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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Nov 09. 2022

추억 가득 담아, 소고기 유부초밥

학창 시 소풍날 아침이면 들뜬 마음에 날 밤새 잠도 설치고, 평소보다 준비도 일찍 마치고는 엄마 옆에 딱 붙어 앉아 소풍 도시락이 완성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 밖으로 소풍을 가는 것만큼이나, 엄마의 도시락을 먹는다는 사실이 특별한 날을 더 설레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매일 부족함 없이 집밥을 먹고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똑같은 음식도 밖에서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 부분 다들 동의하시죠?) 하물며 라면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 밖에서 먹는 게 몇 배는 더 맛있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안 그래도 동네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하셨던 엄마의 음식을 점심에도 그것도 밖에서 즐길 수 있으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김밥으로 도시락을 싸갔던 봄 소풍과는 달리, 가을 소풍에는 종종 김밥 대신 유부초밥을 가져가고는 했습니다. 봄에는 반나절 동안 쉽사리 상할 염려가 없었지만,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은 때에 따라 아직 여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고는 했거든요. 혹시나 자식들이 도시락 먹고 탈이 날까 싶었던 엄마는 김밥용 밥에 식초를 살짝 넣어 만드시거나, 배합초로 양념한 유부초밥을 싸주셨어요. 엄마의 지혜로움작은 도시락통 안에서도 빛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나리즈시로 불리는 유부초밥은 물기를 제거해 얇게 썰어낸 두부를 기름에 튀긴 간장설탕 등이 들어간 조림장에 조려 내고, 이렇게 완성된 유부 사이초를 넣어 양념한 밥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만드는 음식입니다. 날 생선을 올려 먹는 생선 초밥과 달리, 다른 재료가 올라가지 않아 도시락으로 먹기에 적합한 것이지요. 

담백하지만 몇 개 먹다 보면 물리기 쉬유부초밥을 싸가는 날엔 배추김치나 매콤한 진미채 무침을 함께 넣어 주셨는데, 이따금씩 날이 선선하다 싶은 때에는 유부초밥도 덜 물리고 더 맛있게. 조금 더 고급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어요. 

쉬림프 샐러드와 소고기 유부초밥, 상큼한 오렌지 주스로 차려낸 아침 식탁

밥에 배합초와 후레이크를 섞어 만든 심플한 유부초밥과는 다르게, 기와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가 맛과 영양면에서도 업그레이드된 소고기 유부초밥이 그것이었습니다.

여럿이 둘러앉아 우리 집 너희 집 서로 김밥 나눠가며 먹는 재미 역시 소풍날의 즐거움이었지만, 소고기 유부초밥을 싸가는 날에는 몰래 숨어 혼자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지요. 김밥 한 조각과 바꾸기에는 그 양도 적거니와 혼자 아껴 먹고 싶은 맛이었거든요. 물론, 마음과는 달리 결국 나눠 먹고는 아쉬움에 집으로 돌아와 한번 더 해달라며 떼를 쓰고는 했니다만.

소고기 유부초밥 만들기.

소고기 유부초밥을 만들 때에 동봉된 배합초를 함께 사용할 경우에는 불고기 볶음 정도의 적당한 간으로 맞춰 양념하면 되지만, 배합초를 넣지 않고 달달하고 담백하게 만는 날에는 간을 조금 더 강하게 맞춰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밥과 섞였을 때도 심심하지 않고 맛있는 유부초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양념해둔 고기를 넣고 볶다가 고기가 반 정도 익으면 잘게 다져둔 야채를 단단한 순으로 넣어 센 불에서 볶아니다. 그런 다음 밥에 깨와 소고기 야채 볶음을 넣고 섞어서 물기 짜낸 유부 속에 채워 넣으면 되는 레벨 1의 쉬운 요이지요. 

만들기 어렵지 않은 덕분에, 제게는 엄마표 유부초밥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움 가득한 음식이기도 니다.

저는 어째서 김밥과 유부초밥을 먹는 날이면 한결같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걸까요? 나이만 들었다 뿐이지, 여전히 철부지 어린 시절이 그리운가 봅니다. 비록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엄마 손맛을 떠올리며 먹는 유부초밥 한 점으로 조금이나마 그리움을 달래 봅니다.

소풍날이 아니어도 맛있는 소고기 유부초밥
소고기 유부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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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진 소고기에 다진 마늘, 간장, 설탕, 올리고당, 청주, 참기름, 후추를 넣어 양념한다.
2. 당근, 양파, 애호박, 표고버섯은 잘게 다진다.
3. 기름 두른 팬에 (1)의 고기를 넣어 볶다가 반쯤 익으면 당근, 애호박, 양파, 표고 순으로 넣어 타지 않게 볶는다.
4. 볼에 밥을 퍼서 담고, 완성된 소고기 야채볶음과 깨를 넣어 섞는다. (유부 패키지에 동봉된 배합초와 후리카케를 함께 사용해도 좋다. 이때는 깨를 생략한다.)
5. 유부의 물기를 꾹 짜낸 다음 틈새를 벌려 (4)의 밥을 채워 넣는다.
6. 그릇에 예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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