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계획하는 법
비가 내리네를 연습하러 다시 모인 것도 벌써 세 번째 일요일이었다.
장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교회 안 공기는 늘 눅눅했다.
침묵을 먼저 깬 건 진영이었다.
“얘들아. 내가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학년 애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도 좀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더 데려올 애들은 없는 것 같아. 너희 생각은 어때?”
누군가 먼저 말해줘서, 모두가 조금은 편해졌다.
사실 진영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인수도, 신기도, 원석이도, 정태도, 정우도—
혹시라도 “너희는 별로 노력 안 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다들 꽤 서운해했을 것이다.
그만큼 각자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러나 아직까지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을 뿐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신기가 입을 열었다.
“그럼… 1학년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때?”
순간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1학년? 이제 막 고등부에 들어온 아이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정우가 곧장 말을 받았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우리 학년만 있는 것보다 1학년이 같이 하면, 나중에 우리 다음 기수로 이어갈 수도 있고.”
어라?
정우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신기의 의견에 동의하다니.
그리고 방금 뭐라고 했지?
새로운 기수?
공연 한 번 해본 적 없고,
한 곡도 제대로 끝까지 부르지 못한 상태에서?
그때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정태가 웃으며 말했다.
“아하, 새 기수는 아직 너무 이르고. 우리 아직 시작 단계잖아.
근데 1학년을 찾아보는 건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혹시 떠오르는 애 있어?”
인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맞다. 대상이 있어야지. 그걸 생각을 못 했네.’
그때 진영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얼마 전에 1학년에 광웅이라고 있는데, 걔가 노래하고 싶다고 한 적 있어.
근데 광웅이는 음이 좀 높잖아. 세컨드 테너가 맞는데, 우리는 이미 둘이 있고… 정우랑 정태.
그래서 아직 대답을 못 했어.”
잠시 침묵.
그러다 신기가 다시 나섰다.
“그래? 광웅이가 그런 얘기를 했어?
그럼 광웅이를 진영이랑 바리톤으로 하거나, 아니면 나랑 퍼스트 테너로 하면 안 될까?
우리가 뭐 프로도 아니잖아. 음이 딱 맞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재미로 시작한 거니까, 마음 맞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신기는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난 광웅이 좋아. 괜찮은 애야.”
신기가 좋다고 말하자, 다들 별다른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진영이가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럼 신기랑 내가 지금 광웅이 만나서 얘기해 볼게.
혹시 광웅이가 아는 1학년 중에 또 괜찮은 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 나온 김에, 지금 가보자.”
그렇게 신기와 진영이는 연습실에 네 명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멀리 앉아 있는 광웅이를 금세 발견했다.
광웅이 옆에는 처음 보는 아이가 있었다.
다가가자 광웅이는 고개를 들었고,
그 옆의 아이는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진영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광웅아. 우리 지금 남자 복사중창단 만드는 중인데, 지금 여섯 명이야.
전에 너도 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 마음 아직 그대로야?”
광웅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형, 저 진짜 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옆에 있던 친구를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 제 친구인데요. 교회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근데 얘도 노래하고 싶다는데요?”
‘… 뭐라고?’
진영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신기를 봤다.
그 순간, 고개를 돌리고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형! 저 전자유라고 해요.
저도 노래해보고 싶어요.”
아이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괜히 한 번 더 귀에 남았다.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 사람은 함께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 문을 열자, 안에서 떠들던 네 명이 동시에 일어섰다.
진영이가 말했다.
“얘들아. 방금 8명 다 찼어.
여기 광웅이랑 자유야.”
광웅이가 먼저 씩 웃으며 인사했다.
“천광웅입니다. 형들 잘 부탁드려요. 중창단, 왠지 재밌을 것 같아요.”
이어 자유가 말했다.
“전자유입니다. 퍼스트 테너 하면 맞을 것 같고요.
교회 온 지는 얼마 안 됐는데… 형들 만나서 반가워요.”
그 순간, 자연스럽게 웃음과 인사가 오갔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여덟 명이 되었다.
퍼스트 테너: 독고신기, 전자유
세컨드 테너: 감정우, 강정태
바리톤: 선우진영, 천광웅
베이스: 정원석, 오인수
우리들의 복사중창단은 그렇게 완성됐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비가 내리네’를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정우의 제안으로 우리는 곡의 흐름을 계속 바꿔가며 실험했다.
“여긴 작게 시작하자.”
“여기서 점점 키워보자.”
“다시 천천히 줄여.”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각자 한 손을 귀에 대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려 애쓰며
눈은 계속해서 서로를 찾았다.
같은 곡을 수십 번 불렀지만,
같은 방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악보는 빌려왔을지 몰라도,
음악은 우리 것이어야 했다.
처음치고는 괜찮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연습을 마치고 진영이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정우는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이내 웃었다.
“그래. 오늘 정말 좋았다. 다음 주에 또 하자.”
헤어지기 직전, 정우가 진영이에게 눈짓했다.
둘은 같은 방향이라 몇 정류장 함께 걷게 됐다.
교회 뒷문을 지나 한양아파트 쪽으로 향하는 길.
말없이 걷던 중, 정우가 조용히 말했다.
“진영아. 오늘… 참 좋았다. 그렇지?”
진영이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찼고, 화음도 잘 맞았고… 자유도 생각보다 잘 어울렸고.”
정우가 웃었다.
“그러게. 이렇게 매주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근데… 비가 내리네 다음 곡은 뭐 할지 생각해 봤어?”
“주의 크신 은혜.
선배들이 불러줬는데 화음이 너무 좋더라.
근데 좀 어려워서 고민 중이야.”
그러자 정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거 알아! 숭실 OB 테이프에 있어.
다음 곡으로 하자. 악보는 내가 가져올게.”
그날,
진영이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기 혼자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는 법을.
그리고 그걸,
정우에게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