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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014] ‘고객’이 ‘선택’하게 하라

[국제신문 연재] 안병민의 세상읽기

*방구석 5분혁신-안병민TV : 플랫폼 시대 생존 전략, 고객이 선택하게 하라

https://youtu.be/_aW6RIXklAU


국제신문 2020년 12월 16일자에 실린 <세상읽기> 연재칼럼입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다. 날마다 신문이 배달되기만 기다렸다. 신문을 손에 쥐자 마자 펼쳐 드는 면은 TV방송 편성표가 실린 문화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려면 방송시간을 알아야 했고, 방송시간에 맞추어야 했어서다. 사람들은 친구와의 약속도 미루어야 했고, 하던 설거지도 멈추어야 했다. 야심한 시각, 천근만근 피곤한 몸에도 눈을 비비며 브라운관 앞에 앉아야만 했다. 방송국에서 정해놓은 시간표를 그저 따라야만 했던 시절의 풍경이다.


방송시간이 독립변수라면 우리 일상은 종속변수였다. 방송프로그램과 방송시간이라는 독립변수를 좌지우지했던 방송국이 오랜 기간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때의 우리는 그저 보고 듣는 사람, 이름하여 ‘시청자’였다.


하지만 십 일 붉은 꽃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나 뉴스의 시청률은 추락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그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유튜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다.


“내가 맛난 걸 만들었으니 너희들은 먹기만 하면 돼.” 방송국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은 손님에게 묻지도 않고 주방에서 마음대로 만든 음식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면?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 속으로 밀어 넣거나 아니면 그냥 굶거나.


유튜브는 달랐다. 다양한 메뉴가 넘쳐났다. 한식뿐만 아니다. 양식에, 일식에, 중식에, 온 세상 음식이 한가득이다. 심지어는 내가 원하는 요리를 내가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방송국 시스템 하에서는 꿈도 못 꾸었던 일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열광한다. 가질 수 없었던 선택권을 거머쥔 사람들은 기꺼이 자기효능감을 즐긴다.


‘중앙’에서 정해주는 대로 ‘주변’은 따라야 했던 중앙집권의 메커니즘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이제는 ‘주변’이 고른다. ‘주변’이 선택한다. 권력의 이동이다. 고객 주권의 부상이다. 주어진 기성품을 소비하기 급급하던 피동적 객체는 사라졌다. 고객은 이제 '나'를 중심에 둔 맞춤형 제품과 맞춤형 서비스로 발길을 돌린다. 유튜브의 인기는 이런 세상 변화를 웅변한다.


고객의 자발적인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 달라진 세상에서의 ‘실력’의 정의다.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려면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를 고집해서 될 일이 아니다. 딱딱하면 부러진다. 유연해야 한다. 이런 유연함이 고객을 당긴다.


유튜브는 기성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고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직접 선택하게 했다. 덕분에 정해진 방송 시간에 맞추어 내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일은 사라졌다. 내가 편한 시간에 플랫폼에 접속하면 그만이다. 시간만 고르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도 고른다. 마치 조립형 놀이블록을 제공해줬더니, 비행기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며 사람들이 알아서 재미있게 노는 격이다. 이런 플랫폼에서 비로소 우리는 수동적인 ‘시청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고객’의 위치로 올라선다.

생산자에서 고객으로 이어지던 일방향의 단선적 비즈니스 시대가 저물고 있다. 거대한 장터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판매자와 구매자가 함께 모여 입체적인 쌍방향 소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플랫폼 세상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이른바 ‘플랫폼기업’이 뜨는 이유다.


플랫폼의 권력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선택하는 메커니즘. 다양성과 유연함으로 무장하고는 고객에게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하는 유튜브 플랫폼은 그래서 활황이다. 보든지 말든지, 사든지 말든지, 높은 콧대를 지금도 치켜세우는 ‘자기 고집’의 비즈니스는 그래서 불황이다.


'시청자'를 '고객'으로 바라본 유튜브는 미디어 지형도를 재편하고 있다. ‘독자’를 ‘고객’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워싱턴포스트 사례도 있다. 미디어 업계만의 이슈는 아닐 듯 하다. ‘환자’를 ‘고객’으로 대하는 병원, ‘학생’을 ‘고객’으로 대하는 대학, ‘직원’을 ‘고객’으로 대하는 기업, ‘이용자’를 ‘고객’으로 대하는 공공기관이 성장하고 성공할 것이다. 격변의 시대, 생존의 조건? 고객에게로의 권력 반환이다. 다양성을 품어 안은 유연함이 관건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국제신문 2020년 12월 16일자  <세상읽기> 연재칼럼 https://bityl.co/4r8C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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