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해물탕집 사장님, ‘고객경험’을 팔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연재] 안병민의 숨은 경영 찾기

https://5booninno.bstage.in/contents/639849109f7b0812ca24838e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푸짐한 해물탕이 상에 올라왔습니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각종 해물들이 냄비에 가득합니다. 다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문어입니다. 사장님이 잘 손질한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와서는 냄비에 넣습니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문어에 국물을 계속 끼얹으며 얘기를 시작합니다. “동해안 참문어는 서해나 남해에서 나오는 돌문어랑은 다른 종류입니다. 돌문어는 오래 끓이면 질겨지지만 참문어는 그렇지가 않아요. 좀 오래 끓여야 국물도 시원하게 우러나옵니다.” 잘 익은 문어를 가위로 자르면서 해물탕집 젊은 사장님은 문어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줍니다.


해물탕으로 소문난 맛집이지만 이곳의 진짜 별미는 사장님의 이 특별한 설명입니다. 문어의 종류와 특징에서부터 맛있게 먹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몰랐던 문어의 모든 것’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니 문어가 다 익어 가위로 잘라줄 때까지의 시간이 단순한 공백이 아닙니다. 다른 식당 같았으면 무의미하게 흘렀을 그 시간이 이 식당에서는 요리에 대한 정보를 얻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는 겁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셰프로부터 ‘오늘의 요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식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음식에 대한 믿음은 따라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음식을 판다’가 아니라 ‘음식을 대접한다’라고 표현하는 사장님의 한 마디까지 더해지면 돈 낸 만큼 받아가는 물질적 거래관계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이 해물탕 집은 단순히 해물탕을 파는 게 아닙니다. 해물탕과 관련한 특별한 경험을 함께 파는 겁니다.


과거, 고객의 구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품질이 좋으면 고객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수많은 요소들이 고객의 구매 결정에 끼어듭니다.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도 구매결정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합니다. 비즈니스에 있어 ‘고객경험 관리(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가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고객경험 관리란 고객이 브랜드와 관련하여 체험하게 되는 모든 경험을 관리하는 겁니다. 고객경험 관리에 탁월한 기업들은 수많은 고객접점을 통합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 고객경험 관리는 ‘경험의 차별화’ 전략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삼척 맛집 <일품해물탕>으로 돌아가봅시다. 일반적인 해물탕집과 달리 이 집은 자기네 배로 직접 잡은 해물과 문어를 재료로 씁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조업을 못한 날이면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날따라 해물이 적게 잡혀 재료가 일찍 떨어져도 문을 닫습니다. 그러니 휴일도 아닌데 영업을 않거나 평일임에도 일찍 영업을 마감하는 일이 많습니다. 헛걸음을 피하려면 사전 전화 확인이 필수입니다. 일반 식당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한정 손님을 받지도 못하고, 갔다가 허탕을 칠 수도 있는 이 식당에 손님들이 넘쳐납니다. 귀하게 재료를 구하고, 그걸로 또 손님을 정성스레 대접하고, 재료에 대한 설명으로 가치를 높여주니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든 특별한 경험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몇 시간씩 차를 몰아 이 집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어묵으로 유명한 부산에서도 삼진어묵은 단연 특별합니다. 어묵을 어묵으로 팔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진어묵 본사 베이커리를 방문해본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삼진어묵은 어묵을 빵처럼 팝니다. 둥근 어묵, 사각어묵 등 모양과 크기만으로 분류되던 10종 안팎의 어묵을 맛과 재료에 따라 60여가지로 대폭 늘렸습니다. 허름한 시장에서 사먹는 '싸구려 음식'이 아니라 카페나 베이커리처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어묵을 고를 수 있도록 매장도 새로 꾸몄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제 고객이 구매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을 둘러싸고 있는 ‘경험’입니다. 단순히 기능이나 절차상의 만족뿐만 아니라 고객이 참여하고 사용하고 관찰하고 상호 교감하며 체험하는 ‘경험의 총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제품 혹은 서비스와 관련하여 고객이 체감하는 모든 것들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디테일까지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해물탕을 한정판 고급 레스토랑 요리처럼 팔고 어묵을 베이커리 빵처럼 파니 고객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이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발길을 끌어 모읍니다.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과연 어떤 게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스페인에 있는 어느 유명식당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먹으라며 고객에게 명함을 제공합니다. 놀라서 살펴보면 쌀 종이에 식용 잉크로 인쇄한 식용 명함입니다. 그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애피타이저인 셈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경험, 단언컨대 그런 고객경험이 곧 마케팅입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201703 동아비즈니스리뷰)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방구석5분혁신](bit.ly/5booninno)의 혁신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 <주소가 바꿀 미래사회와 산업>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실재화하는 혁신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60423 환자의 경험을 관리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