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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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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Nov 19. 2021

김밥 좋아하세요?

생애 첫 김밥 도시락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탓에 국밥 한 그릇에도 만원 돈은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시대라지만, 무슨 무슨 프리미엄 김밥, 키토 김밥 같은 몸 값 비싼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그 돈으로 김밥 두세 줄은 사 먹을 수 있다.

물론, 김밥 한 줄에도 천원인 시절이 있었으니 김밥의 몸값도 상당히 높아진 거겠지만.

평소에 나는 건강한 집밥을 선호하고 또 그렇게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집밥만큼이나 외식이나 배달 음식도 좋아, 아니 사랑한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내 안의 지식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나듯, 음식 역시 다양하게 접해봐야 맛에 대한 견해도 넓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 은 핑계고 맛있는 음식은 사랑 아니던가?

사용 중인 배달 어플의 주문내역을 들여다보면 평소 내 식습관을 알 수가 있는데, 샐러드나 포케 같은 가벼운 식사만큼이나 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카테고리가 바로 '김밥'이었다.

기본 김밥, 참치 김밥, 불고기 김밥, 꼬마 김밥. 맛도 이름도 다양한 김밥들이 내 식도와 위를 거쳐갔다.

혼밥으로 먹기에도 적당하고, 바쁠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무엇보다 착한 가격에 맛까지 있다는 점이 김밥을 자주 찾게 한다.

어릴 적,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요샛말로 홈스쿨링을 했었는데 말이 좋아 홈스쿨링이지 학습지를 세 개씩이나 받아가며 유치원비만큼 내고도 매일 스티커 붙이고 색연필로 색칠 공부만 하다가 끝이 났다. 일찍이 온갖 학원을 섭렵하고 학교에 입학한 언니가 정규 학습 과정을 시시해하자 내린 부모님의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어찌 됐든 그런 연유로 학교 입학 전까지 매일 집에만 있던 나는, 가족들과 가는 나들이 말고는 '소풍길'에 올라 본 경험이 없었다.

하루는 언니가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새 옷 입고 신나게 등교하던 언니가 왜 그리도 부러웠는지 펑펑 울면서 나도 소풍 가고 싶다며 엄마에게 떼를 써댔다.

난감해하시던 엄마는 난데없이 거실 한가운데에 은박 돗자리를 넓게 펼치셨다. 그리고는 고운 보자기도 가져와 자리에 깔아 두시고귀여운 2단 도시락에 썰어 둔 김밥을 담아내셨다.

접시에 담겨 밥상으로 올라왔을 내 몫의 김밥이 예쁜 도시락통에 담겼다.

 "우리 막내딸도 소풍 왔네"

그것은 엄마가 생각해내신 '거실 소풍'이었다.

애초에 친구들과 어울려 본 기억이 없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금세 언제 울었냐는 듯 돗자리 위로 올라가 도시락을 펼쳐 두고는 신나게 김밥을 집어 먹었다.

거실로 떠난, 나만의 김밥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온 첫 소풍이었다.


김밥 가게에 가면 이모님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김 위에 속재료를 얹어 내고는 도로록 말아내 순식간에 김밥 한 줄을 만들어내신다. 전에는 한 줄 한 줄 칼로 빠르게 썰어 내셨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자동화가 되어 기계에 넣고 누르면 한 번에 일정한 크기로 잘려 나온 김밥이 포장까지 마쳐서 나온다. 이렇게 쉽게 김밥 한 줄이 완성되니 음식을 안 하는 사람들은 김밥이 간편한 음식인 줄 알겠지만, 사실 김밥 한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밥부터 질지 않게 고슬고슬하게 지어내야 한다.

김밥의 핵심 재료인 김은 너무 얇지 않은 것을 사용해야 옆구리가 잘 터지지 않는다. 기본 김밥의 속재료는 단무지, 햄, 맛살, 오이나 시금치, 달걀, 당근, 우엉 등이 있다.

각각의 재료가 데치거나 볶거나 구워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김밥 속재료가 준비되는데, 김 발에 김을 올리고 참기름과 깨, 소금 간을 마친 밥을 얇게 깐 다음 차례대로 속재료를 쌓아 올린다. 속재료가 줄 맞춰서 자리를 잡고 나면 김의 끝에서 부터 잘 잡아 돌돌 말아준다.

이때, 김 끝에 물을 살짝 바르거나 밥풀을 얇게 뭉게 붙여 주면 풀 역할을 해주어 말린 김이 풀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 과정도 속을 너무 게 넣으면 김이 남아돌 것이고, 속을 너무 많이 채워 넣으면 말 그대로 김밥 옆구리 터지는 꼴을 보게 된다. 이렇게 김밥 한 줄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김밥이 요리 초보자가 만들기에 결코 쉬운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밥은 역시 집에서 만든 '집 김밥'이 최고 Photo by.서보통


일례로, 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우리의 '식빵 언니' 김연경 선수가 '혼자 사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김밥 만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그녀는 애써 만든 김밥에 재료가 빠진 걸 깨닫고는 말아진 김밥 사이로 재료를 밀어 넣었다. '선 말이 후 끼움' 방식으로 만들어진 김밥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 그녀는 결국 김밥을 완성시켰다. 코트 위에서 카리스마 넘치던 그녀의 허당 미 넘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복잡한 조리과정을 줄인 광장 시장의 대표 먹거리 '마약 김밥' 이라던가, '매운 어묵 김밥' 같은 것들은 들어가는 재료가 적어 초보자도 따라 만들기 쉬운 편에 속한다. 나도 바쁜 아침 시간에는 종종 두어 가지의 재료만 넣고 만드는 김밥을 차려내는데, 주로 '두릅 장아찌를 넣은 훈제오리 김밥'을 만든다.

시어머니께서 내가 만든 두릅 장아찌를 좋아하셔서 해마다 담서 드리고 있는데, 장아찌를 만드는 일은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한 번 만들어 두면 일 년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효자 반찬이 된다.

통에서 건져낸 두릅 장아찌는 절임장을 꼬옥 짜내 준비하고, 훈제 오리는 팬에 볶아 키친타월에 올려 기름기를 제거한다. 여기에 달걀지단이나 생부추를 같이 곁들여 김밥을 말아내면 간편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이따끔 체중 관리를 할 때는 현미밥을 얇게 깔고 오이나 당근 같은 야채를 더 추가해서 먹기도 한다.

현미밥과 야채를 넣어  다이어트 식으로도 좋은 두릅장아찌 훈제오리 김밥 Photo by.서보통

이렇듯, 김밥은 안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이 된다.

얇은 김 한 장에 각기 다른 재료들이 한데 모여 고소하고 아삭하게, 풍부한 맛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 하모니는 학창 시절 소풍날 친구들과 나누었던 추억이 되기도 하고, 바쁜 날 나를 위한 한 줄의 위로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연인과의 나들이에 설레는 마음을 담아내고, 아이의 도시락에 부모님의 정성을 담아내는 음식.

어찌 보면 김밥이야말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애정 담긴 음식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번 주말에는 나도 김밥을 말아야겠다. 그를 위한 사랑과 애정을 듬뿍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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