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시작

비가 내리네

by 보스턴임박사

사람이 살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진영이 인수를 처음 만난 날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배는 고팠고, 주머니는 가벼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어 있었다.

차비가 없어서 그는 집에서 교회까지 걸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걸음은 생각보다 길었고 지나가는 버스들은 하나같이 무심하게 그의 옆을 스쳐 갔다.

올라탈 용기는 처음부터 없었다.

안면을 몰수하고 버스에 오르는 일은 그 나이의 진영에게는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지.’
‘아니, 이미 얼마나 걸어온 걸까.’


생각은 늘 제자리였고, 발걸음만 앞으로 나아갔다.

그날은 하필이면 진영이 조금 일찍 교회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준비할 게 있었다.
하지만 알람을 맞추는 걸 깜빡했고, 씻는 것도 옷을 고르는 것도 모두 대충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늦잠을 잔 아침이었다.


교회라는 공간은 언제나 이상했다.


신을 만나는 곳, 구원이 있는 곳, 사랑이 넘친다는 곳.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진영에게 교회는 늘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매주 교회에 갔다.
혹시나—정말 혹시나—자기에게도 언젠가는 신을 만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구원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경험쯤은 하지 않을까?

그런 희미한 가능성 하나 때문에.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일은 어느새 학교에 가는 것처럼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이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날도 그저 가던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늦잠만 빼면.


‘아, 버스를 탔으면 시간 맞췄을 텐데.’


그러나 주머니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렇게 거의 교회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진영을 보며 싱겁게 웃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오는 건가?’
‘아니면… 내 뒤에 누가 있나?’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괜한 생각이었다.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얼굴이 보였다.


인수였다.


진영보다 키는 작고, 반곱슬 머리에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한 친구.
알게 된 지는 몇 주 되지 않았지만, 인수는 처음 교회에 나온 날부터 이상하게 진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인수는 강북에 산다고 했다.
진영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고등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잘할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대신 저녁마다 카페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인수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말을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인수는 이미 진영에게 DJ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수는 다가오자마자 뜬금없이 말했다.


“우리 노래하지 않을래?”

“노래? 무슨 노래?”

“나 중창해보고 싶어.”

“중창? 그게 뭔데?”


말은 가벼웠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진영은 처음 ‘중창’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인수는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어떤 남고 중창단을 봤다고 했다.
멋있어 보였다는 말과 함께.


“그럼… 몇 명이 하는 건데?”

“단사중창도 있고, 복사중창도 있어.
우린 아마추어니까 복사가 낫지 않을까?”


진영은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결국 다시 물었다.

인수는 설명했다.
네 명이 하면 단사, 여덟 명이 하면 복사.

왠지 잘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수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진지하게 제안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잃을 건 없었다.

그날부터 둘은 여섯 명을 더 찾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목소리 괜찮은 애들을 중심으로.


가장 먼저 신기를 떠올렸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단짝. 노래 잘한다고 늘 으스대던 녀석.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괜찮은 테너였다.

신기는 복사중창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미를 보였다.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그렇게 인수, 진영, 신기.
셋은 이름도 없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망하기 쉬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영은 이미 교회가 조금씩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계획은, 이상하게도 구원처럼 느껴졌다.


몇 주 뒤, 신기가 정우를 데려왔다.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고, 웃는 인상이 좋은 친구였다.

정우는 기타를 쳤고, 노래를 좋아했다.
중창 이야기를 하자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네 명이 되었다.
단사중창은 가능했다.

하지만 소리는 약했고, 화음은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원석이가 왔다.


말수가 적고, 소리는 깊었다.
베이스였다.

진짜 베이스.

그가 들어오자 화음이 달라졌다.

다섯 명이 되었고,
마침내 노래를 정했다.


“비가 내리네.”


우울하고, 느리고, 묘하게 울림이 있는 곡.


어느 날, 지하 복도를 걸으며
누군가 자연스럽게 노래를 시작했고
다른 이들이 하나둘 화음을 얹었다.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정태였다.


“야, 너희 뭐 하냐?”

“중창.”

“좋은데? 나도 껴줘.”

그렇게 여섯 명이 되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시작은 있었다.


그리고 진영은 그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확률이 아니라
순간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