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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Jul 06. 2020

칼라

*이 글은 ‘스텔라 장’의 ‘colors’ 라는 노래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뭔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들으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한줄을 적는 동안 노래가 끝났다.)


누구나 좋아하는 색깔이 있다. 

내 아내는 ‘피콕블루’라는 색깔을 좋아하고, 나는 거기에서 조금 더 파란, ‘세룰리안 블루’와 피콕블루의 중간정도 되는 색깔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둘 다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색깔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아내의 색깔은 나를 데리고 사는 아내 마음의 깊이 만큼 깊은 바다 색이고, 나의 색깔은 모래사장 인근에서 거품과 함께 찰랑거리는 경박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그런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고 생각했다’는 건 무슨 이야기일까. 그것이 바로 오늘 할 이야기이다.


나는 유년시절에 녹색을 좋아했다. 회색만 가득하던 작은 골목 시장통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녹지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커서는 아무데나 누워서 멍때리며 하늘을 쳐다보는게 좋아서 그랬는지 파란색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은 파란색에 녹색이 약간 섞인(디자이너 다운 용어를 쓰자면 C:100에 Y:10정도가 되겠다.) 색깔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얼마 전 출근길에 신발을 신으면서 그런 나의 믿음에 혼란이 생겼다. 


어느 부산스러운 출근길 아침, 새로운 자작곡인 ‘나는 핑크를 좋아하지요’를 선보이던 딸네미의 노래(내 딸네미는 매일 신곡을 만드는 천재 싱어송라이터다.)를 들으며, ‘아빠는 파란색을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아하지요’ 라는 가사에 ‘맞아!맞아!파랑 조호아아요호~’로 화답하면서 신발을 신다가 잠깐 멈칫하게 되었다. 지금 신는 운동화는 흰색에 빨간색 상표가 눈부셨고, 현관에 굴러다니는 최근에 산 슬리퍼는 너무도 선명한 빨간색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애플의 ’프로덕트 레드’를 선호하는 남자. 내 책상 위에는 빨간색 프로덕트 레드 케이스로 전신을 감싼 아이폰이 뜨겁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고, 결제를 하지 못해 장바구니에서 썩어가는 애플워치 시계줄도 역시나 빨간색이다. 그뿐이랴, 애들이 찢어발겨서 새로 산 아이패드 커버도 빨간색이고, 프라이탁 가방 중 아무 고민없이 바로 산것도 하얀색에 빨간 색 키칼라가 있는 녀석이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도 빨간색 표지, 회사에서 쓰는 컵도 빨간색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히 나는 파란색을 정말정말정말 좋아하는 아빠인데… 


언제부터,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왜 내 주위에는 빨간 오브제들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이가 들면서 빨간색을 좋아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 그것 때문인가? 아니면 사실 그동안 나 스스로를 속이며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최면을 걸고 살았던 것일까?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딘가 부끄러워서? 아니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트라우마가 또 있는 것인가? (나는 몇해 전부터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면의 트라우마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과거와 아름답게 화해한 전력이 있다.) 


이럴 수 있다. 내가 눈으로 보기에 좋은 색깔과 나 스스로에게 적용시켰을 때 좋은 색깔은 다를 수 있다. 튀는게 싫어서 옷은 무채색을 선호하지만, 색깔은 파란색을 좋아해서 파란색 소품을 선택할 수 있다. 나처럼, 색깔이고 나발이고 그냥 가장 위에 있는걸 꺼내 입어서 옷 색깔은 매일 다르지만 나도 모르게 빨간색 소품을 선호하고 입으로는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무언가 이상하다! 


아동미술과 심리에 대해서도 공부한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또래집단이 생기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로 집단적인 색깔 취향을 보이지만, 그 이전 유아기때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깔을 보면, 정적인 아이들은 파랑과 녹색 계열의 차분한 색깔을, 정열적이고 활발한 아이들은 빨간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색깔을 통해 잠재적인 성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핑크 이전에 녹색을 좋아하던 큰 딸은 정말 온순하고 차분한 성격, 파란 색을 좋아하기 이전에 온 집안을 빨강으로 칠갑을 해놓던 둘째 아들놈은 정말 지랄맞은 성격을 가진 것이 그 이야기를 강력하게 신뢰하게 만들었다. 


성격과 색깔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던 나는 무언가를 크게 깨닫게 되었다. 

어릴때 좋아하는 색깔이 잠재적인 성격을 보여준다고 하면, 어른이 되었을때 좋아하는 색깔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바라는 이상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나를 예로 들자면, 하루하루 불꽃처럼 젊음을 태우며 혼란의 구렁텅이를 살아온 2~30대에는 무언가 안정되고 평안한, 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기에 파란색을 좋아했던 것이고, 이제 마흔이 넘어서는 무언가 다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나로 하여금 빨간색을 좋아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땅의 어르신들이 고생하고 억눌렸던 자신들의 삶을 보상받고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나이가 들어가며 빨간색을 좋아하고, 빨간색으로도 성이 안차서 반짝이까지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러 그런 옷을 막 아무렇지 않게 입고다니는건 아닐까?! (어머니, 오늘 아들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했습니다!)


아님 말고.


나는 이번의 쓸데없는 고민을 통해서 디자이너의 삶과 색깔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 본다. 

(무언가 바보같지만 철학적이라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어 자신의 기호를 억누른 채 살아야 하는 이땅위의 디자이너들.

클라이언트의 요구 이전에 그들의 시안에는 어떤 색이 채워져 있었을까?

그 시안을 벗어나 자신들의 작품에서, 그 삶에서 만큼은 솔직하고 과감하게 자신들의 칼라가 마음껏 드러나기를 바래본다.  


아무튼 나는 파란색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니 당장 빨간색 시계줄을 구입하고, 내친김에 빨간색 티셔츠도 한장 사야겠다.

퓨츄라, 안녕. 1년 뒤에 만나. 더 중요한게 생겼어… (지난 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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