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멀어지는 중입니다》1편
오랜만에 끄적였던 키보드 자판 소리에 기분이 좋아져 며칠 뒤에 조금 더 힘내서 몇 글자 적어보기로 했다. 시간과 에너지가 되면 꼭 기록해야지 했던 주제들을 무작위로 적어놓고 ChatGPT의 조언을 통해 나름의 순서와 주제를 정해 위워크 한구석에 자리 잡으니 괜히 나름 글쟁이가 된 기분이다. 당분간은 생각도 정리하고 내면도 다듬어볼 겸 옛날에 적어놨던 주제들을 먼저 다루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실제 작업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해나갈 작전을 세웠다. 그렇게 가볍지만 나름이 시작점을 가지고 손가락을 움직이니 오늘따라 경쾌하게 움직이게 되는 것 같다.
몇 십 개의 적어놨던 주제들 중, 특이하게도 첫 주자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가상의 시스템이 나에게 추천한 - 그러나 항상 고심하게 만드는 - 주제는 바로 존재감에 대한 것이다. 존재감이라고 얘기하면 조금 거창하지만 스스로가 느끼기에는 그만큼 자아를 구축해 나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만큼의 무게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애착하는 닉네임 ‘보통인’이나 지금 이 자리 서울 한복판에 앉아 있어도 여전히 이방인이라고 인식하고 살아가는 나는 분명 어딘가 균열을 일으킨 것 같은 나라는 존재로 인하는 것이 아닐까?
이실직고를 하자면 나는 국내와 해외를 한평생 오가며 살았던 사람이다. 태어나길 한국과는 6시간의 시차가 있는 멀고, 덥고 건조하지만 그만큼 나름의 에너지가 강했던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그 이후로도 대학교 졸업 때까지는 거진 3년에서 5년 주기로는 계속 이동을 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개인사가 가랑비의 옷 젖듯 퍼져나가지만 나를 알아보더라도 조용히 글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서울에 10년 이상 자리 잡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에 끼지 못하는 이방인과도 같은 느낌은 떨쳐내기 힘든 것 같다. 워낙 장기적으로 유목민과도 같은 생활을 해서 그런지 주기적으로 이동을 하며 자리 잡으면 적응하느라 어색했고, 막상 드디어 자리를 잡았더니 그 나름대로의 어색함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어렸을 적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꽤나 신기한 삶이긴 했다. 오히려 부모님이 가족 모두를 챙겨가며 이사하느라 고생을 가장 많이 하셨지만 같이 이동하는 아이들은 나름의 고생이 있다. 사귀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야 하고, 다른 구성의 학교 과정을 겪어야 하고, 다시 단골 구멍가게를 만들어야 하고, 놀이터도 찾아봐야 한다. 그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부끄러운 일도 겪고, 빵점짜리 시험지도 손에 쥐어보지만 또 다르게 대화가 안 통해서 왕따가 되기도 하고, 다르다는 좋은 핑계로 감자튀김을 맞으며 인종차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신기한 삶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뚜렷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은 몇 없지만 분명 그 모든 하루하루가 나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힘들었다는 기억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무수하게 기쁨만 가득한 날들로 가득 차진 않았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갔던 것이다.
가끔씩 생각의 흐름대로 노래를 찾아 듣는 경우가 있는데 항상 ‘이방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생각의 회로를 돌리다 보면 나에게는 항상 “Strangers Like Me”와 “Colors of the Wind”가 생각이 난다 (이 시대의 디즈니 작품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회상되는, 어린 나의 심금을 울렸던 작품들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간주해 줬으면 좋겠다.) 해외든, 국내든, 심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나에게 주는 가이드이자 위로였기 때문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만난다면 그들을 이해하는데 온 힘을 썼다면, 나와 같은 사람들과 마주 보게 되면 그들을 닮아가도록 노력했다. 내가 취한 사고방식이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얻은 게 하나 있다면 적응력 (또는 적응한 척!) 스킬이 아주아주 좋아졌다.
인생을 30년 이상 살아온 나로서는 이제 어느 정도 한 존재감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 숨어 사는 이방인이라는 스스로 찍어버린 낙인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옛날에는 너무도 싫어했던, 그러나 오늘은 조금은 예뻐해 줄 수 있게 된 … 각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씩 분명 있을 것이고,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조금 일찍 찾아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찾아가는 과정은 시기에 상관없이 그만큼 생각도 많아지고 즐거운 상념의 시간일 것이다.
오늘의 글을 보니... 너무 두서없이 적었지만 생각의 흐름대로 존재감을 어필했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오늘까지 나는 이방인으로써 살아가고 있다는 것.
괴로웠던 그 이름딱지가 조금은 좋아졌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도 普通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