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은 기획, 제작, 판매라는 세 가지 활동을 가리킵니다. 기획을 통해 '원고'를 만들고 제작을 통해 '책'을 만들며, 판매를 통해 '독자', 즉 '고객'을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껏 출판사 관심의 방점은 기획과 제작에 있었습니다. 판매는 서점에서 하는 것이지 우리가 챙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서점엘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며 이런저럭 책들을 여러 권 사 가던 시절에는 아무 문제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서점 내 진열만으로는 책이 발견되지 못하더라, 라는 겁니다. 이른바 책의 '발견성 확보' 이슈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서점엘 와서 책을 뒤적이지 않습니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각자 발견한 책을 단지 구입하기 위해 서점을 찾을 뿐입니다. 책을 '발견'하는 공간이 아니라 '구매'하는 공간으로, 서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출판사 자체의 마케팅이 중요해진 배경이자 출판이란 업 자체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출판은 책을 잘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작금의 출판은 '연결'의 비즈니스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과 책을 '연결'해주고 저자와 독자를 '연결'해주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연결'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책은 한낱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출판계에서 마케팅 차원의 다양한 논의들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입니다. 예컨대, 고객정보를 확보하고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고객을 제대로 정의하고 발견하고 그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네이버의 '책문화'판이라든지 카카오의 '1분'같은, 도서 관련 영향력있는 포털 매체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열정에 기름붓기', '어웨이크' 등의 서비스를 통해 우리의 책을 '맛 보게' 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입니다. 뭐가 되었든 출판계 역시 마케팅으로부터 이제 자유로울 수 없는 분야임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바야흐로 '출판도 마케팅'인세상입니다.
여기까지가 어제 참석했던, 네 시간에 걸친 <sbi 출판 컨퍼런스>에서 나왔던 주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슈들이 있습니다.
먼저, 마케팅의 주체가 '출판사'여야 함과 동시에 '저자'여야 한다는 겁니다. 독자가 원하는 소통의 대상은 엄밀하게 보면 출판사라기 보다는 저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판사가 책과 관련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마케팅하는 것만큼이나 저자들이 잠재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바뀌었다 말씀드렸습니다. 출판사가 변해야 하는 것처럼 저자도 바뀌어야 합니다. 훌륭한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저자뿐만 아니라 의미있는 소통을 통한 마케터로서의 저자 역할에도 이제 무게가 실려야 합니다. 전제는 저자와 출판사의, 건강하고 수평적인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입니다.
다음은, 출판이라는 업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입니다. 출판은 더 이상 좋은 책을 잘 만드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포인트가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책이라는 물성의 상자를 깨고 나오면 출판업의 전략적 방향 역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생각하는 미래의 출판사는 '연예기획사'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다시 말해 '저자'와 함께 '책'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와 함께 책, 강의, 토크쇼 등 '전방위적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마케팅하고 매니징하는 회사, 즉 '지식•지혜 기획사'의 모습입니다. 마치 JYP가 '트와이스'를, YG가 '빅뱅'을 키워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공간을 파는 거"라 이야기하는 한샘의 최양하 회장이나 "우리의 경쟁자는 놀이공원이나 야구장"이라 말하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열쇳말은 '경영'입니다. 경영에서 매출만큼이나 중요한 게 비용, 즉 비용 관리입니다. 흔히들 10억 매출을 올리는 것만큼 1억 비용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말합니다. 다시 말해 1억의 비용 절감은 10억의 매출 제고와 같은 효과라는 겁니다. 우리 회사의 운영시스템이 효율적이고 실용적인지 찬찬히 따져볼 일입니다. 이른바 운영혁신의 이슈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개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입니다. 마케팅은 고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닙니다. 시장이 바뀌고 고객 또한 바뀌어 '3.0시장'이라 명명되는 요즘입니다. 마케팅의 개념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3.0시장에서의 마케팅 키워드는 '고객행복'입니다. 고객의 고통, 고충, 고민을 해결해줌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다시 말해, 고객의 뜨거운 목마름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게 마케팅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고객의 갈증과 상관없이 제품이 먼저 출시됩니다. 그걸 억지로 팔려고 하니 마케팅이 힘들 수 밖에요.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마케팅의 출발점은 기획단계부터여야 합니다. 다 만든 책을 잘 파는 게 마케팅이 아니라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고객이 원하는 책을 기획하는 것부터가 마케팅입니다.
이상 경영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 <마케팅 리스타트>와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라는 두 권 책의 저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참석했던, 어제의 <sbi 출판 컨퍼런스> 참석 후기입니다. '출판업'과 '경영마케팅'을 키워드로 한 저의 거칠고도 짧은 생각이지만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이라 고충을 토로하는 출판계에 먼지 한 톨만큼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모쪼록 어여삐 봐주시길요^^;;;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