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이 닫히고, 희수는 한숨을 쉬며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메신저 창에는 그녀가 지후에게 처음으로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
<잘 가고 있어?>
답장은 없었다.
‘뭐야. 지금 나 씹힌 거야?’
희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바쁜가 보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다음 역까지 답 안 하면 넌 끝이야.’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다음 역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좋아. 그럼 그다음 역까지 답 안 하면 정말 끝이야.’
스스로 최후통첩을 내리며 짜증이 점점 쌓여갔다. 주먹을 꾹 쥐고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여전히 메시지 옆에서 서성이는 '1'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이렇게 신경 쓰이게 만들 거면 처음부터 왜 다가왔을까. 대학교 입학 후, 이제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나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취업 걱정, 성적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마냥 자유롭지는 않았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연애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그럴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나타났다.
그 녀석은 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해맑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을 따라다녔다. 힘들 때마다 느닷없이 나타나 장난을 치고, 우울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옆에서 걷던 녀석.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사귀자고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녀석은 점점 익숙해졌다. 그 녀석이 없는 하루는 뭔가 허전하기까지 했다.
오늘도 녀석은 늘 그랬듯이 같은 방향이라며 거짓말을 하면서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어왔다.
녀석의 집이 마곡동 쪽이라는 것은 녀석을 좋아한다며 뒤를 캐고 있다던 윤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성남 가는 길목에 있는 희수의 집 방향과는 정 반대의 끝과 끝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오늘도 굳이 자신을 따라 지하철 역까지 함께 와주고 환하게 웃으며 이제 자신은 버스 타러 간다며 유유히 사라졌다.
어쩌면 그게 고마웠던 걸까. 아니면 오늘은 특별히 기분이 좋았던 걸까.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희수가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화가 났다. 서운한 감정도 차올랐다. 이렇게 감정적이 되어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희수는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 핸드폰 배터리가 다돼서! 일회용 충전기 사서 이제야 충전했어. 잘 가고 있지?>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금 전까지의 짜증과 서운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
희수는 툴툴거리며 답장을 보냈다. 그 짧은 한 글자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이 담긴 모양이었다.
곧바로 그 녀석의 능청스러운 답장이 도착했다.
<미안, 답 기다렸어?>
희수는 화면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내가 왜?>
희수는 고개를 들었다. 매달린 손잡이들이 춤을 추듯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녀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