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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Nov 10. 2021

팔각모 사나이와 인생 물회

여러모로 인생 물회 이야기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느냐만큼 '그날 내 감정이 어땠는가?' 역시 그 음식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날 그곳에서 먹었던 물 회 또한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는 맛있는 추억이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디쓴 추억으로 깊게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끝방이(우리 부부와 함께 사는 필자의 막내 남동생)는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에 접어들자 느닷없이 우리에게 입대 '통보'를 해왔다.

그것도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신청했다고 했다.

이렇게 큰 일을 혼자서 결정하다니. 가더라도 1학년이나 끝마치고 가던지, 좀 평범하게 살 수는 없느냐고. 왜 하필 그 힘들다는 해병대를 가냐고 따져 물었더니 녀석은 기왕 가야 할 거 차라리 빨리 다녀오고 싶은데 시기상 해병대만 모집을 하고 있더라며, 한 번 가는 군대 제대로 군 생활을 마치고 오고 싶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군생활이 도대체 뭔데?


종종 똘끼 충만한 언행으로 식구들 사이에서도 돌아이라고 불리고는 했지만, 군대까지 이런 식으로 입대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스무 살. 이제 갓 어른 흉내나 내는 꼬맹이 녀석이 군대에 간다고 하니, 첫째 남동생을 공군에 입대시키고 돌아와 소리 내 펑펑 우시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남들 다 가는 군대야. 무슨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니고 거기도 사람 사는 덴데 뭘 그렇게 울어. 요즘 제대 금방이야."

저녁 내내 방 안을 적시던 엄마의 울음소리에 툴툴거리며 차가운 한마디를 던지던 나였지만, 정작 내가 비슷한 입장이 되고서야 왜 그리 서럽게 우셨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내색은 안 했지만 혹시 누나, 매형이랑 같이 사는 게 불편해서 도망치듯 군대로 가버리는 건 아닐하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건 절대 아니라고 목에 핏대 세우며 부인하던 녀석은 한 번에 체력 검정을 통과하더니 순식간에 입대날을 받아 들었다.

녀석은 신병 교육대 입소를 위해 포항으로 내려가기 전 날 까지도 상당히 의연해 보였다.

가는 길은 형부와 언니가 함께 동행해주었다.

당시 경상도에 계셨던 아버지는 당일에 교육대로 오시기로 했고, 끝방이와 나는 형부 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먼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전 날 까지도 혈색이 돌던 끝방이의 얼굴은 포항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그늘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농담에도 깔깔 웃지를 못하는 모습을 보자니 내심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입소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하루 일찍 내려간 우리는 영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한 호텔을 예약했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섰다.

여름과 가을 사이,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살갗에 와닿는 밤이었다.

밤늦도록 번쩍번쩍 활기 넘치던 영일대 광장을 지나쳐 포항의 대표 먹거리라는 물회 집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미리 알아 온 영일대 맛집이었다.

주문을 마치고 얼마 후, 얼굴만 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얇게 썰린 회와 각종 해산물이 담겨 서빙됐다.

빨갛게 물든 살얼음 낀 육수는 커다란 볼에 따로 담겨 나왔다.

식당 벽면에는 그릇에 육수를 붓고 소면을 넣어 먹은 다음 밥을 말아먹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었다.

내가 입대하는 것도 아닌데 덩달아 심해지던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그릇으로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심란함은 어디로 갔는지 딱 한 입 먹는 순간 '반짝' 하고 머릿속 전구가 켜졌다. 출출이 세포가 잠시 잃었던 식욕을 되찾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과일을 넣어 만들었다는 물회 육수는 달큰하게 시작해 새콤하게 톡 쏘더니 아주 약간의 매콤함을 남기고는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 뒤로 신선한 해산물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자니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남편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것을 잘 못 먹는 어린이 입맛인 언니 역시도 걱정과는 달리 너무 맛있다며 잘 먹는 모양새였다.

내가 아는 한, 분명히 그 물회는 끝방이의 취향을 저격하고도 남을 맛이었다.

고개를 돌려 녀석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과는 달리 녀석은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맛있냐는 누나들의 물음에는 그저 '맛있네.' 한마디 툭 던질 뿐이었다.

군 입대를 하루 앞둔 청년의 마음이 그런 것일까?

군대 간 남자 친구 한 번 기다려 본 적 없던 나는 그 좋아하던 음식도 무맛으로 만들어 버리며, 스무 살 청년의 넘치는 식욕마저 잠재워 버리는 군 입대의 위력을 그날 처음 눈앞에서 목격했다.


다음 날, 훈련소는 입구 저 멀리서부터 입대를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신병들과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조용한 시골 동네는 입소식에 맞춰 차량 행렬과 호루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새빨간 팔각모를 쓴 해병대 전우회분들과 장병들의 모습이 보이자 끝방이의 표정도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농담조차 던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넓은 흙바닥으로 이뤄진 운동장에서 잠시 동안 입소식이 진행됐다.

무시무시한 격파와 특공무술 따위의 활기 넘치는 공연을 펼치더니 이내 훈련병 대표라는 한 부모님의 편지 낭송이 이어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다 영상편지를 띄우며 눈물 코드를 잡는 모양새의 진부하고 신파적인 레퍼토리였지만, 잠시 뒤면 아들을 긴 시간 국가에 맡겨야 하는 부모님의 감성을 건드리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역시나 곳곳에서 훌쩍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중에 한 분이 우리 아버지셨고...

어쨌든 눈물의 시간이 지나자 신병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저마다 작별인사를 하고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들 사이로 끝방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섞여 들어갔다. 마치 더 이상 속세에 미련은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심 서운한 감정도 들었지만, 안쓰럽고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지 발길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새빨간 모자에 가려져 눈 조차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던 훈련 조교들이 벌써부터 호통을 치며 아이들을 줄 맞춰 세우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탈출하는 이 없었지만, 그들은 마치 목청 높여 화내는 게 중요한 임무인 듯 보였다. 그렇게 끝방이를 입소시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극성맞은 누나들의 눈물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날은 우리에게 엄마의 빈자리가 여실히 느껴지는 날이었다.


이후, 끝방이는 연평도로 자대 배치를 받아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했다.

이제는 제대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종종 해병대 반바지를 입고 집안을 활보하는 끝방이를 보고 있자니 그날 모레알 씹듯 물회를 삼키던 녀석은 어디로 갔나 싶기도 하다. 격세지감.

우습게도 그날 함께 식사했던 언니 부부와 나는 그날 밤 먹었던 물회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맛집이었던걸 보면 분명 그것은 군 입대가 불러온 미각 소실이었으리라.

기회가 된다면 남편과 끝방이를 데리고 다시 한번 그곳에 방문해 편한 마음으로 물회를 맛보고 싶다.

안 좋았던 그날의 기억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좋은 기억으로 다시 새겨 넣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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