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수련회 최악의 조건
진영이에겐 대학부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성가대에 가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대학부라는 건 진영이에게 옵션일 뿐이지 반드시 가야 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정인이가 하루는 진영이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진영아, 다가올 2월에 대학부에서 겨울수련회를 가는데, 금식수련회를 한데, 대입 100일 기도회를 하면서, 우리 엄마가 신앙을 갖게 됐어. 정말 너무너무 신기해. 진영이 너도 기도하는 것 좋아하잖아. 우리 같이 겨울수련회 같이 가자.”
정인이는 Y대 음대 작곡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3 1년간 새로운 피아노 레슨 교수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노력했지만, 피아노 실력이 결국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대학도 낮추고 전공도 피아노과가 아닌 작곡과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인이 부모님은 이제 정인이가 교회에 나가는 걸 말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정인이 어머니 이인정 여사는 100일 기도회 이후 교회에 열심히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정인이 아버지 최영진 씨도 한 달에 한 번은 아내 이인정 여사를 따라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최영진 씨가 교회에 나오는 날은 신기 부모님이 점심 식사도 함께 하고 차도 같이 마시면서, 정인이 아버지를 어떻게든 다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려고 애를 쓰셨다.
정인이는 교회에 다시 나온 첫날 곧장 대학부로 향했다.
정인이는 대학부 예배 시간에 가끔 피아노 반주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성중창단 멤버들의 눈에 들었다. 정인이를 눈여겨본 건 중창단장 3학년 묵수백이라는 S대 법대생이었다. 그가 정인이에게 남성중창단 반주자로 와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고, 정인이는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정인이는 고등부 때 할 수 없었던, 중창단 반주자의 아쉬움을 대학부에 와서야 비로소 채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멋진 오빠들이 있는 남성중창단이 너무 좋았다.
좋은 대학, 멋진 학과를 다니는 대학생 오빠들은 아리따운 정인이를 마치 공주님 대하듯 떠 받들어 주었고, 특히 3학년 묵수백 오빠가 가장 젠틀하고, 정인이에게 지극정성이었다.
한편, 진영이의 복사중창단은 이들과 별개로 움직였다.
어차피 진영이와 8명의 멤버들은 노래가 좋고, 마음이 맞아서 복사중창단을 하는 것이지 고등부, 청년부, 대학부 같은 어느 단체에 소속한 복사중창단이 아니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고2에서 고3이 될 자유와 광웅이를 포함해서 8명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중창단이 꼭 필요할까? 하는 생각마저 진영이는 하고 있었다.
중창단 말고도 다른 것이라도 사실 상관없었다.
진영이와 7명의 멤버들은 노래 연습을 쉬는 시간마다 농구를 즐겼는데, 8명이 농구팀을 만들어도 좋았고, 책도 다들 좋아해서, 독서클럽을 만들어도 좋았다.
신기, 자유, 진영이, 광웅이, 정우, 정태, 인수, 원석이
이들 8명이 하는 무엇, 그것이 지금으로선 복사중창단일 뿐이었다.
정인이는 진영이를 이미 대학부 겨울수련회에 등록한 이후였다.
정인이는 자기 회비와 함께, 진영이의 회비도 이미 낸 상태였다.
미리 회비를 내면 조금 할인되는 게 있었는데, 정인이는 그 혜택을 이용했다. 결국 진영이는 2월 초에 있는 겨울수련회에 정인이와 함께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천마산 겨울수련회에서 얼어 죽을 뻔했던 걸 잊지 못하는 진영이에게,
금식하는,
즉, 쫄쫄 굶는
겨울수련회…
선뜻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 이들 대학부 일당들은 그 중요한 필수물품...
버너, 브루스타, 모기향 등을 모두 팽개친 채...
히말라야를 등정하려는 거나 다름없었다.
쫄쫄 굶으면서....
정인이가 미리 등록했다는 걸 알고 나서, 진영이는 정말 정말 할 수없이 가기로 한 것이었다.
금식수련회라서 회비가 싸다고 정인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는데, 진영이는 하마터면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뻔했다.
‘너 정말 죽고 싶냐?’
천마산 겨울수련회를 경험하지 않은 정인이는 너무나 아이같이 천진난만해 보였다.
오랜 가난으로 다져진 진영이의 내장들에게 금식 따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2박’이었다.
1박 2일 천마산 겨울수련회에서 간신히 부활한 진영이로서는 2박 3일은 그야말로...
‘지옥행 하이웨이’
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인이와 함께 뒤엉켜 얼어 죽는다면,
그건 뭐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괜찮은 죽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기까지 했다.
그게 유일한, 이 말도 안 되는 금식겨울수련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겨울수련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정인이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한없이 즐거워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반면,
옆에 앉은 진영이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두터운 잠퍼에 내복 두 겹과 바지 두 장, 양말 두 겹, 두꺼운 장갑을 겹쳐 입고 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온기를 최대한 보존하고 있었다.
결국 살려면, 37.5도 이상의 체온이라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얼어 죽을 놈들’
‘배고파 얼어 죽을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