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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13] 병원에서 병원을 생각하다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17년도 11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추석 연휴 끝 무렵, 필자는 급성알러지 증상으로 입원을 했다. 병원 ’환자경험관리‘에 대한 강의 요청을 많이 받고 있는 터라 실제 입원을 해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직접 체험한 병원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우리 병원에선 달라져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편집자 주)


추석 이후 앓아누웠던 게 지난 주 토요일부터입니다. 발열과 오한에 두통과 근육통, 그리고 피부 두드러기까지 무쟈게 고생했더랬습니다.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도 갔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혹독한 고통 속에서 보내다 드디어 모 대학병원에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복약 부작용으로 인한 급성알러지 증상이랍니다. 결론은 입원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지금 모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쓰는 겁니다. 매월 연재 중인 기명칼럼이라 한 달 건너뛰기도 힘듭니다. 그나마 지끈지끈 아프던 머리가 오늘은 살짝 개운하니 이렇게 사브작사브작 글도 쓸 만 합니다. 무엇에 대해 쓸까 하다 병원에 입원한 김에 병원에 대한 글을 쓰자 싶었습니다. 최근 의료계에서 ‘환자경험관리’에 대한 강의 요청을 많이 받는데 차제에 직접 환자가 되었으니 그에 대한 글을 쓰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까칠하게 말입니다. 


먼저 환자복입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입어야 하는 게 환자복입니다. 위생 유지, 오염 방지뿐만 아니라 치료를 위해서도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니 안 입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복이란 게 참 신기합니다. 좀 전까지 멀쩡히 병원에 씩씩하게 걸어들어왔던 사람도 이 놈의 환자복을 입는 순간 영락없는 환자가 되어버립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순응’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자율성, 즉 삶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감을 상실하면 무력해지더라는 겁니다. 실제 미국에 있는 모 양로원에서의 실험 결과도 이를 방증합니다. 스탭들이 전 일과 모든 활동을 다 도와주도록 한 그룹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직접 하게끔 한 그룹을 비교해보니 전자그룹은 매사에 무기력한 반면 후자그룹은 늘 활기가 넘치더라는 겁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병원은 언제까지 이렇게 몰개성적이면서도 환경순응적인 환자복을 환자들에게 강요해야 할지 말입니다. 백 번 양보해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환자가 아이들이라면 더 우울합니다. 이런 환자복을 입고 회색빛 무채색 병원에 며칠간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그게 외려 또 다른 병을 부르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의료진의 진찰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떠올리는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걸친 의사의 모습은 신뢰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에겐 때로는 과도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최근 몇몇 병원들에서는 편안한 복장을 통해 환자들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편안함을 느끼도록 노력하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지금이 최선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게 의료진의 진찰복입니다. 


식사는 또 어떤가요? 병원은 환자에게 원하는 식단을 묻지 않습니다. 협의란 없습니다. 일방적인 공지만 있을 뿐입니다. 7시반, 12시반, 5시반이란 식사시간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왜, 만들어놓은 법칙인가요? 원하지도 않는 음식을 원하지도 않는 시간대에 억지로 먹으려니 모래를 씹는 고역이 따로 없습니다. 간략하게 몇 가지만 짚었습니다만 이렇게 환자는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거의 전방위적인 방향에서 어마어마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환자경험입니다.


그럼,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예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거나 관리상의 효율 때문이라 강변하는 분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저 혼자 그저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펴보고자 합니다. 


제가 상상하는 병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의료진은 천편일률적인 하얀 색 의사 가운을 벗어던졌습니다. 응급처치나 수술이 진행되는 현장이 아니라면 알록달록 색감이 들어간 옷도 상관없습니다. 디자인도 일반 의사 가운보다는 훨씬 환자친화적입니다. 전문가적 카리스마를 뽐내기보다는 공감과 배려의 이미지를 수용한 친근한 디자인입니다. 환자복 역시 주어진 디자인 중에서 환자가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소아병동 쪽은 웬만한 테마파크가 따로 없습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캐릭터들이 병원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이 정도면 ‘병원으로 소풍간다’는 말도 나올 정도입니다. 유리 닦는 스파이더맨은 또 어떤가요? 스파이더맨이 내가 입원해있는 병원 외부 유리를 닦아주고 있는 겁니다. 알고 보면 청소부 아저씨의, 아이들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진심이 담긴 즐겁고 유쾌한 복장입니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물론 일반 호텔이나 식당과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무조건 만족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그리는 병원에서는 유명셰프들이 매끼 유기농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줍니다. 병원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에서 최고의 재료만을 공수하여 만든 환자식을 저녁 메뉴로 제공해주는 겁니다. 병원의 식사시간도 기다려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라고요? 그렇게 해가지고 병원 경영이 가능이나 하겠냐고요? 그래서 앞에서 ‘상상’이라 표현을 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길요. 제가 상상이라 너스레를 떨었던 이 모든 것들이 이 시간 현재, 외국의 많은 병원들이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독일의 릴랙스앤스마일치과에서는 의료진들이 실제 전통 민속의상을 입고 진료를 봄으로써 환자들에게 친근함을 주기도 하고요. 유리를 닦는 스파이더맨쯤은 미국 피츠버그 어린이병원, 호주 멜버른 왕립 어린이병원 등 세계 각지의 웬만한 어린이병원들에서는 흔한 풍경입니다. 유기농재료로 환자식을 제공하는 병원도 실재합니다.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병원입니다. “환자들에게 단지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입원하는 동안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최대한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우리 노력들 중 하나”라 얘기하는 스탠포드 대학병원 최고경영자 마르타 마시의 말은 ‘환자경험’이란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제 입원 나흘차입니다. 아파서 찾게 된 병원이지만 우리나라 병원 입원실의 모든 풍경은 환자를 더욱 아프게 합니다. 의료는 시설과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세심한 서비스 디자인이 정말 중요합니다. 환자의 ‘병’을 뛰어넘어 환자의 ‘삶’을 보듬어안는 서비스여야 합니다. 


“병원은 누구에게나 오래 있고 싶지 않은 장소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환자가 원하는 모든 것에 “예스”라고 대답하는 최고의 서비스가 필요한 것입니다.” ‘환자를 웃게 하라’는 경영철학으로 유명한 일본 마케다 의료원 카메 신스케 원장의 말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습니다. 억울하면 안 아플 일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병원 관계자 분들께 이것 하나만큼은 꼭 묻고 싶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이게 최선입니까?” ⓒ보통마케터안병민


표지일자 2017.11월 104호 http://www.sedaily.com/NewsView/1ONKBG2KEJ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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