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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고함에 대하여

by 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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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코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국민학교 동창 녀석과 저녁으로 먹은 난자완스.

잘못이 있다면 평소답지 않게 기름지고 느끼했던 복림장의 그 난자완스에게 있었다.

복림장의 자랑인 짬뽕의 맛은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칼칼하고 깔끔한 국물에 특유의 풍미. 요즘 젊은이들 말로 ‘맛있게 맵다’고 한다던가? 맛있는 것과 매운 것이 어떻게 한 문장 안에서 같이 어우러지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복림장의 짬뽕은 변함이 없었다. 그냥 오늘 우리가 먹은 난자완스의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이다.


난자완스를 한 입 씹을 때부터 평소와는 다른 이물감이 있었다.

내 착각이겠거니 생각하며 계속 먹었지만, 어딘가 석연찮은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느끼함이었다.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거북함.

오늘 우리가 먹은 난자완스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느끼함이 잔뜩 묻어 나왔다.


그래서일 것이다.

친구 놈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내내 속이 거북했다.

자꾸 가스가 차고 방귀가 나온 것은, 분명히 평소보다 느끼했던 난자완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지하철에 타서도 남몰래 조용히 두어 번 방귀를 흘리긴 했다.

‘뀌었다’가 아니라, ‘흘렸다’라고 표현한 것은, ‘뀌었다’라고 하기에는 억울할 만큼, 소리도 안 나고 냄새도 안나는 방귀를 남몰래 아주 살짝 내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내 방귀는 소리도 안 나고 냄새도 안 나니까. 게다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괄약근을 조절했던가! 내가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괄약근 조절에 실패해서 방귀를 지릴 정도로 낡지는 않았다. 이 지하철에 있는 젊은이들하고 팔씨름을 붙어도 열댓 명은 너끈히 자빠뜨릴 수 있을 것이다.

좌우지간 나는! 방귀를 ‘누가 알도록’ 뀌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앉아서도 그랬다.

아니, 이 자리에 앉아서는 절대로 방귀를 흘리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끊은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니, 담배냄새가 몸에 배었을 리도 만무하다. 거기다가 목덜미에 까지 듬뿍 바른 스킨로션의 향취도 아직 은은한 것이, 내 몸에서 나쁜 냄새가 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내 주위에 앉았던 사람들도 다 일어나고, 내 옆에는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저기 서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서 있을 바에는 그냥 내 옆에 와서 앉으면 될 노릇 아닌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내 인상이 그렇게 비호감인가?

우리 손주들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코로나라도 걸렸다고 생각들 하는 걸까?

정말 소외감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살기는 정말 쉽지 않구나.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왕십리, 왕십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아, 종점이라 다들 일어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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