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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49] 혁신리더는 ‘확신’하지 않는다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20년도 11월호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경영수다> 칼럼입니다.

 

통찰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모습을 굳이 표현하자면, 마치 겨울날 개울을 건너는 것 같다(若冬涉川). 사방을 경계하는 것 같다(若畏四鄰). 초대받은 손님 같다(若客). 얼었던 물이 녹는 것 같다(若氷之將釋). 도덕경 15장, 도를 터득한 인재의 모습을 노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겨울날 개울을 건널 때는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잘못하면 물에 빠질 수 있어서다. 사방 경계는 있을지 모를 일에 대한 대비다. 가벼울 수 없다. 남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 또한 몸가짐이 경박해선 안 된다. 삼가야 한다. 딱딱한 얼음이 풀리듯 녹는 모습은 연하다. 조심스럽다. 노자가 정의하는 인재의 열쇳말은 결국 '신중함'으로 귀결된다.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산업화 시대, 리더의 미덕은 확신과 용기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결기에 찬 목소리로 ‘나를 따르라’, 깃발을 들고 나팔을 불었다.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리더의 모습이다. 하지만 ‘변화가 일상인 세상’이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은 궤변이 된다. 정해진 궤도 위로 움직이던 기차가 철로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늘을 나는 기차'와 '바다를 헤엄치는 기차'가 낯설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정답은 없다. 아니, 정답은 많다. ‘보고 싶은 대로’ 보아서는, ‘봐야 하는 대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보여지는 대로’ 보아야 한다. 그게 신중함이고, 이는 유연함으로 이어진다. 유연하지 않은 리더의 확신은 그래서 위험하고, 신중하지 못한 리더의 용기는 그래서 무모하다.

 

‘복면가왕’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나와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래가 끝나면 가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노래를 잘 했었나?” 놀람은 탄성과 박수로 이어진다. 그만큼 우리의 눈은 불완전하다. 나도 모르는 색안경을 끼고 있는 셈이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쳐보니 아닌 거다. '복면가왕'은 확신의 허울을 뒤집어 쓴,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여지없이 뒤엎어버린다. 그 전복의 교훈이 무척이나 크다.


‘점을 찍어주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선을 그어주는 리더’가 있다. 지금껏 우리의 리더는 선까지 그려줬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이동에 있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어서다. 변화가 없었으니 새로울 건 없다. 그저 과거의 최선책을 알려주는 거다. 팔로워는 두 말 않고 따라간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책임질 필요도 없으니 시키는 대로 그냥 간다. 리더는 이처럼 ‘머리’였고, 팔로워는 이처럼 ‘손발’이었다. 똑똑한 리더 하나만 있으면 조직은 별 탈 없이 굴러갔다.


그런데 웬걸. 어제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아침의 뽕나무밭이 저녁에는 바다가 되는 세상이라서다. 분초를 다투며, 있던 길이 사라지고 없던 길이 생겨나서다. 리더가 더 이상 선을 그어줘서는 안 되는 이유다. 리더의 역할은 점을 찍어주는 걸로 끝나야 한다. 방향만 맞다면 과정은 믿고 맡기는 거다. 목적만 일치하면 수단은 위임하는 거다. 다양성의 포용이다. 포용은 곧 신뢰다. 믿으니 껴안는 거다. 신뢰가 넘쳐나는 조직에서는 모두가 주인이 된다.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하라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좀비조직’과는, 시쳇말로 클라스가 달라진다. 리더의 신중함과 유연함이 빚어내는 포용의 힘이다.

 

같은 이력서임에도 이름만 바꾸었더니 심사위원들의 평가 점수가 달라진다. 남자 이름이냐, 여자 이름이냐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다. 사회와 경제, 정치와 문화 등 전 방위적 지점에서 인간의 편향성은 어김없이 고개를 내민다.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의 한계다. 확신은 금물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해야 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볼테르도 한 마디 보탰다. “의심하는 것은 유해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기만의 틀로 세상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게 ‘유위(有爲)’다. 이건 이래서 맞고, 저건 저래서 틀렸다고? 나의 기준이다. ‘무위(無爲)’는 그런 틀을 깨부수는 거다. 알량한 이론과 경험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거다.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무위는 곧 용기다. 어제의 나를 부정해야 오늘의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자기부정이다. 어제의 나를 죽여야 오늘의 나로 거듭날 수 있다. 자기살해다.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단절해야 한다. 과거의 나에게 고하는 이별 의식이다.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창조 의식이다. 무위가 창의이며, 무위가 혁신인 이유다. 그럼에도 수많은 리더들이 여전히 과거를 답습한다. 어제의 해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결과는? 나락이다. 우리가 사는 건 과거가 아니라서다. 변화 가득한 '지금 여기'라서다. 무위는 결국 불완전한 스스로에 대한 주관적인 확신을 버리라는 노자의 가르침이다.

 

관건은 포용이다. 포용은 다양성을 껴안는 힘이다. 신중해야 포용할 수 있고, 유연해야 포용할 수 있다. 속도와 효율이 지상 과제이던 시절, 기계적인 일사불란함은 조직의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창의가 경쟁력이고, 그 원천은 다양성이다. 그럼에도 '확신의 덫'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리더들이 숱하다. “이 직업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를 만드는 걸 가장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매력은 천인천색이라 편견 없이 사람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20년 동안 성혼시킨 커플만 1천쌍이 넘는다는 어느 커플 매니저의 말이다. 고수다. 고수는 신중하다. 자기확신에 조심스럽다. 반면, 하수는 ‘척, 보면 안다’ 한다. 미망과 허상에 사로잡힌 포로 신세다.

 

변화가 없던 시절, 세상은 단순했다. 이런 인풋이 투입되면 틀림없이 저런 아웃풋이 나왔다. 오랜 기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머릿속에 변수는 없었다. 상수들의 조합만 있을 뿐. 그러니 여기저기서 확신이 넘쳐났다. '확신 없음'은 '능력 없음'과 등가로 치부되었다. 성공을 거머쥔 리더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변화가 상수가 된 지금, 확신은 '경솔함'과 '고루함'의 또 다른 표현이 되었다. 확신이 혁신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제가 달라졌고, 맥락이 바뀌었다. 흐름이 변했고, 상황이 뒤집어졌다. 여름에는 반팔 옷을 찾아 입듯,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그게 자기만의 정답을 고집하지 않는 혁신리더의 모습이다. 달라진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혁신리더의 자세다. 변화를 포용하는 혁신리더의 태도다.

 

도덕경 15장, 노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보차도자 불욕영 고능폐(保此道者 不欲盈 故能蔽)”. 도를 가진 사람은 채우려 하지 않는다. 고로 세상 만물을 덮을 수 있다. 비워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혁신하는 리더는 확신하지 않는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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