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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 칼럼] ‘사실'이 아니라 '공감'을 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보 칼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보 <KAMA웹저널> 2018년 1월호(Vol.346)에 실린 경영칼럼입니다.


아빠는 우주비행사입니다. 우주선을 타고 한번 지구를 떠나면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몇 년 만에 한번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는, 딸에게는 늘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전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지구에 있는 딸의 그 ‘사랑 메시지’를 우주에 있는 아빠에게 전해준답니다. 제네시스 자동차가 말입니다. 제네시스가 부녀간 애틋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 겁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네바다 주의 사막 한 가운데에다 우주선에서도 볼 수 있는 커다란 글씨로 딸의 메시지를 적는 겁니다. 그런데 펜이나 붓으로 적는 게 아닙니다. 제네시스 자동차의 타이어로 적는 겁니다. 차가 지나가면 남는 그 바퀴자국 말입니다. 열 한대의 제네시스가 사막을 도화지 삼아 딸의 메시지를 거대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그려 나갑니다. 장관입니다. “아빠 사랑해요”라는 메시지가 그렇게 우주로 배달됩니다. 우주선 속 아빠의 환한 웃음에 제네시스 로고가 자연스레 오버랩됩니다. ‘우주로 보내는 편지(A Message to Space)’라는 이름의 현대자동차 광고입니다.

현대 제네시스 광고 : http://bit.ly/2AqXkCt


바야흐로 ‘감성’의 시대입니다. 산업화 시대와 정보화 시대를 거쳐 이제 우리는 ‘감성’과 ‘공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좌뇌에서 우뇌로 소통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겁니다. 관건은 ‘교감’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란 의미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성적 메시지만으로는 더 이상 상대의 마음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메마른 이성적 메시지에 돌아오는 상대의 반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감성의 스토리입니다.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객의 ‘머리’가 아니라 고객의 ‘가슴’에 울림을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즉 광고에서의 단계도 그렇게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우리 제품의 일반적 속성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1단계입니다. 그 단계를 지나면 우리 제품의 특장점에 대해 얘기합니다. ‘자랑’의 2단계입니다. 다음 3단계는 우리 브랜드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편익’에 대한 소구입니다. 우리 브랜드가 고객의 삶에 있어 어떤 ‘의미’인지 얘기하는 게 마지막 4단계입니다. 우리 브랜드를 알리기에 급급한 설명과 자랑이 기업 중심의 일방적 전달이라면 단계가 올라갈수록 고객을 중심에 둔 상호교감의 소통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들이 그런 감성소통을 통해 성공을 빚어냅니다. 매월 1억 9천만개가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위기에서 다시 구해낸 것도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정(情)’입니다. 새로운 성분을 추가했다거나 카카오 함량을 높였다거나 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시쳇말로 ‘그 놈의 정’이 초코파이를 다시 살려낸 겁니다. “나는 1974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구를 스물 다섯 바퀴 채 돌았습니다. 영하 40도의 추위가 두렵지 않았고 높은 낭떠러지가 두렵지 않았으며 열대의 태양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내가 유일하게 두려운 것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지 못하는 일입니다.” 영화배우 하정우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촉촉히 젖어드는 초코파이 광고 ‘파이로드-지구와 정을 맺다’ 편은 그런 감성적 스토리텔링의 정점입니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하나 놓아드려야겠어요.” 1992년 광고이니 무려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경동보일러 광고의 카피입니다. 그 광고를 본 적도 없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 문구만큼은 줄줄 외워댑니다. 감성의 힘이며 공감의 결과입니다. 이처럼 감성적 스토리텔링은 팍팍한 고객의 마음을 여는 따뜻한 알리바바의 주문인 겁니다.


달라진 자동차 광고의 또 다른 키워드는 ‘경험’입니다. 물질적 풍족함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물질이 주는 행복의 절대크기 자체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못 가진 걸 가져서 얻게 되는 행복보다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어 얻게 되는 행복감이 더 큰 이유입니다. 소나타를 사서 행복했는데 제너시스를 샀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심사가 뒤틀립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다녀온 남해안 여행이 행복했다면 하와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을 만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물질’은 상대적인 반면 ‘경험’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재 대비 경험재는 공유도 가능합니다. 이야기나 글로 그 때의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동차 광고에서도 ‘소유’를 자극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이 자동차를 통해 얼마나 근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기아의 스포티지 광고는 그런 측면에 맞춤하는 광고입니다. 근사한 자연의 풍광과 함께 “주말,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광경을 목격하다, 밤 하늘에 수 놓인 별들을 세어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소리에 빠져들다”라는 카피가 차례로 화면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줌 아웃, 뒤로 빠지면서 보이는 장면은 딴판입니다. 거실 소파에 누워 그런 멋진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들여다보는 한 남자의 궁상맞은 모습. 그 때 성우의 나레이션이 들려옵니다. “보기만 하는 건 진짜가 아니다. 시동을 켜라. 진짜가 시작될 테니까!” 그리고는 신나는 아웃도어 스포츠와 캠핑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마지막 카피는 이겁니다. “주말이 리얼이다.” 스포티지 역시 자차의 특장점에 대한 이성적 메시지는 완전히 걷어냈습니다. 스포티지를 갖게 되면 할 수 있는 환상적인 경험을 보여줍니다. 소유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경험을 위한 소비에 초점을 맞춘 소통입니다.

기아 스포티지 광고 : http://bit.ly/2AtdGKV


LG전자에서 출시한 스마트폰 ‘아카’는 최첨단 IT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을 ‘도구(Tool)’가 아니라 ’애완동물(Pet)’로 포지셔닝한 사례입니다. 네 가지 종류의 스마트폰에 각각의 캐릭터와 개성을 부여하고 저마다의 닉네임을 붙여 출시한 전략폰입니다. 자동차 광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고급스러운 가죽시트와 최고의 사양”이란 표현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세상입니다.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표현을 더욱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고객들입니다. 물건을 담은 이성적 ‘컨테이너(Container)’의 세상은 저물어 갑니다. 바야흐로 이야기를 담은 감성적 ‘콘텐츠(Contents)’의 세상입니다.


“똑똑한 리더는 스토리로 설득하고 멍청한 리더는 명령만 내린다.” 스토리텔링의 대가 로버트 맥기 교수의 말입니다. 이 말을 조금만 바꾸면 이런 표현도 가능할 듯 합니다. “똑똑한 마케터는 감성으로 소통하고 멍청한 마케터는 팩트만 들이댄다.” 이제 팩트들은 넘쳐납니다. 그런 팩트들을 공감의 스토리로 엮어내지 못하면 팩트는 사라지고 맙니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스토리’와 ‘경험’을 팔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보 <KAMA웹저널> 2018년 1월호(Vol.346)

http://www.kama.or.kr/jsp/webzine/201801/pages/story_02.jsp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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