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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Nov 22. 2021

열여덟 소녀들의 특별한 쫄면 한 그릇   

점심시간에 일으킨 작은 일탈

그러니까 그날은,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날이었다.

지루한 수업 시간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와 소풍을 즐기고 싶은 날씨.

적당한 햇살이 살갗을 간질이는,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초여름의 날씨는 열여덟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지금처럼 급식 의무화가 아니던 시절. 내가 다녔던 학교는 자율 급식제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원한다면 하루만 식권을 구입해서 먹을 수도 있었고, 한 달씩 정기 식권을 끊어두고 먹을 수도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하루치 식권을 구입해 급식을 먹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바깥 음식을 먹고 오기도 했다.

당시나는 조용한 학생은 아니었다. 리는 커다란 학교를 휘젓고 다니, 언제나 에너지가 넘나는 수다쟁이들이었다. 깔깔거리며 몰려다니기 좋아하고 학교 축제나 체육대회 때 응원단으로 앞에 나가 무대를 채우는 활동적인 학생이랄까?

가끔씩 우리는 학생 신분에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자잘한 사고를 쳐서 선생님의 뒷목을 잡게 했다. 예를 들면 학교 안 작은 연못에 있던 관상용 뗏목을 끌고 와서 타고 논다던가, 실습이나 교무실 호출이라는 거짓말로 수업 중인 친구를 몰래 빼내 가야금실에서 간식을 먹는다던가 하는 깜찍한 사고들을 종종 일으키고는 했었다.

그날은 그저 날씨가 좋아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날은 밖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는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의 길고 높은 언덕길 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교문에서 정면으로 잔디 깔린 분수대가 위치해 있었다. 분수대 우측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갈 법한 아스팔트 길이 학교 기숙사 건물까지 쭉 이어졌다. 좌측으로는 급식실과 강당이 자리 잡고 있는 구조였다.

기숙사를 지나쳐 작은 언덕을 한 번 더 올라가면 학교 본관이 나타나는데, 지방에 위치한 고등학교 치고도 규모가 꽤 크고 조경이 예쁘기로 소문난 학교였다.

그 예쁜 풍경과 날씨를 좀 누려보고자 우리는 분수대 잔디밭에 자리 잡았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곧 도착할 점심 식사를 기대하며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시간이 이어졌다. 잠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아저씨가 등장하셨다. 아저씨의 배달통에서 8인분이 넘는 쫄면과 만두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날은 쫄면이지!"

누군가의 외침으로 시작된 쫄면 파티였다. 주문한 곳은 이름난 프랜차이즈 만두 전문점이었다. 용돈 살이 하는 고등학생 신분에 쫄면과 만두는 꽤나 호사스러운 점심 메뉴였다.

아쉽지만 쫄면이척 하는 비빔국수로 대체해본다 Photo by.서보통

콩나물과 야채를 쫄깃한 면발과 어우러지게 잘 비빈 다음 한 입 가득 품으면 톡 쏘는 새콤함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먹을수록 자꾸자꾸 입맛을 돋웠다. 탄력 있는 노란 쫄면과 아삭한 오이, 콩나물의 환상 조합.

유달리 매콤했던 그 집 쫄면에는 만두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시원한 냉콩나물국을 같이 주는 이유도 벌게진 입안을 달래라고 주는듯했다. 쫄면을 먹느라 한 김 식은 고기만두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다 보면 불났던 입안이 조금 안정을 찾았다. 그럼 다시 쫄면을 호로록.

늘 교실이 떠나가라 떠들어대던 우리도 먹을 때만큼은 누가 시킨 듯이 조용했다. 그날도 말 한마디 없이 먹느라 바쁜 시간을 한참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로 싸해지는 기분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가 뒤를 덮쳤다.

포근한 계절에 맞지 않는 서늘한 한기가 전달됐다.

"얘들이 진짜! 빨리 먹고 교무실로 따라 올라와."

언제 나타나셨는지, 담임 선생님의 어이없다는듯한 표정과 말투가 뒤통수로 꽂혔다.

선생님이 자리를 떠나신 후 남은 쫄면과 만두는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먹던 건 마저 먹게 해 주셨으니.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짐작도 못한 채 서둘러 점심 식사를 마무리했다.

'똑똑똑'

이미 활짝 열려있던 교무실 문을 예의상 두세 번 두드리고 조심스레 선생님 자리로 다가갔다.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으며 발걸음에서부터 반성의 기미를 내비쳤다.

우르르 몰려 들어갈 수 없으니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이 대표로 선생님을 찾아갔다.

"누가 교문 앞에서 배달 음식 먹고 있으래? 내가 봤으니 망정이지 이것들아! 빨리 복도로 나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이런 비슷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다른 선생님한테 걸렸으면 무슨 창피였냐고 씩씩 거리시던 선생님의 말씀에 그나마 담임 선생님께 들킨 게 다행이구나 생각하며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네..."하고 눈치 보며 복도로 튕겨져 나왔다.

"무릎 꿇고 손 들으래"

쫄면 사건을 일으킨 주범들에게 내려진 처벌에 우리는 쪼르르 차례대로 무릎을 꿇고 앉아 쭈뼛쭈뼛 손을 들기 시작했다. 한창 꾸미기 좋아하고, 이성에 관심 많을 나이인 열여덟 소녀들은 팔이 저리고 무릎이 아픈 것보다 지나가는 남학생들이 쳐다볼까 싶은 창피함이 더 컸다.

"쫄면 하나 먹었다고 무릎까지 꿇을 일이냐고"

무리 중 누군가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사실 알고 보면 혼을 크게 났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긴 했다.

일단 우리 학교는 '학생 휴대폰 사용 금지'라는 교칙이 있어 휴대폰을 소유하더라도 수업 시작 전, 모두 걷어 선생님께 반납해야 하는 이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배달 음식을 시켰다는 건, 누군가 휴대폰을 내지 않고 몰래 '밀반입' 했다는 말이었으니 그 자체가 교칙을 어겼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학교 품위니 경관이니 하는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셨던 우아하신 교장 선생님 눈에라도 띄었다가는 무릎 꿇고 손 드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학교의 얼굴인 정문에서 뭣들 하는 짓이냐고, 배달 음식을 먹는 건 학생 신분에 벗어나는 행위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자상하셨던 담임 선생님 눈에 띈 게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손을 들고 있자 팔도 슬슬 저려오기 시작하고, 오가는 다른 선생님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부담스러웠다.

"어이구, 이것들 또 무슨 사고를 쳐서 이러고 있어?"

"손 똑바로 들어. 대충 들면 혼난다."

나란히 복도를 점령하고 앉아 벌 서고 있는 우리 모습이 마냥 밉지는 않다는 듯 저마다 놀리듯 한 마디씩 던지 지나가셨다. 머리를 톡 치면서 "아이고 이 사고뭉치들"하고 지나가는 선생님도 계셨다.

진짜 큰 사고를 쳤으면 복도에 있을게 아니라 학생부실에 있었을 테니, 우리는 누가 봐도 잔챙이 사고뭉치들이었던 거다. 그러니 앳된 소녀들이 받고 있는 '깜찍한 처벌'이 귀여워 보이셨을 만도 했다.

"들어가서 수업 준비하고, 다시는 그러지 마. 다음에는 이렇게 안 넘어갈 거야."

"네!!!!!!"

팔이 아프다느니, 창피해 죽겠다느니 하던 투덜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우렁차게 대답하며 교실이 있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요란한 쫄면을 먹었다. 쫄면 한 그릇에 무릎 꿇고 손까지 들고 있을 줄이야.

그래도 그 시절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했더랬다.

어리기에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들과 그 특권을 마음껏 누렸던 철부지 여학생들의 소소한 일탈.

그렇게 열여덟 소녀들의 '점심 일탈'은 스쳐가는 한 끼 식사가 될 뻔했던 순간을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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