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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HU Aug 05. 2018

연극이 끝나고 난 뒤_

[여성 연기 원데이 클래스_ 페미활극] 후기


7월 30일, 대전 대흥동 <나무시어터>에서 여성 연기 원데이 클래스 <페미활극>이 열렸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후기를 적었습니다.






"이곳은 갈매기가 우는 해안가였다가 누군가의 빈방이었다가 산속이 되기도 해요. 배우들이 연습실로 쓰는 곳이지요. 여러분이 오신다고 해서 치웠는데, 치우느라 힘들었어요(웃음) 무대를 올릴 때마다 여긴 난리가 나요. 뒤에 보시면 의상부터 소품... 그런 것들로 이 공간이 꽉 차요." _ 남명옥 선생님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벌써 반가웠어요."


'잘'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다른 세대의 여성들끼리 만날 일이 잘 없잖아요. 여기 오신 분들은 특히 의지가 대단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에너지가 느껴져서 저도 활력이 돌고... 하여튼, 재미있게 해봅시다!"


남명옥 선생님은 활짝 웃으셨다.

 


으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없이 나무시어터 연습실에 모인 열다섯 명의 수강생들은,

이런 걸 했다.




[페미활극] 프로그램 세부 내용


1. 인사 나눔


간단한 자기소개 후에,

(참가하시려고 서울에서 오신 분도 있다!)


2. 내 몸을 향한 여행

을 떠났다.


1) 움직임 기초: 다양한 속도의 걷기, 안 쓰던 몸 감각 발견하기


천천히 걷다가 빨리 걸었다. 평소에는 둘 다 잘 안 했는데.



"자, 아주 천천히 걸어봅시다. 내 걸음을 내가 느끼면서요. 빈 공간을 내가 채운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걸어보세요. 이제 시선을 옮겨보세요. 정면을 보다가 옆에 있는 거울을 보기도 하고 토끼 인형을 보기도 하면서... 시선을 옮기면 자연스럽게 방향이 바뀌어요. 내가 저것을 보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앞사람의 뒤꿈치, 옆사람의 어깨... 음료수... 천천히 바라보면서 걷다가 이제 빠르게 걸어보세요. 방향을 과감하게 틀어보세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면서 방향을 이쪽저쪽으로 바꾸면서 걸어보세요.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지세요?"


"이제 아주 간단한 스트레칭을 해볼 거예요. 팔다리를 쭉-뻗어도 다른 사람이 닿지 않을 정도로 내 공간을 확보해보세요. 그리고 일자로 누워보세요. 편-안 하게..."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몸에 힘을 빼고 누웠던 적이 있던가? 걷기가 끝나니 내 호흡이 느껴졌다. 전신에 열이 돌았다. 천천히 자리를 확인하고 누우니까 약간 가빠진 숨이 정리되면서 누워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 어떻게 해요 여러분? 기억 안 나죠. 아침에 잠에서 깨서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한 번 천천히 일어나 보세요. 팔로 반대쪽을 짚고 다른 쪽으로 돌아서 아주 천천히... 일어나서 앉아보세요."


어려웠다.


"일어나서 앉았으면 방금 일어난 순서 그대로 기억해서 반대로 다시 누워보세요. 자, 먼저 팔을 짚었고... 등이 먼저 닿았고...."



천천히 하니까 곧 잘 되었다.

천천히 하는 거 재밌구나. 그냥 일어나기만 했는데 재밌어.

관절이 느껴지고 그냥 일어나기만 하는 건데도 사람마다 다 달라. 꼭 춤 같아.





3. 나만의 우주

- 추억의 순간들 몸으로 표현해보기, 큰 공 속의 내 세상


지금 생각나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그 정지된 장면을 몸으로 표현했다.


어렸을 때, 고등학생 때, 바로 어제, 연기수업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일.



4. 큰 소리 쳐본 적 있어요?

- 즉흥 상황극 : 그때 나는 소리쳤어!


선생님은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대사로 쓸 문장들을 스무 개 정도 뽑아오셨다. 소변검사지 같은 그 종이를 한 장씩 뽑았다 다. 첫 대본을 받은 신인배우의 기분으로 그 문장을 속으로 읽었다(두근두근)



사진 찍는 스탭부터 남명옥 선생님까지 각자 하나씩 대사가 주어졌다.


"하나 둘 셋 하면 우리 전부 동시에 이 대사 내용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큰 소리로 소리쳐서 읽어봐요. 두 번은 없어. 딱 이번 한 번이야."


우렁찼다.

내 목에서도 예상치 못한 큰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내 대사는 짧은 거라서 다른 사람들이 읽는 동안에 끝났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연기를 잘 해요?"

선생님께 우문도 했고

"끝까지 하는 사람은 연기를 재밌어하는 사람인 거 같아. 재능도 물론 있겠지만 천재적인 재능만으로 오래오래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내가 연기를 너무 좋아하고 계속 알고 싶어서 열심히 하게 되는 거 같아. 나는 그런 거 같아."

현답도 들었다.



돌아와서는 각자 대사의 장면을 상상했다. 대사 한 마디에서 단편소설급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수강생은 대사의 장면을 상상해 설명하면서,

'제가 연기를 할 때... 다들 뒤돌아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유 있는 설정을 하기도 했다.


제 대사는 짝이 필요한데요. 앞에 계신 분이 남편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캐스팅을 하기도 했다.


어떤 대사의 장면이 이상하게 잘 상상될 때에는 그게 나와 너무 밀접해서 울컥-하기도 했다.

문장을 이해하고 배경을 상상하고 그것을 표현하면 그게 연기였다. 그게 모이면 극이 되는 거겠지.

연기 클래스를 기획하면서 '연기 클래스'와 '연극 클래스' 둘을 혼동했는데 이제 아주 조금 알겠다.





5. 소감 나누기와 마무리


너무 잘해 다들... 자네들 연기해볼 생각 없는가? _남명옥 선생님 말씀


뽑아 든 소설 속 문장이 유난히 길어서 '큰소리쳐 본 적 있어?' 할 때 내가 마지막까지 남겠구나 싶었다.
 다 같이 지르기 시작한 큰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내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니까 겁이 났다. 이런 것도 무대공포증인가...
남들이 다 끝내기 전에 나도 멈출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끝까지 소리를 질렀다.
손은 조금 떨렸는데 목소리도 떨렸을까? 떨려도 괜찮으니까 앞으로도 마지막까지 큰소리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가자 V)


난 연극이 싫다. 연극할 때 많이 많이 혼났다. 그래서 연기수업 듣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걸 너무나 원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남이 되어보는 것을 원하는 거 같기도 했고.
몸도 언어라 할 수 있다면 새로운 언어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카페에서 만났으면 이렇지 않았을 건데 여기에서 몸을 움직이며 소리치며 만나서 조금 달랐던 만남으로 기억할 거 같아. 상기된 얼굴들을 보았어요.
(BOSHU 팀원 R)


한계를 가진 내 몸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거잖아요. 그게 진짜 묘한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내 상황이 아니고 나는 실제 그 사람도 아닌데,
내가 그 상황에 들어가서 내 목소리랑 표정으로 이입하고 몰입해서 연기를 해내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 되어보면서도 여전히 나인... 그런 재미...? 해소되면서도 다시 채워지는 기분.
또 하고 싶어! 맨날 연기하고 싶어! 정규 클래스 만들고 싶어!!!! 너무 재밌어!!!
(BOSHU 팀원 S)



대사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대사의 동기를 연기하는 거라고. 영화감독 인터뷰 같은 데서 보고 왠지 맞는 말 같아서 노트에 적어뒀었다. 그 말이 여기서 이렇게 이해될 줄은... 선생님이 오늘 알려주지 않은 것들을 혼자서 알게 되었고 그건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성 연기 원데이 클래스_ 페미활극] 소식은

곧 발행될 BOSHU 10호 여성인물특집 <방어흔으로부터>에도 수록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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