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이라는 목표

예상 밖의 선택, 예상 밖의 수석

by 보스턴임박사

합격자 발표 하루 전날


K대 한의대 발표를 하루 남긴 전날 오후부터 임 박사는 갑자기 복통, 오한과 함께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른 체구이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께서 정성껏 지어주신 한약을 먹고 자란 덕분에 임 박사는 건강한 편이었다. 가끔 잔병치레는 있었지만 이런 고열에 복통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임 박사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가상현실 세계에 빠진 것 같기도 한 어떤 이상한 환상 가운데 누워있게 되었다고 한다.

K대 합격자 발표장이 그의 눈앞에 보이고 거기에 임 박사의 이름이 없는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임 박사를 쳐다보고 조롱하며 손가락질하고 '그럼 그렇지 꼴좋다.'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그런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임 박사는 그 순간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고 한다. 이러다가 갑자기 죽는 거 아닌가?

아니면 정신마저 미쳐 버리는 게 아닐까?

이미 미친 건 아닐까?

그날 밤 아무것도 할 수 없으셨던 어머니는 임 박사가 평소에 좋아하던 초코파이를 사러 가신다고 밖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로는 어머니는 사실 몸져서 헛소리를 하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우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도로 1년간 고3 수험생활을 제대로 할 수 조차 없었던 그 아들, 이제까지 기도의 힘과 주위에서 함께 기도해 주시던 기도 동역자들의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고등학교 육성회비도 겨우겨우 해결하고 여기까지 간신히 왔는데,


이미 끝난 걸 아셨단다.


사실 발표가 있기 전 일요일, 같은 교회에 다니는 K대 한의대 교수님을 통해 임 박사가 불합격한 걸 이미 들으셔서 알고 계신 상태였다고 한다.


'다, 끝났다!'


부모님은 이미 아셨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대학진학의 희망 - 이미 끝난 그것 - 을 붙들고 마지막으로 사투를 버리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머니로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고 하염없이 눈물만 나는데 그걸 차마 아들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으셨단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와 동네와 놀이터와 가게 주변을 계속 서성이며 울면서 걸으셨단다. 언제까지고... 그러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단다.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아무런 답이 없던 그날 밤.

임 박사는 가장 좋아하던 초코파이는 물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잘 수 없었고 밤새 뒤척이며 가장 긴긴밤을 그렇게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대학'이라는 허망한 꿈을 서서히 놓아 보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처럼...


합격자 발표를 보기 위해 아버지와 K대로 향했다.


새벽 동이 틀 즈음에야 임 박사는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은 전날 밤보다는 왠지 기분이 낫더란다.

포기였던 것 같단다.


임 박사는 한의대 발표장으로 향하고

아버지는 화학과 발표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떨어졌다.’


임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단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생각했다고...

그때... 저쪽에서 아버지의 흥분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여기 화학과에 합격했다. 합격했어! 축하한다! 축하해! 정말 고생했다! 고생했어!”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란다.

이렇게 해서 임 박사는 K대 화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졸지에 세상에서 가장 관심이 없는 화학을 전공으로 맞게 되고선 도대체 어떻게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할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한다. 임 박사가 40일간 금식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도제목은 단 하나였다고 한다.


‘그냥 대학졸업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위해 굳이 기도를 해야 하냐고 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임 박사에게 대학졸업을 위한 4년은 끝도 없이 까마득해 보였다고 한다.


NIAID 수장이 된 파우치 박사, 에이즈와 싸우다.


1985년 말, 파우치 박사는 미국 NIH 산하 감염병 연구기관(NIAID) 수장이 됐다.
취임하자마자 파우치 박사는 바로 “에이즈 전담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내부 반응은 아주 좋지 않았다.

아직 정체도 모르는 이상한 바이러스를 위한 전담팀을 만든다는 걸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부반발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파우치 박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반발하는 사람들을 정리하며 에이즈 전담팀을 탄생시켰다.


파우치 박사는 이상한 바이러스라고 알려진 바이러스의 정체가

� 바로 HIV라는 걸 밝혀내고
� 면역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메커니즘도 연구하면서
� 동시에 폭증하는 에이즈 환자들을 대응하는 막중한 국가적 책무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파우치 박사의 이런 노력이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다.

� 에이즈 활동가들이 정부 대응이 너무 느리다면서

� 데모를 매일 열고

� 공개서한을 날리고

� “신약 승인이 왜 늦어지느냐”며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즈 활동가의 대표 주자가 래리 크레이머였는데,
사실상 파우치 입장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무시하거나 쫓아내거나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고립시키는 것이 보통인데, 파우치 박사는 달랐다.
� 래리 크레이머를 NIAID 연구소로 직접 초대했고

� 그에게 지금까지 밝혀진 에이즈에 대한 과학적인 결과를 일일이 설명했으며
� FDA 신약승인 절차가 왜 오래 걸리는지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성실히 설명했다.
� 뿐만 아니라 “우리도 답답하다”는 걸 투명하게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적이었던 래리 크레이머는 대화 상대로 변해갔고 나중에는 파우치 박사와 존중하는 파트너이자 최고의 후원자로 바뀌었다.

결국 래리 크레이머는
� 파우치 박사의 공식 지지자가 되었다.

파우치 박사는 동시에

레이건 행정부 백악관 핵심 자문으로 일하면서

에이즈 연구비가 증액되도록 힘쓰며

에이즈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신약 승인 절차 자체를 개선하는 새로운 룰의 개편까지 추진했다.

나중에 파우치는 이 시기를 이렇게 말했다.

� “환자는 폭증하고, 죽음은 멈추지 않던 시절”
�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암흑기(dark age)**였다고.


금식기도 후


금식기도를 마치고 2학년 형이 점심을 사 주어 같이 먹게 되었다고 한다.

임 박사가 가난하게 등록금 걱정을 하는 걸 아는 형이 KAIST에 대해 말해 주었다고 한다.

그곳은 국비장학금으로 졸업 때까지 무료이며, 모든 학생들에게 매월 얼마씩 생활비도 대어 주는 특수 대학원이라고. 그리고 입학 후 졸업하고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3년만 일하면 군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고. 그래서 유학준비하는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했다.

KAIST 화학과에는 매년 30명 조금 넘게 뽑는데, K대학교에서는 임 박사의 6년 선배가 처음으로 KAIST에 들어갔고 그 이후부터 매년 1-2명씩 꾸준히 합격을 한다고.


‘KAIST? 군대가 해결되고 등록금이 무료이고 생활비로 돈도 주며 조기박사로 4년이면 박사를 받을 수 있다니…’


돈을 벌면서 3년이면 군대가 해결된다는 말에 임 박사는 귀가 번쩍 뜨였다고 한다. 게다가 무료에 생활비를 준다면 이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단다.


형이 K대에서 처음으로 KAIST에 들어갔다는 이태성 형을 소개해 주었다.


이태성 형은 조기박사로 들어가서, 내년이면 박사학위 과정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이태성 형은 고작 24살이었다. 내년이면 겨우 25살에 박사가 되는 것이다.

‘이게 말이 돼?’라고 계산 빠른 임 박사는 속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태성 형은 공부하는 사람 같지 않게 무슨 스님 같은 인상이었는데, 임 박사의 이 말에 이태성 형은 웃으며 "난 교회 매주 다니는 크리스천"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교회에 다닌다는 말에 임 박사는 이태성 형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비슷한 점이 많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전액장학금을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2학년 형으로부터 유기화학을 미리 공부해 두면 좋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임 박사는 2학년 때 교재를 구입했다고 한다. 1200 페이지로 글씨가 아주 작고 중간중간 화학기호가 있었는데, 가끔 그림도 있었다. 유기화학책을 보고 임 박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영어로 쓰인 원서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임 박사는 영어를 특히 잘하고 좋아했다. 왠지 영어는 임 박사에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만큼 영어에 자신이 있었다고.

일반 화학 교재는 뭔가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라면 이 원서 유기화학책은 뭔가 정말 과학 교재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책을 산 그날부터 임 박사는 유기화학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뜻도 잘 모르지만 모르는 단어는 책의 공백에 연필로 써 놓는 방식으로 일단 책을 읽는데 집중했다고 한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면 유기화학을 먼저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유기화학책을 계속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읽는 건 어려웠다.


처음으로 읽게 된 영어 화학책은 임 박사에게 이상야릇한 신비감을 주더란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뭔지 타당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다만, 이제 1학년인 임 박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게 느껴졌고, 그 벽의 존재를 알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일주일간 열심히 수차례 읽었지만, 1200페이지 중 100페이지까지 갔다가 다시 처음부터 반복을 이미 두세 차례 한 상태였다고 한다. 100페이지 이상 읽어 나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 박사는 꾀를 내었단다. 유기화학책 스터디그룹을 만든 것이다. 친구들의 호응은 대단했단다. 1등부터 6등은 물론 8등, 9등도 모여서, 금세 9명의 스터디 그룹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들 유기화학의 중요성을 임 박사나 선배들로부터 듣게 되었고 그렇다면 자기도 하겠다고 몰려든 것이었다고.

임 박사가 스터디그룹을 만든 이유는 사실 1등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1학기에 1등을 한 친구를 이겨야 임 박사가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은 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세 차례 스터디그룹을 한 결과 시간낭비였다고. 이해를 못 하기는 그들도 매한가지였고 심지어 영어를 제일 잘하는 임 박사에게 오히려 묻더란다. 무슨 뜻인지.

그리고 임 박사가 보기에 지엽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에 대해 쓸데없이 오랫동안 토론을 하게 되어 2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할 거라면 혼자 책을 읽는 게 낫겠다고 임 박사는 생각했단다.


KAIST 이태성 형이 가르쳐 주기로 했다.


임 박사는 2학년 형에게 다시 SOS를 쳤다고 한다.

"형. 누구한테 유기화학 물어보면 좋겠는데."

형은 임 박사를 아꼈단다. 임 박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도와주려 애쓰는 너무 좋은 형이었다고. 문제는 형의 실력이었단다. 알고 보니 형은 2학년 중 성적이 중하위권이었고, 유기화학 성적도 바닥을 기는 중이었다고. 대신 형은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임 박사를 도와줄 최선책을. 그건 바로.


‘KAIST 형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형은 그날 바로 이태성 형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럼, 내가 할까? 카페에 모여서 내가 커피 사줄게. 일주일에 한 챕터씩 하면 16 챕터니까 16번 모이면 되겠는데? 어때?”


이렇게 해서 임 박사와 9명은 거짓말처럼, 그다음 주부터 16주 4개월을 이태성 형과 유기화학 스터디 모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카페 아마데우스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모였다.


임 박사의 계획은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한다. 이태성 형은 임 박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형이었다고 한다. 임 박사는 기대이상으로 이태성 형이 애써 주는 걸 눈물겹게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이태성 형은 학교 정문 앞 건물 2층에 밖이 환히 보이는 카페 아마데우스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카페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 음악을 트는 우아한 커피숍이었단다. 이곳에는 10명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 타원형의 긴 의자가 있었다고. 이태성 형을 중심으로 매주 같은 자리에 앉아 유기화학책을 배웠다고 한다.

이태성 형은 임 박사가 알고 싶어 하는 걸 정확히 짚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엽적인 건 과감히 버리셨다고. 그래서 임 박사로서는 정확한 줄기를 놓치지 않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화학이 그가 지금까지 알던 화학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고. 정확한 원리가 있었고 여기에 전자의 흐름이라는 중심개념이 있다는 걸 배웠단다. 이제 곧 조기박사로 25살에 박사학위를 받는 이태성 형의 전공이 바로 ‘유기화학’이었다고 한다. 이태성 형은 그러니까 유기화학의 ‘신’이었다.

이태성 형은 유기화학에서 중요한 건 전자의 흐름이라고 하셨고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책에 없는 부분까지 얹어서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임 박사는 드디어 빛을 보았다.


반면, 다른 친구들은 반대였던 모양하고 했다. 첫 주엔 9명이 모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원이 줄어들었다고. 쫓아가지 못한 것이다. 너무 완벽주의였던 게 문제였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태성 형이 그냥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따라만 오라고 했는데, 그들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라고. 오히려 앞서가고 싶어 했고, 앞서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뒤처졌다고. 그리고 결국 포기했단다.


마지막까지 3명이 남았다.


4개월간의 유기화학 강의는 결코 짧지 않았다고 한다. 임 박사는 책을 먼저 읽고 스터디에 나가는 식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고 한다. 화학기초는 부족했지만 영어기초는 탄탄했던 임 박사는 영어원서로 된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려는 그 의미를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저자는 새로운 사상을 넣어주려 애썼고, 임 박사는 그가 말하려는 그 새로운 사상과 학설이 매우 매우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유기화학은 확실히 다르네. 뭔가 깊이가 있어. 아직 완전히는 모르겠지만 포기만 하지 말자.’


처음에는 한 챕터를 앞서갔지만 뒤로 갈수록 임 박사의 영어책 읽기 속도는 탄력을 받고 가속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순간 2 챕터를 앞섰고 그다음 달에는 3 챕터를 앞섰다고 한다. 마지막 16주째가 되어갈 때, 임 박사는 이미 책 한 번을 완독하고 두 번째 읽기를 해서 300페이지를 넘어서고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세 사람이었다.


이제 임 박사는 3등은 할 수 있을 것 같더란다. 그럼 반액장학금은 따놓은 상황이었다고.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고. 2명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지독한 사람이다.


임 박사는 유기화학 첫 시험에서 1등을 했다.


임 박사는 2학년이 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고 한다. 도저히 편도 2시간 통학으로는 1등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단다. 자취방에 짐을 옮기는 날, 어머니가 우셨지만 임 박사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전액장학금을 받아야 했다고. 짐을 옮기고 며칠 후 유기화학시험을 쳤는데, 1주일 후 유기화학 강의에 10분 늦게 들어갔다고 한다.


전날 굶고 잤는데, 그만 늦잠을 잔 것이다.

뒤늦게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친구들이 “왔어요”했고, 유기화학 교수님은 임 박사를 잠깐 보시더니 “너구나?”이러시곤 다시 칠판에 화학기호를 쓰시더란다.

뭔가 했더니 임 박사가 첫 시험에 1등을 했다고 97점을 맞았다고.

90점대는 임 박사 혼자라고 하셨단다.

임 박사는 마침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덕분에, 임 박사는 드디어 전액장학금을 받았다고. 이 기세를 몰아, 2학년 2학기에도 기말고사에서 다시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전체 1등을 차지했다.


1학년, 2학년을 통틀어 임 박사는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목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야호! 3학년, 4학년은 더 이상 등록금 걱정하지 않고 학교만 나오면 된다.’

이런 임 박사의 두 뺨을 힘차게 휘갈기듯, 삼원장학금은 임 박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교수님들이 삼원장학금을 대학원생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태성 형부터 6년째 가장 좋은 학생들을 KAIST에 보내게 된 화학과 교수님들은 대학원생을 KAIST에 빼앗겼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학부생 1등에게 삼원장학금을 주면, 어차피 KAIST에 갈 텐데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그게 이유였고, 임 박사는 그 첫 번째 피해자이자 마지막 피해자가 되었다고 한다.

어디 말할 데도 없었고, 분풀이할 곳도 없이 2년 더 ㅈㄴㄱ공부해야 할 따름이었다고.


그러던 중,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4학년 중 임 박사가 그토록 받고 싶어 했던 그 삼원장학금을 받고 있는 4학년 1등,

홍수재 형이 KAIST 시험에서 떨어졌단다.

이게 임 박사에게 아주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모두들 홍수재 형은 3학년 때 이미 공부가 끝났다고 했단다.

이제까지 이런 실력을 가진 선배가 없다고.

이태성 형보다도 더 낫다는 게 모두의 평가였다고 한다.

임 박사도 당연히 그 형이 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홍수재 형이 떨어졌다.


임 박사는 결국 자취를 시작했다.


작은 자취방에 룸메이트를 구하고 자취비를 절반으로 나누고, 아침은 굻다시피 하기로 하고 드디어 자취를 결정했다고 한다. KAIST 시험이 2년밖에 남지 않았고, 4학년 그 공부 제일 잘하는 형, 홍수재 형이 떨어진 이 마당에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은 말도 안 된다는 게 임 박사의 결론이었다고 한다.

원래 삼원장학금을 받게 되면, 3, 4학년 2년간 숨 좀 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안되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2학년말에 그는 K대학 정문 앞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룸메이트는 바로 홍수재 형이었다고 한다.

홍수재 형이 KAIST 재수를 한다고 해서, 같이 살기로 했다고.

배울 게 많은 형이 아닌가?


임 박사는 3학년 1년간, 2년 선배인 홍수재 형으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홍수재 형은 자신이 뭐가 문제였는지를 잘 아는 형이었고, 아주 솔직한 형이었다고 한다. 홍수재 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자만했어. 3학년 때, KAIST 시험공부가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 4학년은 그냥 슬슬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어. 3학년 때까지 공부한 걸 4학년때엔 복습만 했는데, 그게 문제였어.”


임 박사는 홍수재 형을 통해 인생에 대해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홍수재 형은 아주 깔끔한 형이어서 임 박사에게 잔소리가 심했지만, 스트레스는 어차피 홍수재 형이 받을 뿐, 임 박사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고.

아휴 더러워.


다음 해, 홍수재 형은 다시 KAIST 입학시험에 낙방했다고 한다.

결국 홍수재형은 학교를 떠나 다른 대학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홍수재 형이 사라진 건 임 박사의 룸메이트가 없어졌다는 말이고, 결국 자취를 그만두어야 했다고 한다.

K대 법대생들이 사법고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대학 기숙사가 있었는데, 자리가 좀 남아서 각 학과 4학년 수석은 들어갈 수 있고, 가격도 아주 착했다고 한다.


4학년 수석으로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다.


임 박사가 화학과의 4학년 수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KAIST 입학시험이 끝난 11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까지 4개월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4개월이라고 해도 길바닥에 매일 4시간씩 헌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 이 기간 동안 임 박사는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빌붙어, 메뚜기를 뛰며 살았다고 한다.

도서관이 시작하는 6시에 나갔다가 도서관이 끝나는 10시에 돌아와서, 나머지 7시간 여를 안면몰수하고 친구들에게 철저히, 아니 처절히 기생했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들이 너그러웠다고 한다. 너무 고마웠다고.

이렇게 해서 힘든 겨울을 보내고 봄이 찾아오자, 4학년 3월 첫 주에 임 박사는 드디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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