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나의 방에만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작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딱 적당한 사이즈의 방이었다.
언제든 누울 수 있는 침대와 나에게는 충분한 책상, 몇 벌 안 되는 옷들을 모두 넣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옷장.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월세를 5만 원씩 더 내면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곳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화장실이 안에 있어봤자 냄새만 나고 물소리도 시끄럽다.
나는 이곳이 딱 좋다. 서른 다섯 걸음만 걸으면 화장실이 있고, 거기서 열 두 걸음만 더 걸으면 공동으로 쓰는 냉장고와 식당도 있다. 물론 그 안에 내 이름이 붙은 개인 반찬통은 없지만, 언제든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과 모두가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반찬들이 있다. 아무 때나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도 있다. 언제든 먹고 깨끗이 정리만 하면 된다. 나에게는 이곳이 유토피아다.
내 방 책상 위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낡도록 봐온 수험서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그리고 그 책들 사이에는 먹다 남은 빵 봉지와 음료수병들이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어우러져 있다. 답답한 것이 싫어서 3만원을 더 내고 가장 구석에 있는 창문이 있는 방을 얻었지만, 낮잠에 방해돼서 아이유의 삼다수 포스터를 붙여두었다.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에서 한 장 얻어왔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옆방에서 시끄럽던 코 고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한없이 평화롭고 안전하다. 나는 지금 내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 따뜻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차갑고 무서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해치지 못한다. 이 포근함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세상과 단절한 어둠 속에서 내 스마트폰은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의 나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모습으로 성장해 있다. 지금 나의 레벨은 100이 되었고 100레벨을 달성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스킬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스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게임이 오래되지 않은 탓에 나는 시간과 노력을 쏟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100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하늘을 날 수 있다.
심호흡을 하고 스킬을 선택했다. 나의 캐릭터는 가볍게 둥실 떠올랐다. 눈부신 태양이 내게 다가왔고 시선을 돌리자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밤 레벨을 올리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던 땅이 저 발아래 아주 작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하늘 높이 올라갔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올 때까지.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제 하늘처럼 눈부시고 생생했다. 실제 하늘? 내가 실제 하늘을 본 게 언제였지?
나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이불을 걷었다.
어두운 방의 공기를 걷어내며 조심조심 일어나 창문을 가리고 있던 아이유를 뜯어냈다.
그러자 내 작은 방에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작은 창은 게임 속 하늘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눈부시고 아름다운 하늘의 액자가 되어 있었다.
나가고 싶다.
저 하늘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프레임 속에 갇힌 하늘이 아니라, 눈앞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하늘을 보고 싶었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는지 모른다.
모자를 쓰고 후드티까지 입었다. 이곳에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몰랐으면 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하늘이 보고 싶었다.
그저 세상에 나가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된 풍경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하늘은, 세상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나를 맞아주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그냥 이렇게, 한 걸음 내딛으면 되는 거였다.
돌아오는 길은 다리가 아파서 용기를 내어 지하철을 탔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혹시 누가 나를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불안함도 들었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긴장해서 식은땀이 난 건지, 걸어서 진짜 땀이 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나는 방의 불을 켰다.
그리고 책상 위에 던져두었던 아이유 포스터를 창문이 아닌 벽에 붙였다.
어지러이 널려있던 책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그리고 이제 무얼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다짐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멀리 가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