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정하고 늦잠을 잤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은 일찍 일어나기를 포기했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로 한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이틀 만에 이렇게 되다니.
하지만 나는 아예 포기한 것이 아니다. 추우면 두통이 생기고 추울 때 두통이 생기면 어떤 트라우마현상이 발현되어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따뜻해지기까지 잠시 미뤄두는 것이다.
아 우리 아내는 이런 나약한 변명을 가장 싫어하는데, 다행히 아내가 글을 읽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다행이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대강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리다가 일어나서 커피를 내렸다.
예전 같으면 이미 출근해서 오늘 하루는 어떻게 월급루팡으로서의 소임을 다할까 고민했을 시간이다. 그 시간에 무언가 더 열심히 준비를 했더라면 지금 나는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커피나 홀짝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미 지나버린 쓸데없는 후회들을 하다가 다시 후회와 자책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전에 싱크대에 걸려있던 고무장갑 세 짝을 발견했다. 세 짝.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오른쪽 두 짝과 왼쪽 한 짝.
혹시 한 짝이 떨어져 있나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세 짝이 걸려있던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시작했다. 왜 세 짝이 걸려있을까.
아내는 나름의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이 깨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함께 한 약속이 나의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기분에 의해서 깨지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다("오늘은 흐려서 우울해. 다음에 가자."-이런 합리적이고 당연한 이유 같은 거). 그리고 자신이 정한 자리에 나와 아이들이 멋대로 아무거나 올려두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정돈되고 깨끗한 환경에서 무언가 채워야 하는 맥시멀리스트로서의 결핍과 불안을 느낀다면, 아내는 나에게는 당연하고 편안한 혼돈의 카오스 상태를 1초도 견딜 수 없어한다. 아내 자랑을 아침부터 늘어놓다니. 아, 벌써 시간이...
아무튼, 아내는 그래서 이유 없이 이렇게 고무장갑을 세 짝을 꺼내 놓을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방학과 백수가 되어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을 걷어 먹이느라 두 팔로는 부족해서 팔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일까? 미스터리 한 일이다. 그리고 그 비밀은 10분이 넘었으니 내일 마저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