸죠. 서른 살이 넘고 책을 몇 권 내니까 저를 가르치려들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이 확 줄어들더라고요. 남자들이 만만하게 봤던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첫 책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를 쓰고 나서 비평이나 리뷰들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좀 실망했어요. 아무도 이걸 페미니즘적으로 읽어주지 않는 거예요. 세대갈등 정도로만 읽는 거예요. 그런데 페미니즘 리부트 후에 페미니즘적인 비평이 나왔어요. 너무 신기한 거예요. 같은 텍스트인데.
내 첫 책에는 내가 의식한 건 아니지만 성폭력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박민정 소설은 기승전 성폭력이다 라는 글을 남겨주신 걸 봤어요. 근데 저는 그걸 의도한 게 아니거든요. 대학생 때로부터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청으로서의 모먼트와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계속 충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에 계속해서 중층적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한 사람을 구성하는 굉장히 중층적인 입장, 처지, 현실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저에게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의지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의지라는 것은 문학작품을 읽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이름을 지워도 그 작가의 스타일임을 알아보는 대의적인 목표가 한 축을 이루고 있고, 작가로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가 또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부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저는 원래 1인칭의 글쓰기를 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점점 무엇을 쓸지 고민해가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3] 질의응답
오늘은 페미니스트 모먼트와 문청의 모먼트가 어떻게 만나서 파열했고 도약을 이뤄냈는지 얘기했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자유롭게 질문해주세요.
Q.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고, 뭔가를 말해야겠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것이 소설이라는 장르로 발현이 됐던 이유가 궁금해요.
A. 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시와 소설을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왔었어요. 저는 원래 시를 좋아했어요. 짧으니까(웃음). 고등학교 때 공모전, 백일장에 나갈 때 짧은 거보다 긴 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 와서도 소설 전공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죠. 왜 소설이어야 하는가. 나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이고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중층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거예요. 그게 용이한 장르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사회학적 함의, 사회학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 저는 우리가 말하는 선전문구 같은 거 있잖아요? 얼마든지 사회학이나 철학책을 읽고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중층의 정치성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내고 사회학, 철학적인 무언가를 쓰고자 했을 때 소설이라는 장르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아내들의 학교를 보면 마지막 문장에 대해 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요? (“잊지 마. 이것이 네가 원하는 유토피아였다는 걸”)
A. 마지막 문장을 먼저 떠올리고 그 문장으로 달려가기 위해서 쓴 소설이 그 작품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불현듯 그 문장이 떠올랐고 성소수자들에게도 결혼의 지옥을 맛보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고요. 그런데 사실 모든 작품에 그 문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굉장히 자기 자신에게 씁쓸한 주문을 하는 거잖아요. 이게 네가 원하는 유토피아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는 거잖아요. 요즘 제 작품에 대한 비평으로, 왜 마지막에 해결의 기미가 없이 좌절로 끝나느냐 라는 말을 하시거든요? 내가 여전히 사회 속에 살고 있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해결책을 찾아버리면 그 고민에 대한 발화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해결책이라는 게 뭔가... 옥장판 같은 느낌?(웃음) 저도 요즘에는 가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안될 것 같고 현실의 모습들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그려낼 것인가가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상태는 이렇게 미궁 속이다, 라는 게 단편에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해결되고 연대한다 라기보다.
저에게는 호러 장르로서의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호러를 좋아하고 제 작품에도 그런 느낌이 많이 나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세기말, 종말론적 분위기가 오면서 단순히 장르적 재미로 다가온 것 같고, 한 편으로는 사회학적 관심이 그런 장르로 전환된 것 같아요. 또 다른 쪽에서는 여성의로서 일상에서 느끼는 위협이 호러 장르로 나타나는 것 같고요.
Q. 여성의 글쓰기를 의식하고 있는 작가로서 그것과 소설적인 완성도와 여성주의적 의식이 충돌하는 지점이 없었나요?
A. 제 경우엔 작가와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고를 쓰는 동안은 원고를 끝내야겠다는 생각만 해요. 이 원고로 사회를 변혁하고 뭐 그런 것보다 끝내겠다는 생각을 해요.
Q. 실제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다루실 때가 있잖아요.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활용하다 보면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자전소설을 발표해본 적이 있는데 그 인물 중 누가 작가 본인인지 추측할 수 없어요. 겪은 일을 쓴다고 해도 픽션화 되는 이상 그건 실제 사건이 아니게 되는 거죠.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글 쓰는 순간 이상해질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인물 구상은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A. 저는 정말 사람처럼 만들어요. 배경을 다 넣고 다양한 프로필을 설정을 해요. 이 사람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성장했고 지금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고 이런 걸 연표처럼 써둬요. 결국엔 그걸 반 이상 넣넣지 않지만, 내가 이 인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이야기가 완성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이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를 쌓는 식으로요.
* 박민정 작가님이 내주신 과제는 <페미니스트 모먼트> 읽고 리뷰 한 페이지 써오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