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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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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Nov 24. 2021

그녀와 두부조림

얼마 전, 강남역에서 언니를 만났다. 우리는 그날 함께 점심을 먹고 독립 책방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

언니는 종종 내게 다음에 쓸 글의 주제를 묻고는 했는데, 그날 역시 "두부조림 써 두부조림!"이라 으레 본인의 소울푸드를 얘기했다.  뭐라고 쓰냐고 묻는 내게 "얼마 전, 강남역에서 언니를 만났다."하고 서두를 던졌다. 그렇다. 이 글의 첫 문장은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덧붙여, 내가 두부조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그건 두부조림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성적도 항상 상위권인 데다, 운동에 영 소질이 없던 나와는 반대로 육상이며 구기종목이며 종목을 가리지 않고 잘 해냈다. 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다.

'한 배를 빌려 태어났는데도 자매가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매끼리 취향도 성격도 닮은 점이 별로 없었다. '엄마 음식'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우리는 식성 조차 많이 달랐다.

언니는 유난히 가리는 음식도 많았다.

흰 우유나 요거트 같은 유제품부터 날 것, 비린 음식, 양고기, 향신료 맛이 강한 음식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언니의 입맛은 조금 까탈스러운 편이다. 그런 언니에게 평생에 걸쳐 총애를 듬뿍 받는 식재료가 있었으니, 바로'두부'다.

두부를 일주일에 5일은 먹는듯한데, 그럼에도 여전히 두부가 너무 좋다고 했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나는 아나운서나 발레리나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던 반면, 언니의 장래희망은 어린 내가 들어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두부 공장집 아들과 결혼하기'가 꿈이라고 말했다. 무슨 꿈이 저렇담? 늘 나보다 앞서 있고 똑똑한 줄 알았던 언니가 처음으로 헛똑똑이 같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세월과 함께 언니의 장래희망바뀌었다. 언젠가부터 조금 더 현실적인 직업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두부 사랑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고교 입학 후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던 언니는 요일 에 집 왔 다음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마저도 고3이 되자 집에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주말에도 대학 입시 준비로 바빠져서, 나는 학교에 가야만 언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주일에 한 번 귀한 딸내미가 집에 오는 날은 엄마의 주방도 분주해졌다.

집밥도 못 먹고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딸을 위해 특식을 준비하는 엄마였다.

언니가 집에 오면 덩달아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하굣길이 즐거웠다. 초반에는 이것저것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내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밥상에는 두부조림과 김치찌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언니가 돌아오는 요일 저녁 메뉴는 대부분 두부조림과 김치찌개였다. 뭐가 먹고 싶냐는 엄마의 물음에 항상 같은 대답을 했던 언니였다.

한동안은 언니가 엄마 고생하실까 봐 두부조림만 찾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일 좋아하는 음식 1순위가 두부조림이요, 2순위가 김치찌개였던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집에 와서 엄마 밥 먹는 언니의 '힐링 타임'을 방해할 수 없으니, 온 식구 모두 군말 없이 두부 파티에 동참했다.

냄비 바닥에 채 썬 양파를 깔고 두부를 얹어 낸 다음 물과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설탕, 후추, 참기름으로 양념해서 자작하게 졸여내는 두부조림은 짭조름하고 칼칼한 매력으로 밥도둑임에는 틀림없었다. 새우젓이나 멸치육수를 넣어 만들면 감칠맛까지 있으니, 매주 밥상 위에 올라와도 늘 접시 바닥을 드러내는 인기 반찬이었다.

말캉하게 졸여낸 두부조림 Photo by.서보통

사실, 두부조림이 언니에게 특별한 음식이 된 데는 아마 그것이 그녀가 먹은 엄마의 마지막 음식이라는 이유가 컸을 것이다. 엄마 생전에 만드셨던 마지막 음식.

몇 해 전 겨울, 우리는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식구들은 그날 밤이 고비일 거라는 의사의 말에 중환자실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 후로도 몇 달을 엄마는 끝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셨지만, 그날 밤만은 고비를 넘기셨다.

무슨 정신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모를 다음 날, 내가 병원에 남기로 하고 언니는 다른 식구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엄마의 소지품을 챙기고서 언니는 동생들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고 했다.

냉장고 속에는 엄마가 만들어 두신 밑반찬과 함께 언니가 좋아했던 두부조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언니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 듯이 빨갛게 졸여진 두부조림이 반찬통 가득 들어있었다고 했다.

언니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후 본가에 오는 일이 손에 꼽힐 정도로 많지 않았다. 왕복 여섯 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장거리에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며칠씩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던 터였다. 후에 취직을 하고는 얼굴을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항상 엄마 밥을 그리워했지만, 이런저런 현실이 언니의 발목을 잡았다.

내가 알기로도 그것은 그녀가 몇 달만에 먹는 집밥이었다. 엄마가 차려주신 따끈따끈한 집밥이 아닌 차갑게 식어버려 단단해진 두부조림을 직접 꺼내 차려 먹었을 언니.

그날 언니가 어떤 표정으로 밥을 먹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밥을 삼켰을지는 짐작이 간다.

전날 밤을 잘 넘긴 것에 대한 감사함과 안도감, 어떻게 될지 모를 앞날에 대한 불안감, 갑자기 닥친 시련에 대한 충격과 슬픔. 수많은 생각들이 뭉치고 버무려져 으깨진 두부처럼 짓이겨졌을 희망들.

훗날 언니는 당시에 더 자주 내려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더 엄마 밥을 먹었어야 했다며, 이제는 엄마가 해주셨던 두부조림의 맛이 기억 속에서 점점 흐려지고 있어 속상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속에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났다.


치열했던 이십 대를 보내느라 식어버린 두부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왔던 언니.

그런 언니 자상한 형부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더니 차츰 데워진 두부 마냥 부드럽고 말랑한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물론, 그녀 고유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그대로 유지한 채.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안정적인 삶이 주는 따뜻한 온도가 언니의 몸과 마음을 데워준 듯했다.

살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그녀야무지게 집을 가꾸고 어려운 요리도 척척 해내기 시작하더니 이제 좋아하는 두부조림쯤은 일도 아니란 듯이 뚝딱 해내는 살림꾼이 됐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두부조림을 제일 좋아하는 가장 친한 친구, 나의 언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입맛을 다시며 두부조림 만들어 먹을 궁리에 빠졌을 그녀가 상상된다.

끝으로, 부디 그녀가 이 글을 읽으며 울지 않고 미소 짓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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