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부자 엄마의 단벌(?) 출근기
1.
늘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번 주는 평소보다 조금 더 바쁘다. 팀원 하나가 결혼 휴가 중이라 업무가 나에게 좀 더 가중되기도 했고, 때를 맞춰 남편 회사도 바빠서 아침 등원이 내 차지가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회사 대표님의 아이디어가 폭발하셔서 디데이가 촉박한 기획서도 열심히 쓰고 있다. 주말이 가까워올수록 너덜너덜해진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번 주는 이미 수요일부터 너덜너덜했으니 뭐.
2.
그런 이미 진작부터 너덜너덜해진 상태의 나에게 어제 랄라는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매일 같은 옷만 입어? 엄마 옷 많잖아"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아직은 너보다 옷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 많고 예쁜 옷들 옷장에서도 못 꺼내는 요즘의 일상. 아침에 눈뜨면 정신없이 씻고 머리 말리고 청바지 지퍼 올리면서 가스불 켜고 양말도 신으면서 랄라 목소리에 답하고 그 와중에 아침도 차리고 무려 아침도 먹는다. (아침을 40년째 먹고 있는 1인입니다 -_-)
3.
사실 나는 옷을 무척 좋아한다. 가방도 신발도 액세서리도 아닌 그저 화려하고 안정된 패턴의 옷가지나 패브릭 류를 좋아해서 예전에는 입겠다는 의지와 무관하게 우선 그냥 예뻐서 산 원피스가 정말 10 상자는 되었었다. 대학 시절 하필이면 옷가게 많기로 유명한 게다가 예쁜 옷이 넘쳐나는 이대가 가까웠던 탓에 틈만 나면 학교 친구들과 쪼르르 이대 뒷골목을 누비며 한 장 두장 옷을 사 날랐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남들은 다 오프라인으로 옷 사던 그 시절부터 (그러니까 한 15년 전이네요?) 인터넷 쇼핑은 물론 해외 직구까지 해대던 나였다. 회사 사람들이나 친구들은 대체 이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거냐며, 집에서 혹시 만드는 거냐는 질문도 곧잘 했고 사실 지금도 종종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 그런 내가 딸내미에게 옷 좀 갈아입으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출산휴가 연장하러 회사에 가면서도 어깨 패드 들어간 미니원피스를 입고 갔던 그 아줌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4.
아이를 낳고 키워가며 우선 삭아가는 외형 탓에 뭐를 입어도 전처럼 이쁘지도 않고 예쁜 옷을 사도 입고 갈 자리도 없고 무엇보다 옷을 골라 입을 시간도 없다. 게다가 옷 좀 사야지 생각을 하고 나면 왜 우리 집 화장지와 키친타월은 때마침 떨어지고, 치약도 떨어지고 쌀도 떨어지고. 자주도 돌아오는 생필품 쇼핑에 진작에 지쳐 내 옷을 고르는 행위는 사치에 가까울 때도 종종 있더라. 작년엔 정말 옷에 관심 없는 우리 남편이 보기에도 내가 심해 보였는지 출근도 하는데 옷 좀 사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뭐. (물론 그 코멘트한 걸 후회할 정도로 그 후에 신명 나게 질러주었지만)
5.
살 수 있다면 옷보다는 시간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 (그렇다고 옷을 안 사는 건 결코 아닙니다만) 그래도 기획서가 끝나는 다음 주부터는 옷도 좀 예쁘게 입고, 우리 랄라 눈 즐겁도록 노력해줘야지. 안 입던 옷 꺼내 입을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엄마 오늘 정말 예쁘다. 이 옷 나줘" 외쳐대는 우리 꼬마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길. (랄라는 현재 장래 희망이 디자이너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영양제를 좀 더 구매해야 할 것만 같다. :)
+
그래도 옷 좀 입는 엄마였어, 랄라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