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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일탈] 05-경영인 듯 경영 아닌 경영같은

*[방구석 5분혁신-안병민TV] 저자가 직접 하는 <경영일탈> 해부 영상

https://youtu.be/5GGSI2qnKXk


“유능한 직원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라. 리더가,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자유롭게 일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 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유능한 직원들이 떠날 수 있다. 이 때문에 리더는 회사를, 초등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집과 같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미있는 장난감도 많고 재미있는 놀이거리도 많았던, 모두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던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잭 웰치 전 GE CEO


작금의 창조경제 사회에서는 익숙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GE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귀를 의심하게 됩니다. 잭 웰치가 누구입니까? 직원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불도저식 경영’에 앞장섰던 경영자입니다. 엄청난 강도의 구조조정으로 ‘중성자탄’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실적 하위 10%의 직원들은 무자비하게 해고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 사업들은 과감하게 매각하거나 접었죠. 그런 그가 직원의 자유와 놀이를 말하다니, 이건 허를 찌르는 반전입니다. ‘철鐵의 경영’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仁의 경영’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셈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잭 웰치의 이런 극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일까요? 잭 웰치는 말합니다. GE에 있던 40년보다 GE 회장에서 물러나 경영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책을 쓰며 보낸 이후 10년 동안 비즈니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며 스스로의 변화를 인정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최첨단 IT 기술이 등장하면서 경영과 리더십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달라진 시대에 따라 많은 기업가들과 경영학자들이 ‘굿바이 잭 웰치’를 외치며 그의 과거 경영방식에 이별을 고하는 요즘, 그 또한 바뀐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경영자의 덕목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리도 일이다, 믿고 맡기다


과거 직장인 시절, 상명하복식의 조직문화에 넌덜머리를 냈던 여행박사 창업주 신창연은 ‘관리’라는 요소를 최소화했습니다. “관리하려고 이런저런 규정들을 만들어놓으니 내가 그렇게 못 하겠더라”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는 직원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했죠.


“관리라는 말을 싫어한다. 솔선수범 못 하겠더라. 그래서 남들에게 하라고도 안 한다. 내 몸뚱아리 하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내가 다른 사람을 관리한다는 게 말이 되나? 또 하나, 직원이 알아서 움직이게 하는 게 사업이지, 직원 관리하기 위해 사업하는 게 아니지 않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직원 관리를 하든 안 하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규칙이나 규정, 그거 다 누가 만든 건가? 강자들이 만든 룰이다. 약자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거다. 정치인이나 사장은 죽을 때까지 자자손손 해먹으면서도 약자들인 직원들에겐 정년停年을 강요한다. 자기네들은 잘 지키지도 않으면서 룰만 잔뜩 만들어놓고 직원들에게는 어기지 말라고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 신창연 여행박사 창업주


신창연 창업주가 군 제대 후 늦깎이로 대학을 마치고 처음 입사한 곳이 바로 여행사였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그가 까라면 까야 하는 당시의 권위주의 조직문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그는 회사 내 고문관이 되었고 그때의 기억은 여행박사 경영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작용했습니다. 회사는 군대가 아니라는 그의 생각 덕분에 여타의 회사에서 일상적인 많은 것들이 여행박사에는 없습니다.



그는 억지로 넥타이에 정장을 입어야 했던 예전 시절을 떠올리며 여행박사에 복장 규정을 아예 만들지도 않았고 출퇴근 시간도 자율성을 대폭 높였습니다. 전 직원이 함께 산을 오르는 따위의 극기 훈련 프로그램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형식적인 회의와 보고, 결재도 없애버렸을 뿐만 아니라 정년과 해고도 없죠. 범죄 수준의 몇 가지만 제외하면 여행박사 직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대신 모든 것들을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경영에 관한 모든 수치와 자금의 운영 내역까지 공개하였습니다. 회사의 수익과 지출은 물론 대표이사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까지도 공개합니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한 ‘누드 커뮤니케이션Nude Communication’을 했죠. 타율, 권위, 명령, 지시, 통제를 내려놓으니 그 자리에 자율, 자발, 열정, 창의, 개성, 공유가 들어섰습니다. 관리 비용이 줄어든 것도 가시적 성과지만 더 좋은 건 직원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넘쳐난다는 점입니다. 당근과 채찍 같은 외적 보상에 의한 동기가 아니라 자율에 의한 뜨거운 열정이 샘솟았습니다. 그러니 신창연 창업주가 며칠씩 사무실을 비워도 회사는 잘만 돌아갔습니다. 대표 눈치 보며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없어도 돌아간다? 그래서 불안한가요?


“목표는 누가, 왜 정한 것이며, 직원들은 왜 그걸 달성해야 하나? 그거 달성 못 한다고 직원들 해고하고, 그렇게 직원들 쥐어짜서 매출 더 많이 올리면 뭐 하나? 중요한 건 1등이나 매출 규모가 아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돈 많이 벌어 1등은 하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먹는 기업들이 즐비하다. 착취하는 1등 기업이 무슨 의미가 있나?” - 신창연 여행박사 창업주


귀를 의심케 하는 도발적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행박사에선 이런 파격이 상식이 됩니다. 채용만 해도 그렇습니다.여행박사는 학력이나 성적을 보지 않습니다. 고졸 직원도 수두룩합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며 채용도 여러 단계를 거쳐 아주 깐깐하게 진행하는 여타 기업들에 비해 여행박사의 채용은 다릅니다. 조금 부풀리자면 ‘막’ 뽑죠. 회사 초기에는 신창연 창업주가 직접 채용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직원 채용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잠깐의 면접으로는 그 사람의 실력이나 인성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죠.


“채용도 사업 초기에는 선착순으로 그냥 막 뽑았다. 직원이 40명 정도의 규모가 될 때까지는 내가 직접 면접을 봤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안 본다. 이유? 어차피 직접 부딪히면서 일하는 사람이 사장이 아닌 동료들이라면 같이 일할 동료가 면접을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잠깐의 면접으로는 실력이나 인성 좋은 사람을 골라내는 게 불가능하다 싶었다. 그럴 바에야 면접은 같이 일할 사람이 보게 하고, 나는 그 시간에 좀 더 나은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데 신경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뽑아도 회사 분위기가 개판이면 버티지 못할 것이고, 그냥 선착순으로 막 뽑아도 회사가 좋으면 잘하지 않을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봐도 채용에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 우리 회사에선 별론데 다른 회사 가면 펄펄 날아다니는 친구들도 많다. 회사와 궁합이 안 맞는 거다. 결론적으로 채용 단계에서 검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더라.” - 신창연 여행박사 창업주


그러니 ‘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사람을 뽑아 ‘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신창연 창업주의 생각입니다. 물론 ‘된 사람이 되는’ 것도 그 직원 하기 나름입니다. 이쯤 되니 여행박사의 파격적인 정책들이 대략 이해가 됩니다. 자연 생태계는 인위적 제도가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데 직원들의 무한자유는 왜 안 되는 걸까에 대한 대답들을 신창연 창업주는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직원을 평가와 판단의 ‘객체’가 아니라 자연 생태계의 ‘주체’로 본 것이죠.


절대적 권력은 부하를 지시만 따르는 기계로 만들고, 독단적 판단은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차단합니다. 그래서 신창연 창업주는 군림하지 않으며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은 리더가 혼자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폴로어Follower와 함께 빚어내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堯 임금의 덕이 매우 커 백성들이 말로 형용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표현할 때 입에 많이 오르내리던 말입니다. ‘왕이 누구인지, 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세상은 태평하고 백성들은 자유롭게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이것이 하늘을 닮은 요의 덕인 것입니다. 노자 또한 말했죠. ‘하지유지下知有之’라 하여 이상적인 지도자는 아랫사람들이 리더의 존재만을 알 뿐,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리더라 했습니다. 없는 게 있는 것보다 종종 더 낫죠. ㅋㅋ


경영인 듯 경영 아닌 경영 같은 경영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를 떠올려 보죠.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 안장을 잡아주지만 아이는 금세 넘어집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빠는 안장을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죠. 넘어지고 잡아주고, 결코 헤어나지 못하는 무한반복.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갑자기 아이가 말합니다. 혼자서 한번 해보겠다고. 말 그대로 고군분투.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보는 부모는 애가 타지만 그래도 진득하니 지켜봅니다. 그렇게 저 혼자 낑낑대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던 아이는 어느샌가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죠. 아이는 그렇게 자랍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물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건 가만히 기다려주기입니다. 아이가 살아갈 인생에서 중요한 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이나 낚싯대인 까닭입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부모가 계속 물고기를 잡아주면 아이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영원히 배울 수 없습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부모가 아이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이런 철학이 있으니 신창연 창업주의 경영관과 기업관 또한 독특합니다. 팀장급 이상을 투표로 뽑는 여행박사에서 대표 또한 예외가 아니죠. 2013년 10월 투표에서 신창연 창업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낙선했습니다.(팀장급 이상은 70% 득표인데 대표는 80%여야 한다고 공표. 2013년 10월 79.2% 득표로 낙선) 2000년 회사 설립 후 햇수로 15년 가까이 직접 이끌어온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룰은 룰. 그는 흔쾌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창업주가 대표이사로서 15년간 회사의 성장을 이끌다 투표에서 떨어져 물러난다? 파격을 넘어 충격이죠. 하지만 신창연 창업주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여행박사=대표이사 신창연’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면 그건 내가 가장 잘못한 일이고, 그게 사실이라면 여행박사의 새로운 도약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여행박사는 내가 만든 회사긴 하지만 내 회사는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행박사에서 신창연의 색깔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었으면 한다. 또 하나, 그 동안 팀장, 본부장 선거에서 낙선하여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직원들도‘사장도 투표에서 떨어질 수 있구나’하는 걸 알게 되면 조금은 위안이 될 거다. 만약 여행박사나 신창연의 몰락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신창연의 대표이사 낙선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부른다면 이는 그동안 내가 엄청 유능했다는 증거가 되므로 내게는 기쁜 소식이다.” - 신창연 여행박사 창업주


그는 역시 무심한 듯 시크했습니다.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죠. 창업주이자 대표이사로서 십여 년 넘게 회사를 이끌다 물러나는데 그래도 여행박사란 회사가 이러이러한 가치만큼은 계속 지켜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물었습니다. ‘도전’이나 ‘열정’류의 대답을 기대했던 필자에게 돌아온 답은 놀라왔습니다.


“내가 이제 물러나면 나는 그걸로 끝이다. 이제는 남은 사람들이 또 자기들의 그림을 그리면 되는 거다. 내가 괜히 뒤에서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거나 훈수를 두면 그게 여행박사 경영에 또 다른 성역聖域이나 족쇄가 된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며 가장 먼저 한 일이 사내 인트라넷 아이디를 없애버린 거다. 물러난 첫 해에 회사가 많이 흔들린다고 대표 복귀니 어쩌니 하는 말들이 들릴 때 한마디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나설 거면 나는 영원히 못 떠난다고. 품안에 있을 때나 자식이지 크고 나면 저마다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기업도 마찬가지다. 여행박사란 회사는 잠시 내 손안에 있었던 거지 궁극적으로 내 것이 아니다. 기업도 저 나름의 운명이 있는 거다.” - 신창연 여행박사 창업주


이게 웬 지리산 산신령 같은 이야기? 하지만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노자철학을 중심으로 일관되게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즉흥적인 쇼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제48장에서 도를 행한다 함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 즉 위도일손爲道日損이라 했습니다. 허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늘 이렇게 덜어내니 신창연 창업주는 물 흐르듯 자유롭고 거침이 없습니다. “사는 게 별거 있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있게 살면 행복”이라는 그가 참 부럽습니다.


위 글은 보통마케터 안병민의 저서 <경영일탈> 중 일부 입니다.

[출처] 경영인 듯 경영 아닌 경영 같은 경영_경영일탈 1  | 작성자 책 읽어주는 여자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여행박사 행복CEO의 '내 맘대로' 경영여행-물처럼 거침없는 그들만의 경영 이야기

[경영 일탈, 정답은 많다] (bit.ly/kyungil)

*마케팅의 본질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지금 다시 시작하는 마케팅 스터디

[보통마케터 안병민의 마케팅 리스타트](bit.ly/marketingrestart-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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