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 디제이

인수가 교회에 오는 이유

by 보스턴임박사

인수는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랐다.


어렵게라는 말이 어울리는 삶이었다.

아버지는 인수의 세 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인수는 그 얼굴조차 희미했다. 기억보다 먼저 책임이 찾아온 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유난히 빨리 철이 들었다.

머릿속에는 늘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
엄마가 더는 고생하지 않게.


그 생각은 목표가 아니라 이유였다. 인수가 살아가는 이유.


중학교 때부터 인수는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신문을 팔았고, 우유를 배달했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대체로 그런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용돈 정도가 고작이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그만두게 만들기에는, 현실은 너무 컸다.

인수에게는 ‘큰돈’이 필요했다.


학교에 택집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키가 크고, 생김새도 좋았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지만 이상하게 늘 돈이 있었다. 그 점이 인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일부러 택집에게 다가갔고, 어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집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밤마다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얘기였다. 불법이었지만, 키가 커서 나이를 속이고 가발을 쓰고 홀에 선다고 했다. 택집 역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인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디서 일하는지, 시간은 어떤지, 얼마를 받는지—
그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물었다.

그리고 결국, 인수도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

키가 택집만큼 크지 않았던 인수는 홀에는 설 수 없었다. 대신 음향 담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감전 사고가 났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끊겼고, 그는 정말로 죽을 뻔했다.


살아나긴 했지만, 그 대가는 즉각적인 해고였다.


그럼에도 인수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맸고, 결국 한 음악다방에서 음향 담당으로 일하게 됐다.

벌이는 예전만 못했다. 하지만 책을 사고, 생활을 유지하고, 조금씩 어머니 주머니에 돈을 넣어드릴 수는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다방 주인은 인수의 목소리를 좋게 봤다.
DJ가 비는 날이면 인수를 대신 앉혔다. 고1에서 고2로 올라갈 즈음, 인수는 정식 DJ가 됐다.

그는 그 일이 좋았다.
음악을 듣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가끔은 라이브 공연을 진행했다. 다방은 점점 유명해졌고, 학생들—특히 여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수의 눈에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얼굴이었다. 이목구비가 또렷했고, 키도 제법 컸다. 165쯤 되어 보였다. 그녀는 늘 친구 하나와 함께 다녔는데, 그 친구는 밝고 말괄량이 같은 인상이었다.

둘은 가끔 다방에 와서 30분 남짓 앉아 있다가 떠났다.

인수는 점점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은 꾀를 냈다.
신청곡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단, 조건이 있었다.
곡과 함께 사연과 이름을 반드시 적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신청곡을 내지 않았다.
인수는 DJ 부스 안에서 속만 태웠다. 부스는 칸막이로 막혀 있었고, 그는 근무 중이었다. 여기는 돈을 받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신청곡 종이가 들어왔다.


신청곡: 내 인생은 나의 것
사연: 교회 친구와 함께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이름: 최정인


정인.
최정인.

이름을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불러보았다.
입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았다.

교회를 다니는구나.


인수는 태어나서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인이 다니는 교회라면—
그건 가볼 만한 곳일 것 같았다.

얼마 뒤, 그녀와 늘 함께 다니던 친구에게서 교회 이름을 알게 됐다.

압구정동.

강북에서만 살아온 인수에게는 낯선 지명이었다.
처음엔 괜히 이름이 웃기게 들렸다. 하지만 지도를 보니, 강을 건너자마자 있는 동네였다.

인수가 압구정 교회에 처음 간 날, 그는 길을 몰라 서성이다가 한 여자에게 붙잡혔다. 도망치려다 그가 전도사라는 걸 알게 됐다.

“전 그냥 고등학생인데요.”

그러자마자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교련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다가왔다.

고등부 회장이었다.

“나 구채육이야. 이름이 뭐야?”

“오인수요.”

“이름 좋네. 교회 처음이야?”

“네.”

“걱정 마. 친구들 소개해줄게.”

그는 인수의 목덜미를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인수는 잠시 멍해졌다.
나무 의자들, 무대, 십자가, 단상, 마이크, 그리고 피아노.


그때 채육은 인수를 한 사람에게 맡겼다.


“진영아, 오늘 얘랑 같이 앉아.”

키 크고 마른 소년.
진영이었다.

예배가 시작됐다.
인수는 졸렸다. 어젯밤도 늦게까지 일했다.

그러다 다시 채육이 단상에 올랐다.

“오늘 처음 온 친구가 있습니다.”

이름이 불렸고, 인수는 앞으로 나갔다.
그때,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가 있었다.


최정인.

피아노 앞에 앉아, 반주를 하고 있었다.

‘주의 사랑으로 환영합니다.’

그 노래를 듣는 동안 인수는 확신했다.

아, 여기다.
제대로 왔다.

그날 이후, 인수는 정인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리고 이곳에 남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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