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로 런칭하는 미세먼지 마스크에 사용할 비닐파우치 인쇄 감리를 보러 김포에 다녀왔다.
8색 그라비아 인쇄기 두대가 꽉 차있는 큰 규모의 시설에서, 요즘 보기 힘든 젊은 기장과 팀원들의 숙련된 몸놀림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누구 하나 불필요한 행동 없이 맡은 작업을 척척 진행하여 결과물을 뽑아내는 모습. 그것은 정말 마법과도 같았다.
처음 인쇄기를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스무 살이 갓 넘은 풋내기 시절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분주하고 뜨거웠던 을지로 인쇄 골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인쇄를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노른자 땡글한 쌍화차를 배웠다.
그때는 모든게 신기했다. 이것저것 챙겨온 샘플을 만져보고 종이의 이름과 중량을 척척 말씀하시던 지업사 사장님, 거지같이 만든 데이터를 손가락이 백개는 되는 듯한 손놀림으로 다듬고 분판하고 터잡기 해서 인쇄용 필름으로 쭉쭉 뽑아내시던 출력소 사장님, 방금 나온 인쇄물을 루빼로 들여다보며 칼같이 핀을 맞추시던 인쇄소 사장님, 내 작은 노트 맨 뒷장에 남의 회사 로고를 금박으로 텅텅 찍어주시던 박집 이모, 아트지로 누덕누덕 만든 상자 샘플을 한숨을 쉬며 뜯어보시고, 여기다가 디자인을 얹으라며 칼선파일을 만들어 주신 목형집 사장님, 이렇게 마진 안남기고 작업하면 내 손도 토끼모양으로 잘라주겠다던 톰슨 사장님, 박스 풀칠 1원,2원으로 맨날 실랑이를 벌였던 접착 이모님들... 아 갑자기 너무 아련해진다. 그때의 인쇄골목은 모두가 바빴고 뜨거웠다.
시간이 흘러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을지로 골목의 그리운 얼굴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규모가 있는 업체들은 성수동으로, 파주로 떠나갔다. 손쉽고 저렴하게 인쇄물을 만들어주는 공장형 인쇄업체는 을지로의 작은 업체들의 빈자리를 먹고 자라나 거대한 공룡이 되었다.
누구나 쉽게 인쇄물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은 반갑다. 소량으로 고퀄리티의 인쇄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건, 나같은 디자이너들에게는 시장을 넓혀준 반가운 시스템이다. 인쇄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앉은자리에서 디자인을 하고 인쇄를 넘기고 며칠 내로 인쇄물을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다. 간단한 작업들은 대부분 감리없이 진행되고, 좀 신경 써야하는 작업들만 특별히 시간을 내어 감리를 보러 간다. 그래서 모처럼 어제같은 현장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만들어 내는 항상 새롭고 경이로운 작업. 모니터 속에서만 보고 사무실 프린터로 뽑아서 팔랑거리는 복사용지로만 보던 디자인이, 결과물에 대한 상상에서 현실이 되는 과정. 그 과정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달인이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한 길을 주욱 걸어오며 쌓여진 내공. 그것은 쉽게 흉내낼 수 없고, 일부러 보이려고 보여지는 것이 아닌,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 '무엇'이다.
디자이너에게는 어떤 것이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필요란, 그 디자인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작품이 더 멋지게 보이도록 고민해야 하고, 클라이언트의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도록 고민해야 한다. 이 전에 언급한 선생님의 '심부름꾼'이라는 표현이 디자이너의 정확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연차가 쌓이고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기는 쉽지 않다.
내 주관,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심부름꾼'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디자인을 대하는 사람이 달인의 경지에 이른 디자이너라 불리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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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까지 디자이너로 산다고 해도, 내가 그런 디자이너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