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중꺾그마 -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by 보통인

2025년 4월에 구매해 뒀던 도서관 정기회원권을 끊어놓고 10월이 다 돼서야 방문하게 되었다. 꾸역꾸역 보슬비 내리는 서울의 8차선 도로를 건너 커피 한 잔 들고 들어왔는데 웬걸, 너무 좋다. 지난 몇 개월을 그냥 집에서 허송세월 보낸 시간이 아까울 만큼. 도서관은 언제나 와도 매력이 넘친다. 그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노트북 클릭이나 타자소리, 그리고 소소하게 책을 넘기는 소리. 간간히 방문해 보는 사설 도서관은 은은한 클래식을 음악을 틀어주시고 가는데 괜스레 정적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막상 도서관에 자리 잡고 책을 읽거나 딴 길로 세면서 작업하다 보면 나름의 군중 속 고요 안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그냥 하다 보면 괜히 열심히 사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러다 보면 진짜 열심히 살게 된다고.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 내 작가 서랍을 뒤져보니 글을 끄적인 지도 약 1년 반이 되었다. 사람이 간사하다고 해야 할까 - 6개월 내내 놀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글이나 적어보면서 기록이라도 남기자 했던 마음이 그 이상을 가지 못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단칼에 끊겨버렸다. 되돌아볼 수 있게 근황을 적어보자면 그 사이에 취업을 2번 했고, 머리는 가벼워지며 몸은 무거워졌다.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았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걸 놓아버린 느낌에 하루하루가 조금은 괴롭기도 하고, 그래도 뭔가 하나는 해냈다는 걸 위안 삼아 시간과 함께 흘러왔다. 작년에는 폭풍같이 휘몰아쳤던 여름을 보냈었다면 올해는 정말 영끌하여 의욕을 끌어내 살아가야 했던 여름이었던 것 같다. 일은 조용하니 좀이 쑤시고, 그렇다고 뭔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진행하기에는 회사 내 신입이라는 마음이라 조심스러웠으며 재택근무만 하는 사정이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집에서 나오지 않는 연속의 날들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러다 어느덧 공기의 온도가 바뀌고, 바닥을 보였던 의욕이 꿈틀꿈틀거리며 새어 나오기 시작한 건 나름의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서였다.


되돌아보면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인생의 변환점을 맞이해 '앞으로는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아가야지'와 같은 깨달음도 없었고, 그렇다고 옆에서 누가 자극을 줘서 정신 차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냥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오늘은 아침 산책을 다시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가볍게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거나 오늘은 꼭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해야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그렇다. 중요한 건 그냥 하는 마음. 예전부터 밈처럼 유행하던 이 한마디가 오늘따라 유독 더 마음에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살아간다는 것에는 별 거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하다 보면 뭔가를 성취했으며, 그냥 하다보고 되돌아보면 먼 길을 돌아왔다는 걸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나처럼, 갑자기 꽂혀 그냥 몇 자 적다 보면 어느 한순간 나름의 잡담이 하나의 글이 완성되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사고방식이란!


분명 중꺾그마 - 중요한 건 꺾이지 않고 그냥 하는 마음 - 이 단순한 인생의 접근방식에는 아주 주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바로 꺾이지 않는 것! 화려하게 얘기하면 그렇지만 결국에는 오늘 이불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오늘 새삼 다시 되새기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도서관을 더 열심히 나와야겠다 하하.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아주아주 복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굉장히 단순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그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실부터 잡으면 되니까. 말이나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복잡하다.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잡념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차단할 수 있는 행동으로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닐까.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작이 되지 않을까.


아직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지만, 머리는 가벼워지고 몸은 무거워져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던 요즘. 도서관에 하루 발걸음 했다고 나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가족한테 가네 마네 투정 부리다가 결국 텅 빈 집에 오늘만큼은 혼자 있기 싫어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나왔는데 그래서 더 뿌듯하고 대견한 것 같다. 운동 갈 때는 그렇게 괴롭고 귀찮은데 막상 가서 열심히 땀 흘리고 몸 풀고 오면 개운하고 기분 좋은 원리와 마찬가지일까. 오늘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고 침대 속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소소한 누군가가 있다면 얘기하고 싶다 - 고민하지 말고 이불 밖으로, 방 밖으로, 집 밖으로 나와라! 세상은 생각보나 나에게 관심이 없으며, 나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고, 살아가는 것은 화려하지 않다고. 어쩌면 정말 단순하게 한 발 내딛음으로써 어제 봤던 세상이 조금은 다른 색채를 띄고 있을 수 있기에, 그 단순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은 나 혼자만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꼭.


오랜만에 도서관에 와서 센치해진.

오늘도 普通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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