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가 교회에 오는 이유
8명이 처음 모인 날, 정우가 진영이에게 좀 얘기하고 싶다는 눈치를 주었다.
진영이와 정우는 교회 뒷문 쪽으로 해서 한양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진영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진영이가 뭔가를 혼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정우가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물었다.
“진영아, 오늘 참 좋았다. 그렇지?”
‘아, 그렇다. 지금 정우와 함께 걷고 있었지. 그만 내 생각만 하다 깜빡 잊었네.’
진영이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응, 그래 오늘 8명이 드디어 다 찼고, 화음도 잘 맞고, 마음도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 처음 본 자유도 어떨지 약간 걱정했는데, 잘 적응하는 것 같고.”
정우가 웃으며 받았다.
“그래, 나도 오늘 정말 좋더라. 이렇게 매주 노래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그런데, '비가 내리네' 다음에 무슨 노래 할지 생각해 본 것 혹시 있어?”
진영이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주의 크신 은혜'
라고, 얼마전에 합창반 선배들이 불러줬는데, 화음이 너무 좋더라고, 그래서 그 노래 불러보면 어떨까 하는데, 노래가 좀 어렵다고 해서, 할지 말지 고민 중이야.”
그러자 왠걸, 정우가 맞장구를 치며 기뻐하듯 말했다.
“이야. 주의 크신 은혜, 나도 알아. 그거 숭실OB 테이프에 있어. 나도 그거 들어본 적 있거든. 화음이 너무 좋고 변화가 많아서 좋아했는데, 너도 그 노래 아는구나? 다음에 이 노래 하자! 악보는 내가 가져올게!”
정우와 함께 얼마나 더 걸었는지 모르지만, 진영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미래를 함께 계획하는 방법을, 정우에게 그날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정우와 ‘주의 크신 은혜’를 다음 곡으로 정한 날,
진영이는 ‘주의 크신 은혜’악보를 구입하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주의 크신 은혜'라는 노래는 확실히 ‘비가 내리네’와는 차원이 다른 노래였다.
주의 크신 은혜로써 구원을 받았네.
주여 다시 우리들을 버리지 마소서.
내 죄를 위하여 영 죽을 우리를
주의 크신 그 은혜로 다시 삶을 얻었네
마치 진영이 하고 싶은 기도를 이렇게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정말 구원받고 싶어요.
제발 날 버리지 말아 주세요.
죽을 것만 같아요.
살고 싶습니다.
'주의 크신 은혜'는 마음으로 울며 부르는 바로 그 통곡, 진영이의 통곡이었다.
진영이는 왠지 이 노래가 마음에 들었고, 혼자 이 노래를 연습하면서, 뭔가 속이 시원해짐이 느껴져서 좋았다.
정우가 교회에 다니게 된 건,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완벽주의자였던 정우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성격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길러진 습관 때문이었다. 정우의 아버지는 학교 앞 오락실을 운영하시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 오셨는데, 하루종일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오락실 영업을 마치고 나면, 오락실 문을 닫고 밤늦게까지 오락실 기계를 깨끗이 닦아야 했다. 처음엔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만 하셨지만, 어머니의 손목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아버지도 클리닝 약품 때문에, 기관지가 나빠지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정우와 남동생 정식이도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아버지와 함께 매일 몇시간씩 오락실 기계를 닦게 되었다.
특히 장남인 정우는 아버지와 동생 정식이, 모두를 위해 솔선수범했다.
이렇게 오락실 기계를 닦고 청소를 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게을리할 순 없었다. 정우는 일이 끝난 뒤 독서실로 향했고, 2-3시간 공부를 하고 난,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야 했기 때문에, 잠은 항상 부족했다.
정우는 만성 피로에 시달렸다.
중2때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중3이 되었을 때, 정우의 몸에 고장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반드시 치뤄야 하는 연합고사시험을 한달 남기고, 정우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고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수술 후 회복하는데까지, 6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이 걸렸다. 결국, 정우는 한 학년을 다시 다녀야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우가 7살에 입학했었기 때문에, 한 학년을 늦춰도, 생년상으로는 같은 나이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래서 사실 정우가 동기들과 다르다는 걸, 아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담당 간호사님이 크리스천이셨는데, 마음을 다해서 돌봐 주셨다.
처음엔 원래부터 크리스천일 거라고 짐작을 했다. 그런데, 다른 간호사님들의 말이 그 분도 힘든 계기로 인해, 나중에 교회에 다니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간호사님이 당직이 되었을 때, 슬며시 여쭈어 보았다.
‘왜 교회에 가게 되었냐고, 뭐가 좋으냐고.’
담당간호사님은 특별히 어떤 말씀을 하신 게 아니라, 대신 숭실OB합창단 카세트 테이프를 선물하시면서 한번 들어보라고 하셨다. 숭실OB합창단 노래는 아주 아름다운 화음의 남성합창단이었는데, 대부분 성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카세트 테이프였다. 특별한 메시지는 없었지만, 병원에서 따로 할 일도 없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숭실OB 테이프를 듣게 되었고, 이걸 들으며, 정우는 왠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정우는 담당 간호사님이 압구정 교회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이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였다.
1년 후 다시 치뤄진 연합고사를 마치고 들어간,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이 정우에게는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후배들과 공부하는 자신이 패배자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를 너무나 진저리 나게 미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힘들 때마다 정우는 방에 들어가, 숭실OB 테이프를 들었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마음을 달랬다.
결국 정우는 고1이 마쳐갈 무렵, 간신히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이 때부터 압구정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정우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함께 나가게 되었다.
정우네 집에 방문하신 교회 전도사님이 신기를 소개시켜 주셨다.
교회 전도사님은 신기 부모님 지역을 담당하신 적이 있는데, 신기가 고등부에 잘 다니고 학년도 정우와 같아서, 신기를 소개해 주신 것이었다. 그러나, 신기에게 정우가 1년 늦게 고등학교를 들어왔다는 사실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신기는 정우가 자기보다 한살 위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정우도 주의 크신 은혜를 수없이 들었다.
주의 크신 은혜로써 구원을 받았네
주여 다시 우리들을 버리지 마소서
내 죄를 위하여 영 죽을 우리를
주의 크신 그 은혜로 다시 삶을 얻었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정우는 이렇게 들렸다.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제가 어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저는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고 있어요.
정우는 오늘 진영이와 주의 크신 은혜를 연습하기로 한 건 너무나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살 어린 진영이지만, 왠지 진영이와는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교회에 온 후 처음으로 친구와 동생들이 함께 생긴 오늘이, 정우는 너무나 기뻤고 중창단이 왠지 가족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