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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002] '마이크로 밸류 마케팅'이 뜬다

조선일보 [실전MBA] 연재칼럼

*조선일보(20120823)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실전MBA> 칼럼입니다.

https://5booninno.bstage.in/contents/636aad13524c7503fa8fae33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아내와 찾은 인근 대형 마트. 입구에 늘어서 있는 카트를 하나 끄집어 내는데, 손잡이 부분에 전에 없던 액정화면이 달려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잡이에 디지털센서가 부착돼 고객이 매장 내에서 이동한 거리와 칼로리 소모량을 환산해 보여준다. 고객스스로 운동량을 체크하면서 쇼핑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일명 ‘건강카트’다. 홈플러스는 건강 카트를 개발하며 한국인의 평균보폭, 허리 높이, 아이와의 눈높이 등을 고려해 손잡이 두께 및 각도, 시트 각도, 바스켓 깊이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카트에 설치된 메모꽂이, 컵 홀더,휴대폰 홀더, 핸드백 걸이 등은 고객의 작은 편의까지 감안한 또 다른 선물이다.


#스프링으로 종이들을 꿰어놓은 스프링노트는 학창 시절을 기억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 노트를 쓰다 보면 불편한 게 있다. 오른쪽 페이지와 달리 왼쪽 페이지에 무언가를 적어 나가다 보면 가운데의 스프링이 자꾸 손에 걸리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다. 모닝글로리의 “쓰기 편한 PP 노트 시리즈”는 노트 가운데 부분의 스프링을 과감하게 없앴다. 고객의 불편을 배려한 세심한 조치다. 모닝글로리의 또 다른 히트작인 `친절한 단어장`은 단어장 겉 표면에 또 하나의 분리된 표지를 부착해 표지로 단어와 뜻을 교대로 가리면서 영어 단어를 암기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소비자의 작은 니즈를 놓치지 않은, 판매량이 100만권에 육박하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최근의 모든 시장은 이제 일부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업종을 막론하고 성숙, 포화 시장이 되었다. 제품력, 고객 서비스, 브랜드 등에서 특별한 차별점 없는 그저 그런 플레이어들이 함께 뛰고 있는 운동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가 줄어든 데다 웬만한 기술은 금세 모방이나 복제가 가능한 작금의 상황에서 색다른 포인트로 차별화하여 고객에게 어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기는 난망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은 이런 힘든 현실 속에서도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수 밖에 없는 터. 그러다 보니 승부는 더 이상 큰 데가 아니라 작은 데서 갈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의 낙점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시간에도 고민하고 있을 기업의 마케터들이 이제 ‘보다 작은 것’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이른바 ‘마이크로 밸류 마케팅 (Micro Value Marketing, MVM)’이 뜨고 있다. MVM은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 가운데 평소 고객이 불편함이나 아쉬움을 느꼈을 만한 세밀한 부분까지 찾아내 소비자 중심으로 제품 설계를 바꾸거나 서비스를 개선하여 소비자 만족을 극대화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거액을 투자하여 신기술로 무장한 첨단의 제품을 출시하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 광고를 퍼붓던 기존의 ‘매크로’한 마케팅 방식도 이젠 작은 곳에서 새로운 고객 가치를 발굴하고 이런 작은 가치에 감동 받은 고객들의 진솔한 입소문이 또다시 새로운 고객을 불러오는 식의 ‘마이크로’한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껏 우리는 안에서 밖으로'(In & Out) 전략에만 젖어 있고, '밖에서 안으로'(Out & In) 전략에는 눈을 감고 있기에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경쟁사는 '대박'이 나는 반면, 나는 '쪽박'을 찬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경영사상가 50인' 중 한 명인 아드리안 슬라이워츠키의 이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기업 입장이 아니라 고객 입장에서 필요한 가치를 발굴해 내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요즘이다. 책상에 앉아 상상만으로 수요를 창조할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고객의 세세한 목소리까지 챙겨 들음으로써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야기. 고객의 삶 자체에 현미경을 들이대어야 하는 MVM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상한 또 다른 배경이다.


그럼, 이런 MVM의 성공 요소는 무엇일까? 먼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Desirable)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주지 못하는,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로는 고객의 마음을 당겨올 수가 없다. 펩시가 출시한 투명한 콜라, 펩시 크리스탈의 실패가 이에 대한 방증이다. 둘째, 지속가능한(Durable) 것이어야 한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거나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인해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면 별무소용이다. 한 경기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선발투수가 아닌 원 포인트 릴리프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원 포인트 릴리프는 말 그대로 한 순간의 불만 끌 수 있는 임시 방편일 뿐이다. 셋째, 독특해야(Distinctive)한다. ‘넘버 원(No 1)’이 아니라 ‘온리 원(Only 1)’이 중요한 세상에 누구나 제공 가능한 가치또한 고객의 눈길을 끌기가 힘들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이라는 요소가 MVM을 완성한다. 결국 성공적인 MVM은 ‘고객이 원하는, 작지만 의미있는 차별적 가치’가 관건이다.


일찍이 <디테일의 힘>에서 왕중추가 역설했듯이 사소함이 전체를 결정한 수 많은 사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쇼핑 카트의 크기를 키우니 부피가 큰 아이템의 매출이 늘어나고, 사무실 거리가 멀어지니 직원들의 소통이 힘들어지고, 테이블을 원형으로 바꾸었더니 권위적인 회의 분위기가 바뀌는 등 디테일은 이제 더 이상 대세에 지장 없는 작은 부분으로만 남지 않는다. 전체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그 위상이 격상됐다. '100-1=0'이라는 고객 만족 공식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작은 것의 힘은 크다. 기업의 성공과 성장 역시 이제 작은 것에 달려 있다. ‘고객이 원하는, 작지만 의미있는 차별적 가치!’ 작은 것을 허투루 보지 않는 창의적 발견력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담보하는 세상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조선일보 20120823 http://bit.ly/13YCgkG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방구석5분혁신](5booninno.bstage.in)의 혁신 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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