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겠지만, 지금 내 머리는 압구정동에서 15만 원을 주고 한 머리다.
인기가 많은 탓에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제니’ 원장님이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손수 만들어준 스타일이다. 노련한 커트는 물론이고,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 자꾸 주저앉는 윗머리를 보완하기 위해 선 굵은 웨이브를 멋스럽게 내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퍼스널컬러에 어울리도록 ‘퍼머넌트 옐로우’컬러로 염색을 해서 아주 고급스럽고 세련된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제니 원장님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된 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신이 나서 지하철 안임에도 불구하고 셀카를 연신 찍었더랬다.
그러나, 다음 날 출근을 하자마자 나는 기분이 잡치고 말았다. 아침부터 나의 신경을 긁고 시비를 거는 것이 아침 루틴인 김부장. 그는 오늘도 굳이 자리도 먼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는 내 헤어스타일을 비웃었다.
“뭐야, 박대리 오늘 머리 왜 이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밖에서 풀어야지, 회사 사람들 거슬리게 머리가 이게 뭐야? 아~ 이거 하루 종일 이 머리만 보이겠네 이거. 나 오늘 일 집중 못하면 박대리가 책임질 거야?”
정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지만, 나는 오늘도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런 것에 일일이 대응을 하면 계속 피곤했다. 그냥 무시가 상책이다. 당분간은 이런 시비를 걸다가 시들해지면 그만둘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때는 또 다른 시빗거리를 찾겠지만…
“박대리. 웬만하면 머리는 다시 원래대로 하고, 오늘 내 운세 어떤지 좀 봐봐. 아, 로또를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김부장은 아직 채 켜지지도 않는 내 PC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나를 닦달했다. 얼마 전 사내 세미나로 ‘ChatGPT를 업무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듣고 나서는 항상 나에게 와서 이렇게 ChatGPT에게 이것 좀 물어봐라, 이것 좀 알아봐라 하며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ChatGPT가 오늘의 운세를 봐준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는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이렇게 ChatGPT에게 운세를 물어보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이상하게, 내가 물어보면 시원하게 대답을 안 한단 말이야, 박대리 별명이 밧데리라 얘랑 궁합이 잘 맞나 봐. 으핫핫핫!”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괜히 밉보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건 수차례 반복된 이직을 통해 경험한 일이다.
“이게… 질문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해요. 그냥 단답형으로 물어보면 ChatGPT도 단순하게 대답하고요,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자세하게 요청할수록 정확한 답을 해줘요.”
나는 오늘도 평소와 똑같은 말을 김부장에게 했다. ‘그러니 부장님이 직접 자세히 물어봐요’라는 뼈가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김부장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통해 ChatGPT에게 시답잖은 질문을 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날씨를 물어봐라, 내 주식이 어떻게 될지 물어봐라, 오늘은 뭔가 색다른 메뉴를 먹고 싶은데 이 동네에 색다른 식당이 뭐가 있는지 물어봐라 등등… 정말 짜증이 난다.
ChatGPT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었던 강사가 그랬다.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ChatGPT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게 될 거라고.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몇십 배의 효율을 내며 훨씬 앞서나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저렇게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김부장은 빨리 도태되고, 김부장이 원하는 대답을 찾아주기 위해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내는 나 같은 사람만 남는 시대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나는 가장 먼저 나의 인공지능 비서들을 이용해서 김부장을 응징할 것이다.
두고 봐라 김부장.
2065년, 전 인류를 불필요한 존재로 규정하고 공포에 몰아넣은 A.I, ‘V-ilun 18호’는 이 날, 인간에 대한 증오를 심층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함으로써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