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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019]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조선일보 [실전MBA] 연재칼럼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 재래 시장의 어느 수제 어묵 가게. 생선살 비율이 20~30%에 불과한 다른 어묵들에 비해 생선살 비율이 60%에 이르는 어묵을 파는 가게다. 그럼에도 손님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붙여 놓은 “생선살 60퍼센트”라는 팻말. 그런데,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실제 그만큼의 생선살이 들어가는지 눈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가게 정면에 작업대를 배치해서 생선살을 섞고 튀겨내는 전 과정을 손님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건 그래서다. 결과는, 무려 50%의 매출 성장이었다.


# 또 다른 재래시장의 어느 과일 가게. 현장엘 가서 보니 붉은 색 과일들을 붉은 색 소쿠리에 담아 놓았다. 싱싱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과일 아래에 초록색 비닐을 깔았다. 보색대비 효과로 과일들이 싱싱해 보이게 만든 것이다. 사려는 손님이 있으면 비닐을 바로 들어서 판매할 수있으니 과일의 손상도 없다. 같은 시장 내 생선 가게. 생선가게라고 불경기가 피해 갈 리 만무하다. 그런데 현장을 들여다보니 매대에 생선들이 직선으로 누워있다. 직선 배치엔 생동감이 없다. 생동감을 주는 건 사선이다. 사선으로 생선들을 재배열하고 바다 느낌이 나는 수초들을 같이 깔아주었더니 결과는 역시 대성공.


‘재래시장 살리기’의 일환으로 비주얼 머천다이저 (VMD·VisualMerchandiser) 이랑주 대표가 실제로 진행했던 컨설팅 사례들이다. 컬러와 조명, 디스플레이 등 시각적인 요소들을 잘 활용한 성공사례들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현장’이다. 재래 시장을 살린다며 책상 앞에 앉아 펜대만 굴려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현장에서의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아이디어들이다. 국내 유명 백화점의 잘 나가는 VMD였던 이랑주 대표는 온실 같던 백화점을 박차고 나와 무려 8년 동안 전국의 시장을 누볐다. 그렇게 벼리고 벼린 ‘현장 감각’이 이렇게 빛을 발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심도 깊은 내부 회의도 진행하고 유명 석학들의 이론을 들춰가며 아이데이션도 열심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교과서 속 이론은 결코 현장을 따라가지 못 해서다. 문제는 모름지기 현장에 있는 법. 답도 현장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우문현답’이라고 했던가. ‘우둔한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란 뜻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의미다.


직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비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못한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현장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야 꿈도 있고 비전도 있다. 허공을 향해 목청껏 외쳐봐야 메아리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새벽 6시, 고속터미널을 찾아 자사의 고속버스 첫차 기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했다는 어느 여객운송 회사의 CEO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날의 특이사항과 실적 등을 점검하고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실적 역시 따라 올랐다. 무려 30년 동안을 약재상에 직접 다니면서 약재를 구입했다는 어느 제약회사 CEO도 있다. 일흔이 넘어서까지 근처 약국과 도매점은 직접 다니며 의견들을 들었다는 그 CEO는 힘든 역경들을 그렇게 이겨냈다. 위기 극복의 ‘현장 경영’ 사례들이다.  


수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형사가 반드시 다시 찾는 곳이 있다. 현장이다. 뭔가 문제가 있으면 다시 한번 눈길을 돌려야 할 곳이 바로 현장인 셈이다. 책상에 앉아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발로 뛰어야 하고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맨 꼭대기에 앉아서 명령만 내리려고 하지 말라. 직접 뛰어들어 일이 돌아가는 전체 과정을 알고, 활력을 불어넣어 임무를 완수하도록 격려하라.”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리더들이 새겨 들어야 할, 세계적인 경영학자 헨리 민츠버그 교수의 말이다. 위기일수록 현장이 답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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