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한 동생 녀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녀석은 재즈뮤지션이다. 재즈 중에서도 전통적인 스타일의 재즈를 고수한다고 하는데, 미국의 어느 바에서 흑인뮤지션들과 어깨를 들썩이며 피아노를 현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관객들의 호응에 고무되어 약속한 공연시간을 훌쩍 넘기고 결국 밤을 새워 연주하고는 집에 돌아갈 것을 걱정할 법한 딱 그런 캐릭터다. 한 가지 덧붙이면 그날 너무 무리해서 팔 아프다며 며칠 누워있는 모습까지가 딱 녀석에게 어울리는 그림이다.
녀석은 짬짬이 팀원들과 공연도 다니고 작업실 겸 차린 학원에서 레슨생도 가르치곤 했었는데, 작년부터 레슨생이 점점 줄더니 올해는 그나마도 다 없어져서 학원을 접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연 섭외도 작년부터 확 줄어서 지금은 정말 깜깜한 상황이라고 했다. 섭외가 수월한 상업적인 음악을 하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했다. 음반이든, 유튜브든, 꾸준히 오래 준비해야 결과가 나올 것 같고, 지금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녀석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 시작하기가 겁나고 막상 시작을 해도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사랑스러운 딸내미도 있는데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나지만, 이 녀석도 이 녀석이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가장의 역할은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갈고닦아서 승부를 걸어봐야 한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지치고 힘이 들겠지만,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이도 많아서 내가 일하던 필드에서는 이제 퇴물 취급을 받지만, 실력 있는 예술가가 뭘 걱정을 하냐고, 너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고, 그 사람들이 만든 시장이 있을 테니 일단 무언가 꾸준히 쌓아서 그 사람들이 너를 발견할 수 있게 하라고 북돋아주었다. 공연영상이든 연주영상이든 나한테 보내면 내가 영상 만들고 디자인도 해서 뭐라도 만들어서 쌓아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아 이 놈의 오지랖...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건지... 이 자식은 나같이 유능한 형이 있어서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남을 돕는 것이 결국 나에게 쌓이는 일임을. 나의 일도 열심히 쌓아가고 이 녀석의 일도 열심히 쌓아가다 보면 누군가는 먼저 대중에게 발견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어쨌든, 분명히 집에서 정신 못 차리고 딸내미랑 꽁냥 거리다가 잠들었을 녀석에게 영상 내놓으라고 카톡테러를 보내놓고 나도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내일부터는 힘차고 새로운 한 주가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