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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11] 일상이 경영이다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17년도 9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마케팅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 마케팅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작은 가게와 식당, 병원에서도 고객 편의를 생각하는 마케팅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편집자 주)


“나는 외계인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화를 봤다. 비디오게임 실력이 탁월하고 어리기 때문에 외계인들처럼 생각하는 법을 쉽게 배울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요? 행성보호관을 채용하겠다는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최근 공고에 아홉 살짜리 꼬마가 지원서를 내며 스스로를 소개한 글 중 한 대목입니다. 데이비스라는 이 아이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입사지원서를 썼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지원한 용기도 가상합니다만 입사지원의 글에서 ‘마케팅’이 보이기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데이비스는 입사지원서에서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뽑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들고 있습니다. 경쟁브랜드가 아닌 ‘나’라는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와 그에 대한 근거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겁니다. 마케팅에서 이야기하는 ‘차별화’ 개념입니다. 고객으로 하여금 나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 일상 매 순간이 마케팅입니다. 누구나 무언가를 팔고 있고 또 팔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삶이 마케팅이고 일상이 경영인 셈입니다. 


최근 부산과 거제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찾아낸 일상 속 경영마케팅 얘기들을 몇 자락 가지고 왔습니다. 먼저 부산 남포동에 있는 돈까스 전문점 <미또미>입니다. 미또미는 ‘돈까스 아닌 돈까스’를 파는 맛집입니다. 이름하여 ‘밀푀유 돈까스’입니다. ‘밀푀유(Mille-feuille)’는 프랑스어로 ‘천 겹의 나뭇잎’이라는 뜻입니다. 나뭇잎처럼 저미듯 얇게 썰어낸 등심살을 차곡차곡 겹쳐 올려 튀긴 돈까스가 밀푀유 돈까스입니다. 일본에서는 ‘겹돈까스’라는 의미로 ‘카사네카츠’라고 부르는 음식입니다. 이렇게 고기를 튀겨내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합니다. 밀푀유라는 조리방식을 통해 미또미는 다른 집 돈까스가 아니라 미또미의 돈까스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역설합니다. 다가 아닙니다. 매장 곳곳에 붙어있는 아기자기한 포스터들을 보니 ‘두 모녀의 인생돈까스’란 표현이 눈에 띕니다. 가만히 보니 주방에 계신 분이 엄마, 홀을 맡고 계신 분이 따님인 듯 합니다. 그러니 여기 미또미를 찾는 손님은 단지 물리적으로 맛있는 돈까스를 먹는 게 아닙니다. 두 모녀의 인생 이야기가 켜켜이 녹아있는, 감성의 돈까스를 먹는 겁니다. “단순히 맛있는 돈까스는 다른 데에도 많지요. 하지만 저희 돈까스는 맛이 다가 아닙니다. 조리방식도 다를뿐더러 음식을 만들어내는 저희 모녀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미또미 조서영 대표의 얘기는 ‘차별화’ 개념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더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돈까스 아닌 돈까스’라는 미또미의 표현은, 그래서 유효합니다. 


부산 연산동에 있는 <연산수제화>는 65년 장인의 손길이 묻어있는 곳입니다. 지금껏 연산동 그 자리에서 구두를 만들어 왔습니다. 수십 년 구두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만드니 내 발에 꼭 맞는 편한 구두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직접 구두를 만들며 운영하던 연산수제화를 최근 물려받은 정은임 대표는 애초에 구두사업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답니다. 하지만 멀리 타지에서도 굳이 연산수제화를 찾아오는 단골고객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장인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 겁니다. 기술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 겁니다. '65년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앞으로 세계 최고의 신발 기술 학교를 만들 겁니다.” 정은임 대표가 이야기하는 ‘사업의 이유’입니다. 많은 경영학 교과서에서 이야기합니다. 매출이나 수익 이전에 사업의 이유를 찾으라고 말입니다. 크지 않은 구두가게지만 여기 연산수제화에도 이렇게 미션과 비전이라는 경영마케팅의 요체가 오롯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거제에서 ‘숨은 경영’을 찾은 곳은 거제 맛집으로 유명한 중식당 <타이웨이>입니다. 타이웨이의 추성희 대표는 미스터피자 옥포점을 전국구급 매장으로 키워낸 외식업의 고수입니다. 그가 말하는 마케팅이란 이런 겁니다. “마케팅 교과서는 잘 모릅니다. 직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은 오로지 고객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진짜 쉽고 간단합니다. 더우면 “특별히 시원한 자리로 안내해드릴게요.”라 얘기하고 얘기가 길어지면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 드릴게요.”하는 겁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시면 “입구에 보관해드릴게요.”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관광객들께는 “거제로 여행 오셨어요?”라 물으며 거제 관광의 알짜 팁을 드립니다.” 좀 많이 기다렸다 싶은 고객께는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내고, 이사를 가시는 고객에게는 그 동안 감사했다며 푸짐하게 음식을 대접하는 추성희 대표. 고객을 생각하는 진심이 그렇게 전달됩니다. IT기술 발전을 통해 세상이 극도로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것에 문을 엽니다. 그러니 피자 만드는 로봇은 나와도 피자를 파는 세일즈맨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미래학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타이웨이 역시 고객행복을 지향하는, 생생한 마케팅 현장인 셈입니다.


그러면 의료계는 어떨까요? 부산 서면에 자리잡은 <워너비 치과> 류석환 원장의 얘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류석환 원장은 직원들이 하나같이 자기를 좋아한다 얘기합니다. 혼자만의 착각 아니냐, 웃으며 농을 건넸더니 사뭇 정색을 하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 치과는 아직 작은 치과입니다. 그러니 직원들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저 역시 직원들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장인 나를 이용하려 드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늘 의심해야 합니다. 그래서는 병원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라도 저 스스로를 세뇌시킵니다. 직원들 모두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무방비 상태로 한 방 세게 맞았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탁월한 통찰입니다. 리더가 이러니 직원들도 남다릅니다. 워너비치과가 그렇게 서로를 신뢰하며 찾아낸 고객키워드는 ‘관심'입니다. 환자의 이름을 기억했다가 불러드리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좋아하시는 TV채널을 기억했다 틀어드린다는 워너비치과. 이 작은 관심이 고객의 영혼을 감동시킵니다. 그렇게 그들은 환자의 ‘병’을 넘어 환자의 ‘삶’을 보듬어 안습니다. 


덩치 큰 대기업들만 경영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음식점을 운영하든 구두샵을 운영하든 개인병원을 운영하든 매 순간이 마케팅입니다. 업종과 직종, 규모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일과 삶의 경영자이자 마케터인 겁니다. ‘나’라는 브랜드를 미국항공우주국에 세일즈하려고 했던 아홉 살 꼬마의 귀여운 마케팅을 보며 우리 일상 속 수많은 ‘숨은 경영’의 현장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단언컨대 삶이 마케팅이고 일상이 경영입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표지일자 2017.9월 102호 http://www.sedaily.com/NewsView/1OL0X6D1D0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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