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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라고 혁신의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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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5분혁신=안병민] '고객경험혁신본부'는 웬만한 대기업들에서는 낯설지 않은 부서입니다. 하지만 병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마케팅 강의를 하러 갔던 서울척병원에 고객경험혁신본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이제 ‘혁신’에 주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고객’이라는 단어 때문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고객’이어서입니다. 내가 치료해주어야 하는 시혜의 대상이 ‘환자’라면 ‘고객’은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서비스의 대상입니다.


미디어 업계 혁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워싱턴포스트 사례가 겹쳐 보였습니다. 추락을 거듭하던 워싱턴포스트의 V자 반등은 ‘독자’를 ‘고객’이라 부르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제품·디자인 디렉터인 조이 마버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독자라고 불렀지만 제프 베조스는 고객이라 불렀다. 기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알리는 데 관심이 많은데 반해 제프는 공감이라는 가치를 중시했다. 우리의 상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다.”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해 혁신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고객’을 부르짖었습니다.


혈압, 수면 패턴, 혈당, 걸은 거리, 감정 상태 등을 분석해 맞춤형 건강 정보를 제공해주는 모바일 서비스가 일상화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모바일 닥터’ 시대의 개막이 코 앞입니다. IT 기술 발달에 따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의료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소셜’은 그런 변화에 있어 또 다른 촉매입니다. 소셜플랫폼을 통해 각자의 증상과 치료 경험, 경과 등을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는 환자들 때문에 의사 중심의 전문가 의료 패러다임이 환자 중심의 자기주도형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된 겁니다. ‘소셜 환자(Social Patient)’의 ‘스마트한 환자(Smart Patient)’로의 진화입니다. 그러니 ‘의료 쇼핑’이라는 말도 이젠 그리 낯설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고객경험관리’는 그래서 이젠, 병원에서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고객이 구매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을 둘러싸고 있는 ‘경험’입니다. 단순히 기능이나 절차상의 만족뿐만 아니라 고객이 참여하고 사용하고 관찰하고 상호 교감하며 체험하는 ‘경험의 총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꾸어 말해, 병원도 이제 치료만 잘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훌륭한 치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친절도 해야 하고, 동선도 복잡하지 않아야 하며, 각종 절차도 편리해야 하며, 화장실도 깨끗해야 하는 겁니다. 고객경험관리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많은 기업들처럼 병원에서도 우리의 서비스와 관련하여 고객이 체감하는 모든 것들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디테일까지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패러다임의 근원적 변화입니다. 의료계에서도 치열한 혁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남 광주의 하이치과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을 번갈아 오전 시간에는 진료를 하지 않습니다. 병원에서의 업무는 진료만이 다가 아닙니다. 밀렸던 고객자료 정리나 고객만족을 위한 회의나 발표 등, 진료 외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이렇게 만들어냅니다. 도끼 날을 벼리는 시간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서 추천하는 책을 함께 읽고 토론도 합니다. 직원의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병원의 조직문화에 대해 서로간의 이해를 공유하는 시간도 따로 가집니다. 병원의 경영철학과 핵심가치를 탄탄하게 다지는 겁니다. 다른 병원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개원 11주년을 맞은 울산의 동구CK치과병원 사례도 눈 여겨 볼 만합니다. 먼저 사회나눔활동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치카치카 치과체험’이 눈에 띕니다. 지역 내 아동들을 대상으로 치과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치과가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일종의 체험형 교육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이 의사 역할, 치과위생사 역할, 환자 역할을 돌아가면서 체험하며 치아 건강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매주 화요일 (또는 금요일) 아침, 진료 시작 한 시간 전에 진행되는 직원 교육은 임상이나 치과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여 직원들의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춥니다. 신입직원들을 위한 적응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자체 운영 중인 연차별 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직원 교육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직원에게는 외부 교육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다가 아닙니다. 겨울에는 병원에 호빵기계를 갖다 놓고 고객들과 함께 호빵을 먹고, 직원산행과 송년회 등의 사진들에 대한 고객 투표를 이벤트를 여는 등 고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아기자기한 병원 이야기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가격보다 가치, 세련보다 세심, 친절보다 친근, 관리보다 관심을 외치며 환자의 입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동구CK치과병원의 활동은 기업 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경영혁신입니다.

많은 병원들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얄팍한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행복한 직원’과 ‘행복한 고객’ 만들기가 관건입니다. 우리 병원만의 철학과 사명(Mission)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 게 바로 병원의 경영이고 병원의 마케팅이고 병원의 혁신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서울척병원에서는 연세가 많은 환자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대부분의 안내사항에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합니다. 또 모든 텍스트는 큰 글씨로, 배경색과 메시지는 색상 대비를 통해 주목도와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서비스디자인실의 작품으로 고객경험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내’가 아니라 ‘고객’의 입장이어야 합니다. 단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공감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소통이 중요해진 건 그래서입니다.


서울의 이든치과는 진료가 끝나면 해당 고객과 일대일로 인터뷰를 합니다. 일종의 만족도 조사입니다. 병원의 성장을 위해 쓴 소리도 부러 청해 듣습니다. 부정적인 소통은 사람의 마음을 멍들게 하기에 내부 직원들끼리 칭찬캠페인도 벌입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이 인쇄된 칭찬 쪽지를 통해 칭찬하고 싶은 직원과 이유를 적게 하고 그를 통해 직원 시상도 합니다. 칭찬을 많이 받은 직원뿐만 아니라 칭찬을 많이 한 직원도 시상합니다. 칭찬 문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입니다. 신입 직원을 위한 병원의 문화와 철학을 소개하는 교육은 이든치과에서도 빠지지 않습니다.


고객을 중심에 둔 경영혁신을 실천하는 병원들의 의료진은 스스로를 경영자이자 마케터로 인식합니다. 의료인이라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환자'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객'을 보아야 합니다. 고객이 보여야 ‘고객행복’과 ‘직원 성장’ 등 경영의 ABC가 차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항목에 ‘환자경험’을 포함시켰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병원은 환자의 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을 보듬어 안는 '브랜드'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필요한 건 직원의 헌신(Devotion) 그리고 병원의 혁신(Innovation)입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201706 포춘코리아)


표지일자 2017.6월 99http://www.sedaily.com/NewsView/1OHCM0BP09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방구석5분혁신](bit.ly/5booninno)의 혁신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 <주소가 바꿀 미래사회와 산업>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실재화하는 혁신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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